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그녀의 하루는 대충 이렇게 시작된다.
찌뿌둥한 몸을 겨우 일으켜 침대에서 1미터 남짓 떨어진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 회사 노트북을 키고 인트라넷에 접속한다. 새로 로그인을 할때마다 이중 인증을 해야하므로 회사 폰으로 오는 네자리 코드를 입력하고 나면 업무 관련 메세지며 이메일이며 확인할 수 있다. 어제 저녁에 미처 못 읽은 동료의 메세지부터 새로운 미팅 초대 링크까지 그닥 달갑지 않은 크고 작은 서프라이즈들을 마주하면서 잠이 깬다.
미팅에 참석해 노트테이킹을 하고 엑셀의 피봇 테이블과 파워 쿼리와 같은 팬시(fancy)한 기능을 써가며 꽤나 그럴싸한 재무 보고서를 뚝딱 만들어낸 후 위에서 지시한 각종 문서 작업과 정리를 마치고 나면 머지않아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 사이 어디쯤 되는 회사의 튈래야 튈수 없는 사무직. 그녀가 하는 일이다.
소설책을 좋아하고 수학 문제를 질색했던 그녀의 첫 장래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자'란 직업은 엄밀히 존재하지는 않고 대학교 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의 형태로 실천할 수 있는 업이다. 어쨌거나 그걸 몰랐던 초등학생 그녀는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그려보라고 하면 항상 하얀 뽀글머리를 하고 하얀 랩 코트를 입은 채 한 손에는 삼각 플라스크를 든 누군가를 스케치북에 담곤 했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스케치북에 회사원을 그리는 이는 없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언제나 의사, 경찰, 선생님과 같은 타이틀만으로도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그런 직업들이었다.
그녀의 장래희망은 지난 20년간 수차례 바뀌었던 건 사실이다. 10대때는 단순히 빵이 좋아 제빵사가 되고 싶기도했고 만화 그리는걸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 정치외교학을 배우며 사명감과 정의감에 사로잡혀 유엔의 사무총장이나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었다. 20대 중후반에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며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은 빅테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고 싶단 생각도 종종 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꿈들이 폈다가 지는 사이 그녀는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고 과학자도, 만화가도, 정치인도, SWE도 아닌 사무직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회사원이 되는 꿈을 꾸었던 적이 었었던가. 기억을 돌이켜보자면, 있었다. 잠시나마 있었다. 그녀가 갓 대학에 입학했던 해인 2014년에 나온 '미생'이란 드라마를 보며 회사라는 마이크로코즘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회사원들을 보며 멋지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들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도, 빽빽하게 솟아있는 사무실 칸막이도, 쉼 없이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도, 스무 살 그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려나. 몇인분어치 믹스 커피를 타고, 몇 십 페이지 되는 서류를 복사하고, 회의실에 미리 생수병을 갔다놓는 등의 단순 업무 마저도 감각적으로 느껴졌을 터이다. 그녀는 그런 직관적이고 체계적인 업무 환경에 알지 못할 흥분을 느꼈다. 큰 회사의 부속품, 한 기업의 너트와 볼트가 되겠단 계약을 맺고, 채도 낮은 양복을 입고, 영혼이 다소 없는 포커페이스를 유지 한 채, 잿빛 파티션 속 32인치 모니터의 블루 라이트에 몰입하는 그녀가 그려졌다.
그렇다. 회사원도 그녀가 꾼 수많은 꿈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꿈꾼 대로 된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정말로, 찰나에 꿨던 꿈만큼 되긴 한 것이다. 입사하고 몇달 지나지 않아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에 질려버린 그녀가 지독하리만큼 평범해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며 한숨을 내쉴 때, 그녀는 그 사실을 끝내 기억하지 못했다. 회사원 또한 그녀가 흡족해하며 마음 속에 품었던 직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소망을 하늘이 결국엔 들어줬단 사실을 말이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그녀는 끈질기게 울려대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책상 앞으로 몸을 이끌었다. 요즘은 일이 좀 재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툴을 배우는게 소소한 지적 자극이 되었고 팀원들에게 최근 성과에 대한 인정도 받아서 회사원이 할만하단 생각을 했다.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는 이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