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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y 06. 2022

나는 왜 엄마한테 화가 날까

핸드폰 화면에 엄마라고 뜰 때, 나는 전화받기가 망설여진다. 정확한 이유가 뭔지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무수하고 사소한 이유들이 있겠지. 이런 걸 방어기제라고나 하나. 바로 전화를 반갑게 받는 게 아니라 다시 한번 화면을 확인하고 한 템포 쉬고 마음을 다잡고 전화를 받는다.


어떤 날은 기분 좋게 통화를 끝내지만 또 많은 날은 화를 내고 끊거나 전화를 끊고 혼자 화를 내는 식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자주 '나는 왜 이렇게 못됐나, 난 왜 이렇게 살갑지 못하나, 난 왜 이렇게 나쁜 딸일까' 죄책감에 앓는다.

그러면서도 늘 반복된다. 인간이란.




자식으로 살 땐 내 부모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사랑한다면서 왜 이렇게 하는 거야, 사랑한다면서 왜 이것도 안 해주는 거야, 사랑한다면서 왜 이것도 못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사랑을. 사랑으로만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의심했다. 자식이라서.


그런데 엄마로 살아보니 이 세상에서 엄마보다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는 존재는 없다는 건 확실하게 알았다. 엄마가 내게 하는 모든 것이 사랑에 기반된 것임을 안다. 조금이라도 더 자식을 위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잘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안다.


아주 잘 안다. 머리로는...




며칠 전 우연히 본 티브이 프로에서 정재승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가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는 뇌에서 나를 인지하는 영역에서 엄마도 인지한다. 나와 엄마를 동일시한다.  나라고 인지할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해요. 나와 다른 존재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와 한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사랑해서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가 나는 거예요'


너무 사랑해서 화를 내는 사이, 너무 가까워서 화를 내는 사이라니...


아무래도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여러모로 엄마로부터의 확실한 분리가 답인 듯하다. 나는 엄마가 아니에요. 그렇게 외치기만 했는데 엄마 역시도 내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겠다.


나와 다른 사람, 내가 아닌 사람, 당신을 인정합니다.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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