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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y 17. 2022

 마흔 코앞에서 덕질하며 한 생각

벌써 1년이 지났다.

마흔을 앞두고 아이돌 덕질 한 지.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 아이돌이지 않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나이 먹고 하는 덕질이 내 삶의 행복 지수를 이렇게나 올려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가요를 즐겨 듣지 않는 내가 매일 노래를 찾아 듣고 새 음원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새 앨범 예약 구매까지 하게 될 줄이야...


나도 나를 잘 몰랐던 거겠지.




전혀 몰랐던 세계를, 전혀 관심 없던 존재를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기회에 인식하게 된 이후에는 그저 타인이 아니게 된다. 나와 다른 세계가 아니게 된다.

벽을 허물고 내 세상에서 걸어 나오면 미워할 수 없는, 그저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이런 태도가 늙음과 젊음, 아집과 아량의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닐까.


벽이 높고 고집 있는 나는, 굳건하게 클래식을 주로 들었고 내가 듣는 가요는 정말 몇몇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남편은 아이에게 bts 노래를 자주 들려줬다.

그럴 때 나는 웃으며 '엄마가 백날 클래식 들려주면 뭐해, 아빠가 이런 노래 들려주는데!' 했었는데...


(네. 제가 말한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이토록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매일 덕질을 하다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는데


'우리가 책을 읽는 것,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것, 주변을 둘러보는 것 또한 같은 이유로 정말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그런 행위들로 인해 추운 겨울 백화점 주차요원들에게 패딩을 입혀주도록 건의하는 것, 생리대가 부족한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 코로나로 인해 휴교했을 때 점심 급식을 해결할 일이 걱정인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세계에만 살던 내가 당신의 세계에 가 닿는 것을 하게 하는 것 같다. 




관심 없어, 그럴 여유 없어, 내 일 아니야,
내 취향 아니야, 내 스타일 아니야, 나랑 상관없어.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감각이 워낙 예민해 신경을 내 안에서 조금만 밖으로 뻗치면 감정에 함몰돼 쉽게 지쳐 방어적으로 하는 말인데 나뿐만 아니라 아마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타인의 세계에 무관심. 그러니 님 역시도 내 세계에도 노관심 하시길.


그러나, 합리적이고 깔끔하고 좋아 보이는 생각이 세상 속에서 모르고 지나치면 안 되는 많은 것들을 지나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세상만 알고 사는 것보다 당신이 사는 세상을 궁금해할 때, 이해하고 싶을 때, 관심을 보일 때 세상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어쨌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존재들이 많아질 때, 나의 벽과 담이 낮을 때, 당신의 세계와 내 세계에 공통분모가 커질 때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할 때


내가 좀 더 행복해지는 건 확실한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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