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8.(화) - 담백한 이별 후기

by 고장난 몬스터

거의 1년만에 일기를 쓴다.

1년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22년 6월, 정든 뉴저지를 뒤로 하고 DC로 이사를 왔다.


다니는 직장이 맘에 들지 않아 UN YPP에 지원해서 2차 시험까지 본 상태고 로스쿨에도 지원했다.

작년 하반기는 일 - 공부의 무한반복이었는데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활동량이 없으니 살은 살대로 찌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하락하니 사람들은 더 안 만나게 되고...악순환의 무한굴레였다.


남자친구와는 작년 11월에 헤어졌다.

이별 얘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털어놔서 더 이상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때 나는 내가 죽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치유하지 못 하는 것은 없다고

아직까지 용케 살아있다.


남자친구의 사진, 선물, 편지는 그대로다.

톡방은 나갔다.

사진보다 톡방이 더 잔인하다.

사진 속 찍힌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사이좋게 웃고 있지만,

톡방은 말투의 변화를 참 세세하게도 기록해놔서 읽다보면 가슴이 아렸다.

아리기 싫어서 3년 반된 톡방을 나와버렸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진 않다.

11월 초,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일주일 동안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잠들려하면 깨고, 악몽에 쫓기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잠에 들면 이별이 과거가 되고 기정 사실로 컨펌이 되니 그게 싫어 계속 깼나보다.

매정히 흘러가는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붙들어 보려고.


아무튼 더 이상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

물론 문득 생각날 때가 있고 이별 노래를 들을 때나 사진첩을 열었을 때 남자친구의 환히 웃는 얼굴이 보이면

가슴 깊은 한 구석이 먹먹해지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게 다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다른 남자들을 만나보려 했다.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자들과 영혼 없는 데이트도 여러번 했다.

말은 섞어도 마음까진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