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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Nov 29. 2023

하루만 쉬고 싶다

일상의 사바아사나

“하루만 쉬고 싶다”

이 말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으며 직전에 무슨 메모를 써놓았는지 보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책이나 읽고 싶다“라는 메모가 정확히 한 달 전에 입력되어 있었다. ‘나 정말 쉬고 싶었구나’ 그제야 스스로에게 격한 공감을 한다. 막연하게 하루 휴가를 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고작 내 한 몸 쉬는 데에 휴가를 쓴다는 게 무척이나 아깝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한 달을 텀으로 메모장에 쉼을 외치고 있는 나를 더는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왔다. 업무 다이어리를 펴고 실험 스케줄표를 들여다보며 택일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충동적인 그러나 한 달 전부터 갈망해 온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휴가날이다. 그래서 세상 여유롭게 지금 카페에 앉아 배를 채우고 좋아하는 라떼 맛에 감탄하며 글을 쓰고 있다. 좀 전에는 들고 온 소설책을 읽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요즘 소설에 빠져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푹 빠져 살다 보니 이제는 다시 내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동안 놓았단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하루만 쉬고 싶다는 간절한 그 마음은 쉼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그래, 그렇게 원하는 휴가를 내면 뭘 하고 싶은데?’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말이다. 아무도 없는 집, 적당히 어두운 안방 침대에 파묻혀 책을 읽다 스르르 잠들고, 깨면 다시 읽고, 그렇게 침대와 책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상상을 해보았다. 책과 글에 빠지며 자연스레 멀어진 드라마를 왕창 몰아 볼까 생각도 했다. 점심에 친구를 만날까, 동네를 벗어나 멋진 브런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까, 등등 여러 버전의 쉼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음… 이번 쉼은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서 축 늘어지며 뉘엿뉘엿 해가 짐을 아쉬워하는 멀미를 느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동네에서 혼자 놀기이다. 아침에 여유로운 엄마 모드로 아이를 등교시키고, 우체국에 들러 우편물을 보냈다. 근처 과일가게에서 간단히 채소와 과일을 사고 동네 카페에 왔다. 우리 동네에서 라떼가 가장 맛있는 곳! 쌉싸래함과 고소함이 선명하게 어우러지는 라떼를 마시니 휴가가 온몸으로 실감이 난다.


어느덧 회사 점심시간. 어쩌면 외식을 나온 동료와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내 모습이 잠시 이탈한 블록 한 조각처럼 보인다. 어제까지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늘 그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 속에 둘러 싸여 일하고 밥 먹고 이야기하는 나로부터 잠시 이탈한 느낌. 이탈… 이 말에 소맷자락이 걸린 듯 멈춰 섰다. 내가 바라던 그 쉼은 이탈이었을까? 빡빡하고 견고하게 끼워진 블록들 사이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일까? 특별히 어딜 가거나 누굴 만나는 게 목적이 아닌, 늘 있던 내 자리를 비우는 것.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유유히 떠다니듯 하루쯤은 나의 틀을 벗어놓고 가벼워지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요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힘든 동작들로 호흡과 체온이 차오르면 수업의 마무리는 언제나 ‘사바아사나’이다. 등을 대고 누워 팔다리에 힘을 촥 빼고 눈을 감는 그 시간은 마치 단잠을 자듯 달콤하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요가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잘 쉬는 거예요.” 알듯 모를듯한 그 이유를 아직 묻지 못했지만, 어쩐지 오늘의 쉼이 ‘사바아사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쉬는 게 너무도 중요한 지금의 쉼.


‘사바아사나’를 하며 결코 앞의 운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운동했고, 지금은 쉴 차례가 된 것이다. 숨 가쁘게 달리는 것도, 멈춰 쉬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삶의 리듬이고 그러기에 으레 다음을 기다리는 순서이다. 앞의 달리기가 나를 건강히 채우도록, 그리고 삶의 움직임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번씩 쉼을 맞이해야겠다. 휴가의 사유를 찾지 못해 아니 인정하지 못해 묵혀온 시간들. 이제 제목을 찾았다. Savas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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