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남짓한 2025년을 되돌아보며
펑 펑, 피렌체 두오모 성당 옆으로 폭죽이 터진다. 도시 전체로 폭죽이 퍼져나간다. 저 멀리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도 폭죽에 응답한다. 도시 전체가 폭죽 소리와 화려한 환영으로 가득하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이 장면을 담는다. 나의 얼굴도 함께 담는다. 내 소원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기도한다. 내년에도 올해만 같게 해주세요.
결론은 그 소원은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거짓이었을까?
그 소원이 참이었다면 몇가지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세상에 벌어졌다.
먼저, 나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싫어 이 유럽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로마에서 울었다.
두번째, 나는 2025년이 되자마자, 아니 된지 얼마 안 되어 2024년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세번째, 2025년의 삶의 방식은 2024년과 정반대였다.
나는 한국 집에서 가족들과 살았고, 독립보단 의지를 많이 했으며, 영어를 안 쓰려고 노력했고, 주로 밖보단 안에서, 말하기 보단 읽고 쓰기를 많이 했다.
벌써 2025년의 10월이다. 오늘은 추석연휴를 맞는 듯 차를 타고가다 엄청난 크기의 보름달을 보았다. 무엇을 소원으로 빌어야할지 몰라 감상만 했다. 보름달처럼 커다란 행운의 기회를 놓친 건 아닐까?
다행히 내겐 연말의 기회가 한 번 더 남았다. 그 전까지 해야 할 일 하나,
나는 피렌체에서의 기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기 아주 간단한 해석방법이 하나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아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면 그 방어기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내게 피렌체의 기도는 그런 방어기제였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나머지 그것을 엄청 좋아하는 것으로 꾸며낸.
여기 조금 더 솔직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분석이 있다.
미국생활을 떠올리면 마지막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좋은 기억이 더 많다. 온통 새로운 것뿐인 경험들이었다. 그래, 나는 그런 새로운 체험들을 즐겼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겐 신선함보다 불편함이 남았고 나의 마음은 그 기도를 전후로 매우 빠르게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여전하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단기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대신 그렇다면 나는 나의 마음에 어떤 대비를 할 수 있다.
변화의 어색함을 견딜 수 있을만한 레벨로 유지시켜야 할 필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정도’란 매력적이진 않지만 간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