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월급날. 월세 내고 한 달 먹을 쌀을 사면 빠듯한 생활비가 손에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통에 가득 채워진 쌀을 보면 부자가 된 것 같아 그렇게 든든했는데 사람 좋아하는 아빠가 회사 동료들을 갑자기 집으로 데려와 식사를 대접하는 날부턴 한 달 먹을 쌀이 부족해져 걱정을 했었다는 엄마는 가끔 쌀 한 포대를 집 앞에 두고 가신다.
엄마, 뭐하러 무겁게 쌀을 사 와 내가 사 먹으면 되는데!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언젠가도 쌀을 갖다 주며 엄마가 말했던 스치듯 들은 엄마의 지난날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 그때와는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딸자식 살림에 큰 보탬은 아니더라도 본인이 마음 쓰며 살았던 어느 부분이 계속 생각나 뭘 하나라도 더 쥐어주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시겠지.
아이들 개학이 또다시 연기됐다는 말에 손주 먹을 간식부터 딸과 사위 것까지 잔뜩 이고 지고 엄마가 오셨던 지난 어느 날. 덕분에 아이 저녁 준비를 차분히 할 수 있었는데 막상 엄마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니 엄마가 무얼 좋아하시는지 잘 모르겠는 거다.
갱년기를 혹독하게 겪고 갑상선이 안 좋아 약을 계속 복용하고 계셔서 음식을 가려 드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뭐 하나 제대로 엄마 입맛에 맞는 게 뭔지 잘 모르는 내가 너무나 그저 ‘자식’ 같아서 좀 서글펐다.
내 새끼 입맛에 맞는 반찬을 무얼 할까 그 생각을 다 하고 나서야 내 부모 입맛을 생각하게 되다니, 그야말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