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 괜찮은걸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애완동물을 키우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하얀 털의 말티즈를 키우던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부러움 반, 신기함 반으로 강아지와 놀곤 했다. 부드러운 털, 따뜻한 체온, 새까만 눈망울, 그리고 주인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그 모든 게 사랑스러웠다.부모님께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 하고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너 키우는 것도 벅차다!”
“너 방도 못 치우는데 강아지 똥은 어떻게 치울래?!”
20대 후반, 워싱턴 D.C.에 취직하면서 제법 넓은 스튜디오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유롭기도 했지만, 적적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의 제안으로 동네 동물보호센터에서 고양이 임시보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손이 많이 가는 강아지보다는, 비교적 돌봄이 수월한 고양이로 먼저 워밍업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Foster Parent로 등록하고 고양이와 매칭되기까지 한 달을 기다린 끝에, 2023년 여름 인생 처음으로—비록 임시였지만—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게 됐다. 어미를 잃은 두 달 된 형제 고양이였다. 한 마리는 고등어색, 다른 한 마리는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었다. 이름은 준코와 레오. 처음 집에 데려온 날, 너무 귀여워서 둘이 노는 것만 바라봐도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놀다 지쳐 아무 데나 쓰러져 잠든 고양이들의 찡긋한 코, 작은 입, 발끝의 젤리를 보며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지구 생명체가 이렇게나 귀엽고 예쁠 수가 있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준코와 레오를 각각 입양 보내고 난 후 그 이후로도 스무마리 가까이 되는 개와 고양이 (주로 고양이)를 임시보호했다. 그러나 임시보호가 계속 될수록 준코와 레오를 보살필 때만큼의 가슴 벅참을 느끼는게 점점 어려워졌다. 데려오기 전까지는 '아,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집에 데리고 와서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면 풀풀 날리는 털에 반응하는 내 알레르기 증상이 버거웠고, 매번 치워줘야 하는 똥오줌의 냄새가 싫었고, 고양이가 가구를 긁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면 화가 났다. 이미 키워봤으니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고양이의 습성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는데 며칠 키우다 보면 힘들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거나 귀여운 모습이 보이면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벅차다는 생각이 거의 비등하게 들었던 것 같다. 친구, 지인들이 '임시보호 하다보면 정 들어서 입양하고 싶지 않아? 떠나보낼 때 슬프지 않아?'라고 물을 때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는 절대 아닌데'가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임시호보하던 고양이와의 이별은 항상 bitterSWEET했다. 간혹, 임시보호가 너무 버겁게 느껴질 때는 센터에 고양이들을 다시 돌려보낼 때도 있었다. 6개월 된 고양이 세 마리를 원룸에서 혼자 키운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고 배웠던 거 같다.
몇 달 전에는 열흘 된 새끼 고양이가 두달이 될 때까지 키웠다. 네시간에 한 번 씩, 자다가도 일어나서, 젖병에 분유를 타서 먹이고, 항문을 물티슈로 문질러 주면서 배변 유도를 해주고, 혼자서는 체온 조절을 할 수 었는 아기 고양이를 위해 온열 패드를 전자레인지에 뎁혀서 이불 밑에 깔아주고, 갓난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지극 정성으로 새끼 고양이를 키웠다. 하루에 두 번 씩 몸무게를 체크하면서 잘 크고 있는지 모니터도 하고 나날이 커가는 고양이가 기특해서 사진도 엄청 찍었다. 걸음마를 뗀지 얼마 안 됐을 때 온몸을 발발 떨면서 모양새를 보며 '발발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입양을 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발발이는 내가 원하는 개냥이처럼 크지 않았다. 어미, 형제 없이 혼자 커서 그런지 할퀴고 이빨로 무는 행위가 얼마나 아픈지 발발이는 모르는 것 같았다. 발발이가 나의 손길을 마다하거나 장난으로 응수할 때마다 나는 발발이에게 정을 거두었다. 내 뜻대로 완벽하게 자라주지 않는 발발이를 보며 입양을 할 수도 있으려나 하는 기대가 점차 가라앉았다. 결국 발발이가 두 달 정도 되던 날 센터는 중성화 수술과 잇따른 입양 절차를 위해 발발이를 데려갔다. 그 날 나는 슬프지 않았다. 조금 허전은 했지만 그 감정이 슬픔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고양이와 이별할 때 '슬펐'던 적은 사실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엔 첫 임시보호 고양이를 바로 입양한 친구도 있고, 30분 만에 강아지를 데려온 친구도 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따뜻하고, 착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어서 가능했던 걸까.
나는 그들보다 선천적으로 정이 부족한 사람일까.
과연 나는 내 자식에게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누군가의 ‘보호자’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 가장 중요했다. 아무리 근소한 차이라도.
고양이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인 건 맞지만, 내 몸이 힘들면 그 귀여움조차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내 피가 섞이고, 나를 닮은 자식에게는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고양이와 인간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내 유전자가 섞인 아이는, 발발이보다 몇백 배는 더 사랑스러울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