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를 화나게 하는 인간 군상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다소 거침 없는 표현을 양해 바란다.
1.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들
나는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사람들을 매우 싫어한다. 지 주제를 모르는 사람들 말이다.
가령, 외모가 평균 이하인데도 공작새마냥 끼 부리는 사람, 책 한 권 읽고 세상의 진리를 다 꿰뚫은 척 하는 사람, 제대로 이룬 것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훈계질 하고 다니는 사람, 다양한 인상 군상들이 이 부류에 해당된다. 겸손의 미덕을 밥 말아 먹은 사람들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혐오감이 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부모님의 오랜 가르침 때문인지, 내게는 겸양과 절제는 잘났든 못났든 누구나 가져야 할 디폴트 값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으스대거나 나대는 일은 거의 없어야 하며, 나대더라도 최대한 센스 있고 겸손하게 나대는 것이 인지 상정이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건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 마주칠 때면 어딘가가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정 욕구가 메말랐다던가, 본인만의 세상에서만 살아서 진짜 현실이 뭔지 알지 못한다던가.. 이유가 뭐든간에 엮이고 싶지 않은 부류이다.
2. 방어기제 심한 사람들
방어기제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애잔함 30프로 짜증남 70프로가 혼재된 감정이 든다.
누구나 방어기제가 있다. 그런데 그 패턴이 너무 명확하거나 도를 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갈등이나 마찰이 생겼을 때, 이를 해소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잠수 타는 사람들, 혹은 너무 쉽게 누군가를 평가하고 일반화하고 프레임 씌우는 사람들, 무조건 본인이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 등..쓰다보니 짜증이 아니고 화가 나는게 맞는 것 같다. 이를 방어기제라고 표현해 준 것은 사실 나의 아량이다. 단순히 사회적 지능이 떨어진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인데 어쨌든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하고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이 반영되어있다. 과거 없는 사람 없고, 상처 안 받은 사람 없다만은, 방어기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람을 보면 회복 불가의 영혼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하다. 너무 망가져서, 너덜너덜해져서, 원상복구가 어려운 고물 덩어리를 보는 것 같다.
어제 '나는 솔로'라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여자 출연자들이 연이어 샤넬 가방을 메고 오자 그 중 한 명이 '이번 기수 샤넬 특집인가봐!'하고 웃는 모습을 보고 한 남자 출연자가 샤넬 가방을 메고 온 여자들을 본인의 후보군에서 제외시켰다고 했다. 그 남자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부품회사 재직 중이었는데, 집에서 아이들을 잘 케어할 수 있는 참한 현모양처 같은 여자를 찾고 싶어했다. 고졸 출신 중소기업 사원이면 많이 벌어도 월300일텐데 자녀는 다섯 명이나 낳고 싶고, 가장(家長) 대우 받고 싶으니 맞벌이는 싫고, '명품 = 사치'라는 클리쉐한 슬로건으로 본인의 무능력함을 억지스럽게 감추려는 꼴이 참 못 났단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루저이지만 동시에 breadwinner 포지션은 꼭 쟁취하고 싶고, 뭣도 아닌 유전자를, 번식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수에게 전파하려는 그 단선적인 욕심이 웃겼다. 부족한 걸 인정하고, 본인의 스펙을 보완해 줄 이성이 나타나면 낮출 줄도 알고 해야하는데, 괜한 자격지심에 발동된 자기방어기제는 정말인지 추하기 그지없다.
그는 아마 알 것이다. 결혼 시장에서의 고졸 + 중소기업 세트가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를. 연애든 썸이든 소개팅이든 쌓아온 데이터를 돌렸을 때 본인이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지를. 그게 감당하기 힘들어 본인을 감싸주고 다독여줄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르고 무른 본인을 단단하게 지켜내줄 누에고치같은 피신처가 절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소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의 모습과 성급한 일반화 같은 기제로 발현된게 아니었을까.
3. 내려치기 하는 사람들
세번째 군상은 1번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는데, 본인의 위치를 망각하고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과 자신을 무리하게 엮고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매정하게 손절해 버리는 경우다. 가령 왕이 행차하는 모습을 보며 거지가 옆에 서 있는 부르주아에게 '에휴 우리는 참 별 볼일 없다, 그치?'라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여기서 '우리'라는 단어를 쓰는 행위는 납치, 감금과도 같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부르주아의 뒷덜미를 덜컥 잡고 본인의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에 쳐넣는 행위와 유사하다. 그래놓고 '너는 내 집에 들어왔으니, 너는 나와 같은 처지야'라는 발언을 하는 셈이다. 상위 0.1%를 보면서 하위 10프로가 상위 10프로에게 '우리 둘 다 0.1프로가 아니니까 비슷한 격'이라고 고집함으로써 정신적 하향 평준화를 하며 자기 위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 부정에 빠진 건지 헷갈린다. 이렇게라도 아둥바둥 뒷꿈치 들면서 잠시나마 윗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특징은 듣는이가 이와 같은 범주화를 거절하거나 반대하지 않으면 계속 한다는 점이다. 계속 하다보면 본인들이 하는 얘기가 진실에 가까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종의 자기 암시처럼, 내려치기를 습관처럼 밥먹듯이 하게 된다. 이제 거지 눈에는 부르주아는 또래 거지 정도로 보이게 된 걸까? 왕이 아닌 그 모든 사람들은 거지가 되어버린 걸까? 모를 일이다.
쓰다 보니까 느낀 점이 있다. 나는 이런 부류가 한 번이라도 되어본 적이 없는가? 솔직히 자신 있게 '없다!'라고 답할 수 없다. 나도 아마 누군가에게는 자기객관화가 부족하고, 방어기제 심하고, 내려치기든 올려치기든 하면서 내 알량한 자존심을 채우는 부류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동족상잔이라고 어쩌면 나는 내게도 있을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남에게서 보여질 때 거울 치료하는 것 마냥 낯이 뜨거워졌나보다. 그래서 불편하고 언짢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