엘셋(LSAT)과 불안

by 고장난 몬스터

3일 후에 LSAT을 본다.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준비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LSAC이 공개한 모든 기출 문제집을 두 달 전 호기롭게 주문했지만, 90개 중 푼 건 스무 개도 채 안 된다.


워싱턴 D.C.의 한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변호사들과 커피챗을 몇 번 했다. 그중 한 명은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었다. 그녀는 온라인에 공개된 기출 문제를 전부 풀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열심히 하면 하버드까지는 아니더라도 T14 중 하나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스쳤다. 그때는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결국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공부만큼 성실함의 기여도가 큰 일도 없다는 걸.


시험 두 달 전에는 마음이 느긋해서, 이제는 코앞이라 불안해서, 다양한 이유로 책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대로 공부한 시간은 고작 2주 남짓일까. 인터넷을 보니 LSAT 평균 준비 기간이 풀타임으로 6개월이라는데, 나는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 왜 이렇게 몰두하지 못했을까.


첫째, 나는 외부 환경에 민감하고, 동시에 거기에 의존하는 사람이다. 대학 입시 때는 나를 채찍질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대학원 준비할 때는 한국에 머물며 부모님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옆에서 쪼는 학원 선생님도, 같이 밤새 공부하는 친구도, 응원해주는 부모님도 없다.


게다가 나는 이미 따뜻한 집이 있고, 월급이 제때 들어오는 직장이 있고, 합격해놓고 발령만 기다리는 유엔도 있다. 누가 나를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로스쿨 진학은 온전히 내 선택이지만—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 길을 가야만 할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상 앞에 앉을 정도의 열의는 없다. ‘11월 시험이 아니어도 1월이 있고, 2월도 있잖아’ 하는 나약한 변명만 되풀이된다.


둘째, 불안함 속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공존한다. 이상하리만큼 ‘잘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SAT나 GRE 같은 standardized test에 늘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LSAT 모의고사를 치면 점수는 대체로 170 안팎이다. 3년 전에도 LSAT 없이 로스쿨을 지원했는데, 마감 직전에 제출한 원서치고는 T14 중 두 학교에서 웨이팅을 받았다. 나이가 많으니 경력 같은 소프트 팩터에서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T14 합격생들보다 학점이 부족하다. 이럴 때가 아닌 걸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의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


셋째, 욕심이 생긴다. 좋은 로스쿨에 가고 싶다는 욕심이.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법조계 역시 학벌주의가 심하다. 출신 학교의 이름값이 사람의 가치를 좌우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이 곧 상품이니까. 그래서 나도 T14 이외의 학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솔직히 말하면 T14를 넘어 T7에 가고 싶다. 내 이력서를 조금이라도 더 빛내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다. 몸과 머리는 따라주지 않는데, 마음만 세 발자국 앞서 있다.


넷째, 사실 로스쿨이 아니면 안 된다. 부모님이 내 20대 초반에 “로스쿨을 도전해보면 어떻겠니?”라고 하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 같은 모태 문과생이 택할 수 있는 전문직이 사실상 법조인뿐이기 때문이다. 전문직은 안정적이다. 그리고 그 안정감의 메리트는 생각보다 크다.


트럼프 취임 이후 국제개발 분야에 있던 지인 절반이 직장을 잃었다. 남은 사람들도 업계의 미래를 비관한다. 유엔 YPP 발령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세계 정세가 뒤집히고, 국제개발에 대한 국가들의 태도가 바뀌면서, 내가 20대에 쌓아온 벽돌들이 7.0짜리 지진 앞에서 흔들리는 걸 1년째 보고 있다. 서른 살. 늦은 나이라고 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로스쿨 도전자 중엔 많은 편이다. 진로뿐 아니라 결혼, 출산, 육아까지 생각해야 할 나이기도 하다. 이런 나이에 ‘빠꾸 없는 도전’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10대의 체력도, 20대의 무모함도 없는 30대에게 도전이란 조금 벅차고, 조금은 두렵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불안하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구차한 변명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바닥엔 땀이 맺힌다. 불안해서 펜이 잡히지 않아, 대신 이렇게 글을 쓴다.


과연 3일 후의 나는 어떤 상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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