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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도 방법이 있다.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 모티머 J. 애들러 , 찰스 밴 도렌

by ClassicK

요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진짜 '잘' 읽고 있는지는 항상 의문이었다. 독서량보다 더 중요한 건 독서의 질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오늘은 내 독서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원제: How to Read a Book)을 소개하려 한다.



- 왜 우리는 '읽는 법'을 배워야 할까?


어릴 때부터 글자만 알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들러는 "독서에는 단계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읽기 능력에 머물러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꽤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얕게 읽고 있었던 걸까?


애들러가 말하는 독서는 단순히 글자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의 능동적인 대화다.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비판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 독서의 네 가지 차원


애들러가 제시하는 독서의 네 단계는 내게 독서의 깊이를 알려주었다.


1. 초벌독서(검사독서)


초벌독서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과정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1페이지부터 차례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르게 접근한다.


- 표지, 서문, 목차를 꼼꼼히 살핀다

- 책의 구조를 대략적으로 파악한다

- 이 책이 정말 내게 필요한지, 지금 읽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한다


이렇게 15분 정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걸 경험했다. 특히 목차를 통해 저자의 생각 흐름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2. 분석독서


분석독서는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본격적인 독서 단계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읽는다:


-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 저자는 이 주제를 어떻게 전개하는가?

- 핵심 용어와 개념은 무엇인가?

- 저자의 주요 주장은 무엇이고, 어떤 근거로 뒷받침하는가?


예전에는 그냥 '읽었다'라고 생각했던 책들도, 실제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분석독서를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같은 책이라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3. 통합독서(비교독서)


통합독서는 여러 책을 비교하며 읽는 단계다.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저자의 의견을 종합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정말 큰 깨달음을 준다.


최근에 '행복'이라는 주제로 여러 책을 비교해 읽었는데, 심리학자, 철학자, 종교인, 과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접하면서 훨씬 균형 잡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각 저자의 주장을 비교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은 마치 머릿속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4. 주제독서


주제독서는 통합독서의 확장 버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전문가 수준의 깊이 있는 이해를 목표로 한다.


아직 나는 완전한 주제독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관심 있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주제독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분석독서의 핵심 규칙들


애들러의 분석독서 규칙은 책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정말 유용하다. 내가 가장 유용하게 활용하는 규칙들을 소개한다.


1. 구조적 규칙


먼저 책의 뼈대를 파악하는 구조적 규칙이다:


- **책의 종류 파악하기**: 실용서인지, 이론서인지, 문학작품인지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진다. 소설을 철학책 읽듯이 읽으면 재미없고, 실용서를 소설처럼 읽으면 효과가 없다.

- **책의 통일성 파악하기**: 저자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나 주장은 무엇인지 찾는다. 이게 명확해야 책의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 **주요 부분 파악하기**: 책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각 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한다. 마치 지도를 보며 여행하는 것처럼, 전체 구조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 **저자의 문제 정의 파악하기**: 저자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이해한다. 문제가 명확해야 해결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2. 해석적 규칙


다음은 책의 살을 이해하는 해석적 규칙이다:


- **핵심 단어와 용어 파악하기**: 저자가 특별한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단어도 저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 **중요한 문장 찾기**: 저자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는 문장들을 표시한다. 이 문장들은 책의 본질을 담고 있다.

- **논증 구조 따라가기**: 저자가 어떤 주장을 어떤 근거로 뒷받침하는지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이나 오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 비평적 규칙


마지막으로 책을 평가하는 비평적 규칙이다:


- **이해 먼저, 비판은 나중에**: 저자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한 후에 비판해야 한다. 이해도 제대로 못 한 채 비판하는 것은 무례하다.

- **무조건적 동의나 반대 피하기**: 감정이 아닌 논리에 기반해 평가한다. 내 견해와 다르다고 무조건 거부하거나, 권위에 눌려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

- **적절한 근거 제시하기**: 비판할 때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야 한다. "이 부분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동의하기 어렵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이 규칙들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독서가 수동적인 활동에서 능동적인 대화로 바뀌었다. 이제는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와 머릿속에서 대화하는 느낌이다.


- 다양한 종류의 책 읽기


애들러는 책의 종류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실천하며 느낀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봤다.


1. 실용서 읽기


자기 계발서나 업무 관련 실용서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 나는 실용서를 읽을 때 항상 노트를 옆에 두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록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실제로 시도해 본다. 실용서는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2. 문학작품 읽기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냥 이야기에 몰입해서 읽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더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인물의 동기, 상징, 주제 등을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한 이야기로만 봤는데, 애들러의 방식으로 다시 읽으니 인간의 의지와 존엄성에 대한 훨씬 깊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3. 역사서 읽기


역사책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저자의 관점이 반영된 해석임을 인식하며 읽는다. 같은 역사적 사건도 저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역사가의 시각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철학서 읽기


철학책은 확실히 가장 어렵다. 하지만 애들러의 방법을 따르면 조금 수월해진다. 철학자가 다루는 핵심 질문을 먼저 파악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읽는다. 또한 철학적 용어의 특수한 의미에 주의를 기울인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처음 시도했을 때는 포기했지만, 애들러의 방식으로 접근했을 때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주요 개념과 논점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 독서를 통한 지적 성장


애들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독서가 단순히 정보 수집이 아니라 지적 성장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내가 느낀 진정한 독서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1. 능동적 독서의 습관


독서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다. 질문을 던지고, 중요한 부분에 표시하고, 자신의 말로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능동적 독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요즘 독서 노트를 작성하는 습관을 들였다. 책을 읽고 나서 핵심 내용, 인상 깊은 구절, 떠오른 질문들을 정리한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책의 내용을 쉽게 복습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핵심 아이디어를 기억할 수 있다.


2. 지식의 통합


진정한 독서의 가치는 단편적인 정보 수집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자신만의 체계로 통합하는 데 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책들 사이에서도 연결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발전한다.


최근에 경제학 책과 심리학 책을 연이어 읽었는데,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각 분야를 따로 공부했을 때는 얻기 어려운 통찰이다.


3. 비판적 사고 능력


좋은 독서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워준다. 모든 주장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근거를 검토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독서를 넘어 일상생활의 모든 판단에도 도움이 된다.


- 나의 독서 실천법


애들러의 방법을 바탕으로 내가 발전시킨 몇 가지 독서 습관을 공유하고 싶다:


1. **주간 독서 계획 세우기**: 매주 일요일에 그 주에 읽을 책과 목표 페이지를 정한다. 무작정 읽는 것보다 계획을 세우니 완독률이 훨씬 높아졌다.


2. **독서 전 5분 명상**: 책을 읽기 전에 5분간 명상을 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집중력이 놀랍게 향상된다.


3. **질문 리스트 작성**: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에 묻고 싶은 질문들을 미리 작성해 본다. 이렇게 하면 목적을 가지고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4. **30분 규칙**: 적어도 30분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읽는 시간을 확보한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읽는 것보다 한 번에 깊이 몰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5. **독서 후 복습**: 책을 다 읽은 후에는 핵심 내용을 3분 안에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해 본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듯이 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은 단순한 독서 안내서가 아니라, 지적 성장을 위한 로드맵이다. 이 책을 만난 후, 나는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잘' 읽는 것의 가치를 깨달았다.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이자,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좋은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며 성장한다. 애들러의 방법론은 이런 대화를 더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독서는 평생의 여정이다. 완벽한 독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애들러의 모든 방법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단순히 책의 양이 아니라 독서의 질에 초점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 애들러의 방법론이 여러분의 독서 여정에도 새로운 차원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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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잠시 빌리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소화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 에드먼드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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