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고 멍하니 (이 시간은 거의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있는 상태) 있다가 켠 티브이 속 화면에서 두 부부가 날을 세우며 다투고 있었다. 이런 프로를 보면 좀 힘들어지는 스타일이라 채널을 돌리려는데 화면 속 아내가 말했다.
너도 나가서 돈 버느라 힘들지.
그런데 내가 집에서 이렇게 살림하고 애들을 보니까 그것도 가능한 거야!
아......
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나가서 돈 버는 일이 힘들고 고되지만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는 내 고됨을 토로하고 의지하기엔 왠지 눈치가 보이고 주눅이 들었다. 그냥 나 스스로 그랬다.
당연한 일 하면서 생색내는 것 같았고, 당연한 일 하면서 힘들어하는 내가 싫었을 뿐이다.
3년 만인가.
친구와 서울이라도 다녀오자, 이대로 우린 애만 키우다 늙어버리겠어. 호기롭게 말하며 2박 3일 계획을 세웠다. 남편들 스케줄 체크하면서 날짜를 잡았는데 덜컥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안 되겠다, 다음으로 미루자. 그렇게 다시 한번 미룬 2박 3일 일정에 설레며 반찬도 만들고 집안 청소도 하고 있는 와중에 걸려온 남편 전화. 해외 출장 스케줄이 내 스케줄에 겹쳤다.
어쩔 수 없지. 2박 3일 일정을 1박 2일로 줄여야지.
급하게 취소하고 변경하고 취소 수수료를 내고 친구한테 양해를 구하고 이 상황에서 역시나 나만 동동거렸다. 왜냐, 당연히 내가 취소해야지 그 스케줄이 한 달 전부터 잡혀 있던 게 무슨 중요야, 난 노는 거고 남편은 일하는 거잖아...
있잖아, 내가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더라.
여보가 이렇게 갑자기 출장을 가는 건 여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당연하게 장기간 출장을 갈 수 있는 건 내가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면서 당신이 집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당신 일만, 바깥일만 하면 되게 해 주니까 그런 거라는 거.
어차피 우리는 부부로 사는 이상 공동체인데 여보 공 만으로, 내 덕 만으로는 이 관계가 이 가족이 지속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하고 있었다고? 난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데?
나 스스로가 집안에서 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월급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들을 하찮게 여겼다. 각 가정마다 사정이라는 게 다 다를 텐데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를 하는 워킹맘들을 보면 나도 나가서 돈 벌어야 하는데... 그랬다.
아마,
가정에서 아내, 엄마의 역할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컸고 그 당연한 것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무 목적도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갈수록 이상해 보이고 미심쩍고 심지어 반페미니스트로까지 보였다. 그때 나는 엄마 인생의 주축이던, 나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엄마를 매도하기 바빴다. 그 보이지 않는 고된 노동을, 자신만의 열정에 헌신하지도 않고 실용적인 기술 개발도 소홀히 한 전업주부가 남 뒷바라지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그 속에서 받은 보살핌을 그동안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집을 떠나 대학에 가고서 몇 년이 지난 뒤였다.
*본문에 인용한 책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