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무살, 첫 혼여행, 첫유럽, 첫한달, 첫런던.

처음 간 유럽은 의외로 유럽같지 않았다.

by 클로드



처음 간 유럽은 의외로 유럽같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기 삼일 전 도착한 히드로 공항에서 나는 꽤 초보 여행자답지 않았고. 출입국심사 줄 앞에 있던 사람이 내게 자연스레 질문을 했다.


“짐은 나가서 찾는 거죠?”

“네.”

사실 나도 잘 몰랐는데. ㅋㅋㅋ. 내가 꽤 베테랑 여행자 같아 보였나. 아님 이 앳된 얼굴로 혼자 올 사람은 이 짓을 몇 번이나 더 반복한 유학생뿐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그게 내 첫 혼자 여행이었고 처음으로 아시아를 벗어난 유럽여행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처음으로 5일이상 떠나본 한달 여행이었다.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 학창시절 내내 내 꿈은 세계여행이었다. 수능만 끝나면 프랑스와 스위스에 가기로 하고 매일 밤 야자의 끝에 내게 20분의 자유를 주었다. 스위스 브이로그. 그래서 아무런 무서움도 주춤거림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무조건 간다. 못 먹어도 고.


23키로 캐리어를 질질 끓고 기어코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잘못 내려서까지 도착한 켄싱턴 스트리트는, 충격적이게도, 삼청동 같았다.



다음날, 이 대범한 평이 무색하게도 나는 템즈강을 건너다 무심결에 빅벤을 봐바리고 울어버린다. ㅋㅋㅋㅋ. 뭐야. 왜 어제 허세부린거야? 근데 그 밤에 첫인상은 진짜 그랬어. 뭔가 꿈에 그리던 유럽을 사진에서만 보던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는 감격감. 그리고 내가 꿈을 이루는 순간까지 왔다는 애틋함. 빅벤과 그 옆 국회의사당이 이루는, 그리고 우버이츠 배달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그 풍경은 가히 내 인생의 타임스탬프 찍힌 장면들 중 하나이다.


이 실질적인 첫째날은 정말 많이 울었다. 행복해서. 그지같고 비위생적이던, 이제는 자랑거리가 되어버린 인생 첫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나오던 길. 밝은 런던은 참 하얗고 공기가 달랐어. 말 그대로 유.럽.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네. 시내로 가던 길에 우연히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들어간 작은 스콘집. 우리 집은 라즈베리잼이 기가막혀라고 말하며 내게 특별히 더 귀엽다는 듯이 웃어주던 캐셔. 그 라즈베리잼은 정말 그가 웃을 만큼 코가 막혔다.


의외로 부산 더베이 미만잡이었던 파피스 피쉬앤칩을 뒤로 하고 나한테 한 게 맞는 니하오를 뒤로 하고 본 인생 첫 뮤지컬.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산토리니를 좋아했던 데 큰 영향을 줬을 거도 같은, 아니 반대인가? 아무튼 좋은 분위기를 갖고 있는 ‘맘마미아’를 꽤 앞자리에서 시청했다. 말그대로 행복한 뮤지컬 배우들의 아니, 소피와 캐릭터들의 표정이 다 보이는 곳에서 나도 펑펑 울었다. 생각보다 더 행복하구나, 너. 그리고 생각보다 더 이 행복을 원했었구나. 하고 스스로 놀랄 정도로.


달이 이렇게 눈부시는 밤엔

누가 저 빛을 가려주길 외쳐

밤이 어느새 끝이 나는 낮엔

따스한 빛을 내리쬐는 빛을 받아줘

- Stray Kids, Cover Me 중에서


사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렇게 대담하고 용기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불쑥 찾아온 외로움에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생각보다 열악했던 나의 비위에 짜증을 짓이기기도 했다. 억지로 텀을 두어 자퇴한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할 밤만을 기다리고 외국인친구라도 한 번 만들어볼까 눈치만 보던 나였다.


친구. 런던에는 친구 만들기엔 만능인 좋은 핑곗거리가 있지. 애프터눈티.


작년 생일에는 서울 호텔에서 혼자 비싼 돈을 주고 먹었던 애프터눈티. 올해는 생일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사귄 프랑스 유학생 일본인, 멕시코인 친구들과 애프터눈티를 핑계로 다시 만남을 가졌다. 스톤헨지 투어에서 만난 미국인 자매는 버킹엄 궁 근처에 정말 본인들과 어울리는 우아한 퀸스 티 집을 직접 찾아주었다. 그 중 한 명은 밝고 사교성이 좋았고, 한 명은 포근한 니트 원피스를 입고 와서 서울 단추가 달린 나의 핑크 자켓을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는 우아한 선생님이었다.


숙소는 내부와는 영 딴판이게 그 동네는 꽤 부자동네였다. 소름끼칠정도로 백인만 보였으며 그나마 지나가는 백인이 자기 와이프가 중국인이라고 하는 걸 듣고 조금 안심? 했다. 어쨌든 근처에 고급마케팅을 펼치는 슈퍼가 있었는데 그 앞에는 늦게까지 인도인이 하는 그에 반하는 동네 지리멸렬한 슈퍼가 있었다. 나는 항상 고급 슈퍼에 가서 트러플향 감자칩과 인생 처음 진짜 알을 맛 본 라즈베리를 사서 먹었다. 때로는 역 근처에서 그땐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파이브가이즈 감자칩을 먹으며 태블릿을 보는 게, 왠지 힘들고 우울했던 런던 2주차 퇴근의 한 종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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