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갑 명화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나는 엄청난 인상주의의 팬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삶을 대하는 방식이든. 인상. Impression. 그게 중요하다. 번쩍 뜨이는 경험, 환한 빛이 남기는 과학적 잔상, 그러나 결과물은 로맨틱한.
영국과 프랑스에서 많은 미술 작품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가장 놀랐던 점은 미술작품들도 우리들처럼 실물이있다는 거다. 뭐, 실물은 당연히 있겠지. 노노. 실체가 아니라 실물. 그러니까 사진과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갖는 그 어떤 아우라의 다름이 돋보인다. 특히 어떤 작품들은 실제로 얼굴을 보이지 못하고 혹평받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사진빨을 못 받기도 하다. 보통 큰 작품이 주는 압도감이 있다고 하지만 그거와는 또 다르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by 조르주 쇠라
점묘법으로 그려진 이 거대한 작품은 신비함이 있다. 내셔널 갤러리의 내 사랑 모네와 한국인의 사랑 반 고흐를 제치고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주 오래동안. 갤러리에서 쫓겨날 정도로. 그 앞에는 마치 나를 마주하듯 소파가 하나 있다.
점묘법의 흐릿함은 마치 그림이 환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인상주의 러버인 내게 새로운 답을 준 것이다. 점묘법의 불분명함이 나를 작품 안으로 끌어당겨 내가 그 안에, 그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 속에 들어누워 있는 일행이라고 느끼게 한다. 그걸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안에 머물 수 있는 환상적이고도 아이러니하게 현실적인 작품에 함께 한다.
에드가 드가
예술 전문가가 아닌 내게 드가란 '미' 그 자체이다. 런던 둘째날 처음 간 The Courtauld Gallery (나는 코톨드의 스펠링을 좋아한다.) 에서 처음 보고 눈물을 아름답게 흘린 그 작가이다. 수려한 발레리나들이 아름다운 몸매와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더 아름다운 열정을 뚝뚝 흘리는 그 장면이 어찌 정통의 미가 아닐 수 있을까. 마치 황금비율의 에펠탑처럼 황금수식을 맞춘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샤갈
이미 느꼈겠지만 피카소와 샤갈은 전혀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에 그려있다는 샤갈의 작품은 궁전적인 인테리와 믹스앤매치의 콤비를 이룰 것 같아 기대가 되었지만 막상 보지는 못했다. 지금 떠올리면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샤갈의 위엄을 콤비네이션으로 처음 만나지 않았으니까.
파리의 퐁피두 센터 (이 단어는 영어 스펠링도 한글 철자도 좋아한다.) 에서 모로코계 프랑스인 펜팔 친구와 함께 본 샤갈은 나의 편식을 오묘한 마법으로 진동하며 깨뜨렸다. 우리의 최초 목적은 사실 퐁피두 센터의 외관이었고, 어떨결에 나까지 친구 덕으로 할인된 eu회원가로 들어가 의자가 예술인지에 대한 토론에나 몰두해 있었다.
그때, 나는 샤갈을 만났다. 우연히. 서서히 퍼지는 향수의 향처럼 강력하고 매혹적으로. 향을 인터넷으로 맡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마다 살냄새와 합쳐서 다른 향을 내는 것처럼, 샤갈도 그러하다. 샤갈은 매혹적인 환상의 진한 선 그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