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에 관한 에세이
오늘은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날이다.
서울에서 용인까지 한 시간을 달려 산 속에 위치한 건물로 들어왔다. 엄마가 가는 길에 꽃을 사가자고 하여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꽃집에 들렀다. 내 예상과 달리 조화로 만든, 뒤에 빨판이 부착된 파란계열의 미니 꽃다발을 삼만원 주고 샀다. 시들지 않도록 조화로 만든 이 꽃다발이 여기에 방문하는 텀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실제로 나는 여기에 처음 와 본다.
로비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소파에 앉아있었다. 다행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보다는 형형색색의 파스텔톤이 눈에 띄었다. 나 역시도 너무 검은 차림을 하고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민트색 니트를 입었다. 적당히 TPO를 지킨 것 같았다. 산 속에 위치한 이 곳은 특이하게도 그 지형을 살린지라 로비가 가장 꼭대기층이었기에 우리는 할아버지를 뵈러 지하가 아닌 지상 2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내려가는 그 지형이 마치 우리가 지하로 묻혀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정원이 그 기분을 위로해주었다.
엘레베이터 옆 층별안내도를 보니 아너, 노블, 로얄 순으로 실이 나눠져있는 듯 했다. 죽어서도 자본주의를 따른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야속하게 느껴질 때, 동생도 이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는 할아버지를 뵈고 큰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 로얄에서 노블 실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곳은 입장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고 소파가 비치되어있는 로얄 실과 다르게 좀 더 개방되고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드디어 미리 로비에서 발급받은 코드를 찍고 삼엄한 경비를 뚫어 할아버지가 있는 칸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유리 판에 꽃을 붙이고 안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골프공이 들어있었다. 바로 옆칸에 있는 사람은 얼마 전에 들어온 듯 보였는데 역시나 골프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좋은 이웃이 되어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옆칸을 둘러보니 아주 어린 친구가 들어와 있는지 작은 메모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취향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만큼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순간순간 상기되어 나를 슬프게 했다.
우리는 어쩌면 여기에 온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잠시 딴 생각으로 흘러들어갔다. 내 옆에 서 있는 엄마와 아빠, 동생은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 아니, 기도라는 표현도 옳지 않겠다.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그 내면은 실로 다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 가족은 종교가 모두 다르다. 엄마는 불교, 아빠는 천주교, 나는 기독교, 동생은 무신론자이다. 모태신앙을 전혀 강조하지 않았던 부모님 덕분에 생겨날 수 있던 특별한 우리 가족만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그런 차이점 쯤은 아무것도 아닌성 싶어진다. 아까 옆 이웃 주민만 봐도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과 전혀 다른 나이와 사연을 가졌을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들 앞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추억하고 바라고 이들과 닿을 것인지의 문제는 무용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망자와 공존한다. 망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도 있을 것이나, 종교에 기대어 혹은 납골당 같은 공간에 찾아와 그들을 기리는 그 순간만큼은 함께 존재한다. 또 망자끼리의, 납골당 이웃끼리의 공존도 내가 피식 웃는 얼굴로 십분 기대하는 또다른 이야기이다.
망자와의 공존은 단순히 이런 의미를 넘어 다시 그리움과 슬픔과 같은 감정들과의 공존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감정들과 각자의 추모의 방식과 함께 망자와의 공존은 더이상 부재와의 공존이 아닌, 존재와의 공존이 된다. 소중한 존재와 공존하는 귀중한 시간 속에서 내가 절을 하거나 기도를 올리거나 인생무상을 생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게 종교가 본질에 집중해 공존할 수 있다면, 수천년간 전쟁과 학살을 일으킨 이 사회의 큰 갈등요소 하나가 제거되는 것이다.
종교간의 전쟁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더 와닿는 종교 갈등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와 종교가 공존하려면 이 문제는 핵심적이다. 종교간의 공존도 중요하지만 사회 속에서의 공존도 중요하다. 정치가 종교의 영역을 세금, 관련 법 등으로 존중하는 만큼 종교도 정치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한 개인이 항상 종교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한 개인으로서의 발언은 상관이 없지만 종교의 이름을 쓰고 하는 종교인의 정치적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만 애초에 왜 종교가 정치가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문제가 발생했을까? 기본적으로 종교와 정치 모두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단순한 신앙 공동체를 넘어, 때로는 토지·재산·경제적 자원을 보유한 거대한 세력이었다. 따라서 중세 유럽의 가톨릭 교회나 조선 시대의 불교 사찰처럼 정치와 종교가 서로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정치가 종교에 특권을 주는 대신, 종교는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해 주는 식의 상호 공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를 기득권의 윈윈관계로만 보는 것은 해결책에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종교와 정치가 변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굳건한 무신론자였다. 무신론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관련 무신론자들의 명언을 찾아보고 이걸 주변에 공유하며 마치 완벽한 논리에 도전할 종교인을 찾는듯 보였다. 친한 친구가 성경 말씀에 따라 술을 안 먹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한 기도를 계기로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성경에 대해 공부하며 힘든 시절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아무리 종교에 의지를 하더라도 이 종교또한 나의 경험처럼 변화할 수 있는 것이고 종교 자체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정치관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나이를 들면서 정치 사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또 정치적 사익에 따라 당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목격한다. 그런 것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굳건한 어느 하나의 지지자 혹은 반대자가 되기 어렵다. 이것을 종교나 정치 당사자들도 명심한다면, 자신이 유착관계에 있는 어떤 사상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유연한 태도로 고여있는 관계를 탈피할 수 있길 바란다.
천주교 학교를 나온 친구가 대학교에 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미사에 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가르침과 함께 큰 친구는 자신의 성적지향성을 깨닫는 데에도 오래 걸렸지만 깨달은 후에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종교가 무한할 수 없다는 것은 비단 정치와의 관계에 있어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교리또한 세상의 변화와 함께 다르게 해석되고 사람들을 받아들이도록 발전해야 한다.
공존에는 한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아무리 다르더라도 공유하는 한 가지 공통점만 있으면 그 공동체는 생존할 수 있다. 종교 공동체의 공통점은 종교의 지향하는 바에 있다. 종교가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같다. 이제 종교가 지양하는 바도 같아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