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미스터리로 보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먼저 눈을 뜬 건 창희였다.
창희는 올곧은 자세로 마치 차렷 경례를 하는 것처럼 누워있었다. 눈을 뜨니 회색 시멘트 천장이 창희를 마주했다. 경례를 받아줄 상관은 자리에 없었다. 창희의 몸은 마치 그러고 오래 있었던 것처럼, 마치 틀 안에 부어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희의 긴 속눈썹만이 나풀나풀거릴 뿐이었다. 창희는 눈알을 굴리지 못했다. 그 옆에 있는 것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가 일이 일어났다. 기억의 조각이 빠져나간 자리에 창희는 영화에서 본 납치사건을 끼워넣었다.
창희가 움직인 건 두 번째로 깨어난 아연이 비명을 질렀을 때다. 아연이 비명을 지르자 한 명이 더 움직였다. 창희는 고개만 돌려 비명이 난 쪽으로 한 번 그리고 움직임이 느껴진 곳으로 한 번 시선을 주었다. 비명을 지른 여자는 창희와 달리 무릅을 접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창희처럼 누워있다 이제 막 일어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연은 외마디 비명 이후 얼어붙었다. 경아는 두리번 거리면서 일어나 이곳의 희고도 흰, 정신병원 화이트 컬러의 벽을 더듬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어디죠?”
허공에 던진 한 마디가 창희의 귀에 꽂혔다. 창희는 군인답게 벌떡 일어났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절도 있는 말투가 무색하게 목소리가 땅으로 내리꽂혔다.
“납치당한 것 같습니다.”
드디어 창희의 머릿속에 있던 시나리오가 입밖으로 나왔다. 창희가 눈을 뜬지 47분만이었다.
“악”
아연이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약 두 시간이 지나자 이 셋은 자신들이 납치당했으며 네자리 비밀번호가 설정된 철문을 제외하고는 이 40제곱미터의 흰색 밀실에서 탈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 사실을 경아가 정리해서 발표하자 각 꼭짓점 끝에 앉아있던 아연과 창희도 밀실의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끼리 분열하면 끝이에요. 이게 뭐든.”, 놀랍게도 남자인 창희가 먼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방어적인 조약을 꺼냈다. 경아는 군인 다나까 말투를 쓰다 말다 하는 창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통점을 찾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안절부절한 아연이 혼잣말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게으른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이름에 걸맞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아연은 아침 댓바람부터 조깅을 하는지 마을을 살피는지 이미 이부자리까지 정리하고 자리를 비운 뒤였다. 그 게으른 일요일 오후는 달리 말하면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산타가 선물을 주는 날이고. 정리되지 않은 이부자리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나는 고민을 시작했다. 우리는 산타에게 뭘 주어야 할까.
어린이하기를 그만두기 전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한참을 고민했다. 왜 산타에게는 뭘 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해봤을까. 그는 울음을 가져간건가. 그렇다기에는 나는 많이도 울었는데. 어린이에게 울지 말라는 건 선물 한 상자보다 더 큰 값어치일텐데. 아, 산타가 사기를 쳤나. 그치만 산타는 울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없을걸? 그건 걍 양육레벨을 낮추기 위해 쓰여진 노래일 뿐일테고…
띵동.
문을 열어주러 스프링처럼 튀어나갔다. 잠깐만~!. 나였다면 “housekeeping이요”, 하고 장난을 쳤을텐데. 이러나 저러나 아연이었다. 아연은 빨간 산타모자 두 개를 사들고 왔다.
내가 산타에게 준 건 무엇이었을까.
경아는 유레카를 외쳤다.
“그거야. 우리들의 공통점을 찾다보면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와 저 비밀번호의 답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뭐라도 말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