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에 비몽사몽하며 확인한 단톡방에는 내가 지원한 UNDP BERA에 합격했다는 누군가의 톡이 올라왔다.
저녁 내내 마음을 졸이다 깜빡 잠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눈이 떠졌고, 본능처럼 움직인 손은 핸드폰 잠금을 풀고 JPO 단톡방을 열었다. 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였던 내 손은 UNDP라는 키워드를 찾아 톡방을 거침없이 스크롤했고 이틀 간 학수고대한 답을 마침내 맞닦드렸을 때 나는 벙쪄버렸다. 벙찌다 말고는 그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UNDP BERA 연락 받았습니다"라는 단톡방의 그 짧은 한 마디를 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방에서 같은 자세로 무려 5분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납득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고 일어나면 결과가 바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합격해야만 하는 자리라는 건 알았지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올해는 승산이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합격 한 후의 상황을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렸기 때문에, 내 분신은 이미 합격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톡 한줄이 명단에 당당히 올라가 있는 나의 분신을 무참하게 끌어내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하느님이 만약 '민영'이라는 영화의 감독이라면, 내게 2025 JPO 합격자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JPO 탈락의 고배를 마신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용기내어 지원을 한 후 깔끔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합격하기를 간절하게 비는 모습까지 영화에서 연출이 된 상황이라면, 그 다음 장면은 아무래도 내가 합격을 하고 벅차서 행복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그날 밤 흘린 눈물은 행복의 눈물이 아니라 비통함의 눈물이었다. 결과를 보고 부모님께도 친구에게도 전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블로그에 올릴 JPO 합격 수기나 링크드인과 인스타에 업로드 할 이력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붐비는 뉴욕 메트로의 인파를 뚫고 이스트 50가로 위풍당당하게 출근하는 나의 모습도 물거품이 됐다. 한 사람의 카톡 한 줄로 나의 행복과 희망이 스위츠 오프하듯 모두 꺼져버렸다.
기분은 무겁고 마음은 더더욱 무거웠지만 내 부지런한 손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합격했다고 알린 사람에게 전할 간단한 축하 인사와 더불어 내년에도 비슷한 포지션으로 지원해보고 싶은데 혹시 몇 가지 여쭤봐도 되냐는 톡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슬픔을 숨기고 애써 덤덤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내 행복을 앗아간 사람에게 매너를 갖추어 톡을 보내야한다는게, 도움을 요청해야한다는 게 애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합격했는지 궁금했고, 올해 합격하지 못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었지만서도 아직 2번 더 남은 기회라도 잡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내 도움에 응해주었고 개인톡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물은 질문들에 너무 자세히 답변을 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톡에 뜬 그의 실명을 링크드인에 찾아봤는데 나랑 나잇대가 비슷한 남자분이셨고 현재 유엔 산하기구 한국 사무소에서 몇년째 근무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문득 작년에 내 자리를 앗아간 또다른 '김땡영'씨의 실체도 너무 긍금하여 내가 아는 키워드를 최대한 동원하여 사설탐정마냥 그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그녀를 링크드인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대체 나보다 뭐가 그렇게 잘났길래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력을 슥 훑었다. 처음에는 학력란만 보고 뭐지 싶었는데 그녀의 경력란을 보고 나는 바로 납득을 했다. 아프리카의 여러 개 나라에서 필드 경험만 5년.... '찐'이었다. 국제개발의 최전방에서 현역으로 뛰고 계셨던 분이었다. 이 정도 근무 경험이면 인터뷰 패널들이 묻는 모든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JPO에 붙은 모든 합격자분들은 관련 국제기구에서 관련 업무를 현역으로 하시고 계신 분들인 것 같다. 올해 합격자 중에는 만 26세로 비교적 젊은 나잇대의 분도 계셨는데 톡방에서 지원했던 동일 기구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걸 보면 유엔 JPO에서 가장 많이 보는 부분은 관련 기구에서 관력 직무를 언제까지 몇 년을 했냐라는 것을 도출할 수 있었다. 유엔을 나온지는 4년, 국제개발 업무를 그만둔지는 3년이 다 되어가는 나로써는 애초에 불리한 게임이었다. 서류를 통과해서 최종 면접까지 갈 수 있었던 게 오히려 행운이 따랐던걸까.
JPO에 떨어져서 슬펐고, 합격자들의 스펙을 보니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갔지만 곧 다시 슬퍼졌다. 이미 내가 유엔 밖에서 보낸 시간이 3-4년인데 지금 당장 유엔 기구로 이직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남은 두 번의 기회에서도 크게 승산이 있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JPO 꿈은 정말 꿈으로만 남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나는 공부 자극제로 제일 효과가 좋은 노량진 공시생들의 일상을 다룬 15년 전의 KBS 다큐 영상을 유튜브에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다큐답게 빛바랜 화질 속에서의 공시생들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중에 소수는 시험에 붙고 다수는 떨어졌다. 떨어진 사람들 중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운명의 물살을 끝끝내 거스르겠다는 연어들의 멈추지 않는 도약. 파릇하다 못해 찬란한 20대의 황금같은 시간을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쏟는 젊은이들의 패기가 내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댓글 창에는 몇 백개의 응원과 격려가 있었는데 그 중 몇 개의 댓글을 보면서 한번 더 눈물이 터져버려 소리내어 울었다. 나를 울게 만든 댓글들은 힘들 때 두고두고 보고싶어 이 글 끝에 적었다.
특히 나는 마지막 글이 제일 울림이 있었는데, 거듭된 실패 앞에서 무릎을 꿇을 뻔한 나를 붙잡아 일으켜 주는 말 같았다. 'UNDP BERA 연락 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보자마자 그 단톡방에서 나간 지원자들도 있다. 어쩌면 본인의 탈락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을거고 빨리 털어버리고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남아서 합격자를 축하해주었다. 말도 걸고 질문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배운게 있었다. 합격자들과 나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인지. 나의 탈락 요인이 무엇인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합격률을 높일 수 이는지. 탈락이란 결과를 '실패'가 아닌 '배움의 경험'으로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다. 그러니까 도전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칠전팔기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도전도 하고 실패도 하다보면 언젠간 하느님이 내 손을 들어주는 날도 반드시 올테니까.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어떤 일이 안 풀릴 때는 하느님께서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내게 주시려는 싸인.
실패는 없다. 성공과 경험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