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 적마의 질주와 무의식의 거울 - 병오년

60년만에 돌아온 붉은 말, 왜 나는 지금 융을 소환하는가?

by 흔덕헌

적마(赤馬)의 질주와 무의식의 거울 – 병오년

60년 만에 돌아온 붉은 말, 왜 나는 지금 융을 소환하는가?


2026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말의 해이다. 병오년(丙午年), 천간의 병화(丙火)와 지지의 오화(午火)가 만나 형성된 거대한 불기둥은 역학적으로 ‘양(陽)의 극치’를 상징한다. 긴 침묵을 깨고 붉은 말이 대지를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이다. 만물을 형상화하고 드러내려는 기운의 병오년, 분명 올 한해는 사회적 격변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나고, 화마의 그것처럼 혼란스러운 불길이 번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 병오년의 불은 ‘연금술’의 화학적 공정을 떠올리게 한다. 칼 융의 안경을 쓰고 병오년을 바라보면, 이는 단순한 절기나 운세의 변화를 넘어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비추는 ‘심리적 연금술’의 시작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칼 융은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물질을 금으로 바꾸려 했던 연금술의 과정을 인간 정신이 성숙해가는 ‘개성화 과정’의 은유로 해석했다. 불순물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출하는 과정이 인간이 무의식의 혼돈 속에서 ‘자기(Self)’를 발견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융은 연금술의 첫 단계인 ‘흑화(Nigredo)’를 자신의 그림자(Shadow)와 마주하는 고통의 시기로 보았다. 원료를 가열하여 새까맣게 태우고 부패시키는 단계인 니그레도는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열등감이나 분노, 질투 등 부정적인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작점으로 본 것이다.

어둠과 직면하는 첫 번째 단계, 병오년의 기운은 바로 이런 모습으로 시작한다. 강렬한 불기둥이 내면을 비추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마음의 찌꺼기들이 검게 드러날 것이다. 이는 파멸이 아닌 변화를 위한 ‘해체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니그레도를 거쳐 태워진 재를 씻어내어 하얗고 깨끗하게 만드는 ‘백화(Albedo)’를 지나고, 완성과 합일을 뜻하는 ‘루베도(Rubedo)’에 이르기까지, ‘병오년’이라는 한 해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연금술의 단계를 거칠 것이다.

가장 뜨거운 불길 속에서 물질이 붉게 변하며 마침내 ‘현자의 돌’이 탄생하는 최종단계, 대립하는 것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자기실현의 단계까지 말이다. 2026년 병오의 붉은 색이 바로 루베도의 색이다. 가장 뜨거운 시련을 통과한 영혼이 마침내 온전한 황금(Self)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 순간은 연금술을 견딘 자에게만 존재할 것이다.


병오년의 뜨거운 기운은 우리를 연금술사의 화로 속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열기를 이용해 내면의 불순물(Shadow)을 태우고, 마침내 그 마음의 중심에 빛나는 황금(Self)을 빚어내는 것이다.

현자의 돌은 어떤 시련에도 변하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우리 모두가 병오년의 격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점을 찾는 작업을 시도하기를, 그리고 병오년에 끝엔 그 시도가 성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빈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병오년은 ‘드러난다, 모든 것이.’

척하는 자는 밑천이 드러나고, 숨겨진 실력은 세상에 알려진다.

그리고 그 거대한 불길에 타고 없어질 자와, 불길을 통해 연금술에 성공할 자, 그렇게 두 부류만 존재할 것이다.


2026년 2월 18일, 구정을 지나며 병오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다. 글쓴이 흔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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