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적벽"
뮤지컬 적벽에서 보이는 의상과 배우들의 스타일도 굉장히 좋았는데 바지 위에 겹쳐진 반쪽짜리 주름치마는 옷의 선들과 너무나 잘 조화되면서 고전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캐릭터에 따른 헤어스타일까지 넘나 멋짐... 유비가 그렇게 잘 생겼을 줄... 여태는 몰랐어요. 세상에~ 유비 역을 맡으신 배우님 정갈한 스타일부터 단정한 몸가짐. 책에서의 유비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는 유비의 좋은 점 보단 나쁜 점이 더 많이 보이는 사람인지라... 적벽에서의 유비는 심쿵! 그 자체였어요.
위, 촉, 오가 벌인 이 전쟁을 표현하기 위해 적. 백. 흑의 간결한 색깔로 무대나 의상 조명등이 구성된 것도 흥미롭다. 간결한 색의 사용 덕분에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더 돋보인 게 아닌가 싶다.
원래 국악인들이 부채를 달고 살긴 하지만, 이 부채 퍼포먼스는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놀랍기만 하다. 몸의 선 따라 아름답게 펼쳐지다가도 힘 있게 접히고 접거나 펼 때 나는 소리 하며, 부채 하나로도 창이 되기도 방패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무대 전환까지 부채 하나로 이루어진다. 대박!!!
극 중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꼽으라면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달아나는 장면인데 달아나는 중에도 남아 있는 군사들을 데리고 점호를 실시하는 조조.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조조는 익히 알고 있던 조조와 만나면서 실제 조조가 남도 사람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주 찰떡인 캐릭터가 되었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서 위용을 자랑했던 조조는 이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군사만을 데리고도 허세를 떤다. 그나마 남은 군사들도 성한 사람이 없는데, 조조의 대사가 그의 인간성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듯해서 더 재미있었다. 조조의 옆에 있는 사람은 책사 정욱인데 정욱아~ 를 열두 번쯤 하는 듯. 반복되는 정욱아~에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현대무용과 판소리 또 국악을 결합시켜 놓은 이 작품이 대학생들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놀랍다. 첫 북이 두둥 울릴 때부터 이미 전율과 함께 시작된다.
라디오 채널 클래식 FM을 즐겨 듣는데 오후 5시면 FM 풍류마을이라는 국악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다. 처음엔 그 시간이면 채널을 돌리기도 했는데 어느 날(아마 어느 산사 음악회에서 우리 악기들이 주는 소리에 매료되었을 때부터 였던 것 같다.) 지루하던 소리들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듣기 싫어서 관악 연주도 피하는 편인데, 태평소 소리는 어째 그렇게 흥이 나던지.
FM풍류마을에서 한 번씩 들려주는 판소리 토막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차에서 내리지 않고 끝까지 들었을 때도 있었다. 아직 우리 음악의 재미를 모르신다면 클래식으로 편곡된 우리 악기 소리부터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이미 서양 음악에 익숙해진 귀가 한결 편안하게 그렇지만 몸이 먼저 느끼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거다. 이상하게도 우리 가락들은 슬퍼도 어깨가 올라가고 빠른 곡조인데도 아릿함이 배어있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것도 있었는데, 노래하는 사람만 19명. 고어도 많고 판소리 자체에도 귀가 열려 있지 않은 관객들은 아마 알아듣기가 힘들었을 것 같았다. 원래도 목을 누르는 소리라 맑고 깨끗한 소리의 구현은 어려운 판소리이니 만큼 애절함에 더 무게가 실린 소리일 테다. 그런 것을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니 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공연장에서는 영어와 한국어로 자막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
많은 공연들을 보러 다녔지만 정작 우리 것에는 관심이 덜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공연이기도 했고, 이런 멋진 공연이 우리나라에서만 혹은 동양권에서만 소개되지 않기를 바란다. 해가 거듭 될수록 더 잘 다듬어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진정한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기를 바라 본다. 정동극장에 다시 올려진 날 직관을 기대하며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