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리더가 되다, 그것도 회사에서 (1)

부캐가 이겼다.

by 클로드

“사내 북클럽 리더를 모집합니다.”

어느 날 회사 게시판에 뜬 공고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상하다… 나 회사에서 이런 거 잘 나서지 않는데, 왜 심장이 나대는 걸까. 이유가 있는 나댐이겠지. 하고 싶다는 거겠지. 조금 고민했지만 어느새 나는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니, 그전에 나만의 북클럽을 구상하고 있었다. 언젠가 북클럽을 운영해보고 싶었다. 그 버킷리스트를 꺼내놓을 때가 왔구나.


회사에서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 1/1000ml의 정확성, 실험으로 증명해 내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 세포 속 보이지 않는 현상을 그래프로 나타내는 일. 반대로 온라인 부캐는 감성만이 가득한 일을 하고 있다. 실용서보다는 문학을 읽고, 유용한 일보다는 무용한 일을 좋아한다. 이토록 확연히 다른 영역을 누비는 본캐와 부캐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마치 손바닥과 손등처럼, 내 몸에 붙어있지만 한 번에 한 면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온라인 부캐를 키우게 된 그 시작에는 책이 있었다. 4년 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 북클럽에 들어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생각들을 들으며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책에 대한 내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공감과 끄덕임으로 가닿았을 때 희열을 느꼈다. 서로의 머리 위 전구가 반짝반짝 켜지는 장면들!

여러 북클럽을 경험해 나가면서 슬슬 욕심도 나기 시작했다. 나만의 북클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북클럽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도서 라인업을 선정하는 일. 사람들을 모으고 서로의 생각이 타닥타닥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불꽃을 바라보는 일. 언젠가 해봐야지 하며 꿈꾸고 있었다.


그러던 내게 북클럽 리더 모집 공고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회사에서, 시간과 장소는 물론 도서와 운영비까지 지원해 주는! 생각지 못한 기회였다. 언젠가 펼쳐보고 싶은 꿈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곳이 회사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이기에 더욱 걱정도 되었다. 동료들 앞에 다른 모습으로 서는 일, 오랜 시간 내향인으로 살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동료이기에 더 불편하지는 않을까?

고민이 요동칠수록 나는 이걸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거라고. 그러니 이토록 마음이 꿈틀대는 거라고 말이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기로 했다. 이 또한 부캐를 키우며 성장해 왔기에 가능했던 일.


북클럽 리더 지원서를 작성했다. 내 소개를 하고, 모임명과 북클럽에 대한 소개를 썼다. 그리고 네 달 동안 북클럽을 꾸려갈 네 권의 도서를 선정했다. 나를 확장하는 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뇌과학-심리학-철학-사회학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을 짜보았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인 만큼 그 시작은 과학으로 열어보고 싶었다. 과학적 원리로 자신을 알아가고, 나와 맞닿은 세상을 이해하며,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통해 결국에는 내 세상이 확장되는 경험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획해 보았다.


그리고 호기롭게 지원서 제출! 이제 내 손을 떠난 일. 후련했다. 한편으로는 ‘미쳤나 봐, 어쩌자고 이런 일에 뛰어들었지!’ 하는 당혹감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하고 싶지만 용기내기는 어려웠던 일. 어쩌면 이때도 이성과 감성이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족하다는 이성과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감성. 그 싸움의 끝에 부캐가 이긴 순간이었다.


며칠 뒤, 북클럽 리더에 선정되었다는 공고가 났다. 본사와 지역사업부에서는 여러 모임이 개설되었지만, 연구소는 오직 나 한 명이었다. 더 두근거렸다. 게시판에 올라간 나의 소개글과 사진 만으로도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것 같은 부담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까지 해봤는데 모집 인원에 미달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평소 조용하던 내가 북클럽을 열다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별로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와주지 않는 건 아닐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많은 분들이 신청해 주셔서 오히려 다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고 싶었는데 모임원으로 선정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찾아오는 동료들도 있었다. 모집과 선정은 모두 담당 부서에서 진행하기에 나로서는 몇 명이나 신청했는지 알 수 없던 터라, 이와 같이 생각지 못한 반응은 놀랍고도 감사했다. 이번에 북클럽으로 만나지 못한 동료들과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나는 선정된 여덟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살폈다.

놀랍게도 평소 나와 친분이 없던, 업무적으로 다소 먼 거리에 있는 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셨다. 그렇게 나와 여덟 명의 북클럽 멤버들. 우리들의 북클럽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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