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비애

by 윤인선

나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인 너 없이는 살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너를 잃었다. 40일째 너 없이 살고 있다. 아주 근근이 살아가지만 그래도 살고는 있다.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어서 너도 좀 놀랐을 거다. 나 역시 놀랐다. 그러나 살고만 있지 생활은 무너져 버린 폐허와 같으니 너무 서운해마라. 나는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제 이틀 남았다.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이틀이 내게는 더 길게 느껴지겠지만 너를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으로 충만하다.

병원에서 너를 잃었다는 판정을 받고, 처음에는 큰일이구나 싶었다. 그다음엔 하얀 감옥으로 들어가는 너를 보며, 너를 옆에 두고도 볼 수 없는 그리움에 사무쳐야겠구나 싶었다. 그리움이란 것이 시간이 지나야 그 실체가 드러나는 법인데 난 하얀 감옥으로 둘러싸인 너를 보며 이미 그것이 내게 왔음을 직감했다. 몸의 불편함과 마음의 그리움으로 점철될 날들의 시작이었다.

나의 모든 일상은 너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네가 없으니 앙꼬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 신세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고, 한다고 한들 반 토막의 결과일 뿐이다. 세수를 해도 다섯 손가락을 잔뜩 오므려서 받은 물로 할 뿐이니 너와 함께 벅벅 시원하게 하던 세수는 아니다. 그나마 조심하지 않으면 물이 질질 흘러서 옷을 적시기 일쑤다. 시간은 또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한쪽 얼굴을 씻고 반대편을 씻고 나면 진이 빠진다. 그러니 목욕 한번 하려면 마음을 인내와 끈기로 중무장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여름이 아니라는 것.

밥을 먹으려 해도 너의 전담이었던 젓가락질을 아무리 용을 써도 할 수 없으니 포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야 있는 포크 갖다 사용하면 되지만, 문제는 식당에서다. “포크 좀 주세요.” 하면 십중팔구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 포크는 무슨 놈의 포크’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든가, 하다못해 일별이라도 하니 나로서는 너를 번쩍 들고 왜 포크를 요청하는지 증명할 수밖에 없다. 너의 의지와 상관없이 번쩍 들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너는 불시에 신상을 털린 뭇사람의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너에게서 부끄러움이 뚝뚝 떨어지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한다. 아는 체하면 무엇 하리. 너의 부끄러움 때문에 굶을 수는 없으니, 본의 아니게 너의 부끄러움을 밑천 삼아 배를 채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나는 포크를 잡자마자 위장 저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허기를 채우려고 상 위를 맹렬히 휘젓고 다닌다. 가끔 너의 허술한 도움도 받는다. 나와 너의 허술함이 옆 사람, 앞사람의 눈에 띄면 안쓰러운 도움의 손길이 이어진다. 김치도 잘라주고, 깍두기도 먹기 좋게 잘라준다. 참 고마운 이웃들이다. 밥을 먹으면서 내가 너와 함께 환상의 커플을 이루는 날에 잊지 않고 이자까지 얹어서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결의도 한다. 나로서는 눈물겨운 밥이 아닐 수 없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간장비빔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해 먹을 수도 없고, 나가서 사 먹자니 간장비빔국수라는 메뉴를 딱히 파는 곳도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더욱더 간장비빔국수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간장비빔국수를 먹을 수 있을까에 골몰하고 있다가 방법은 하나, 내가 해 먹는 거였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리고 내가 들 수 있는 정도의 양으로 물을 옮겨 담고 물을 끓이고 국수를 넣고 삶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국수는 알맞게 삶아졌는데 찬물로 옮길 방도가 없었다. 냄비를 들어 소쿠리에 국수를 들이붓고 찬물로 샤워를 시켜야 하는데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너의 도움을 받고자 너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간은 가고 뜨거운 물속에서 국수는 불어갔다. 안 되겠다 싶어서 너를 보며 ‘할 수 있지?’ 했더니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했다. 내가 왼쪽을 단단히 잡고 너는 오른쪽을 어설프게 잡고 하나 둘 셋 하고 들었는데 힘의 균형이 안 맞아서 냄비를 옮기는 도중 기우뚱하더니 기어이 국수의 절반은 쏟았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미꾸라지가 슬그머니 기어 나오듯 국수 가락들이 미끌미끌 기어 나왔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반은 살렸다는 것. 어차피 엉망진창 된 거, 남은 국수로나마 맛있게 먹자는 심정으로 얼른 찬물에 샤워시켜서 간장, 깨, 참기름을 넣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야무지게 비벼서 소원 성취했다. 다 먹고 배가 부르니 기운이 쭉 빠졌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전쟁이었다.

이렇게 나는 너 없는 불편한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너 없는 생활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불편함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너에게 길들여진 내가 어떻게 너 없는 생활에 길들여질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러할 것이다. 특히 부부의 관계는 2인 3각 경기처럼 호흡과 박자가 맞지 않으면 다리가 꼬여 바로 넘어지게 되어 있다. 상대방에게 길들여지고 상대방과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서 같이 있을 때는 불편함을 모르다가 정작 없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 불가한 관계가 부부이다. 그런데 내가 아마도 20년을 하루같이 항상 옆에 있는 남편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나 보다. 다칠 일도 아닌데 다쳐서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른손이 골절되어 깁스를 했는데, 마침 남편의 회사 일로 3개월 동안 주말 부부가 되어야 했다. 남편은 잘못한 것도 없이 내게 미안해했다. 옆에서 도와줘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주말부부가 되어야 한다는 상황이 너무 미안했던 모양이다. 혼자 밥은 어떻게 먹을 것이며, 씻기는 어떻게 씻을 것이며, 청소며, 빨래며 다 어떻게 하느냐고 나보다 더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깁스를 한 사람이 나인지 남편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남편은 내가 남편 없이 지내야 하는 4박 5일을 대비해서 모든 준비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해 놓았다. 내가 아이스커피를 입에 달고 사니, 얼음을 잔뜩 얼려서 얼음 통에 담아 두었고, 밥을 한 솥 해 놓고 김치는 종종 썰어서 그릇에 담아 두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니 다행이지만 널고 개키는 일이 문제라 개키는 일은 생략하고 세탁 후 건조대에 널었다가 마르면 사용하라고 건조대를 거실로 들여놓았고, 과일은 포크로 찍어 먹기만 하면 되도록 잘라 놓았고, 청소는 청소기만 돌리라 했고, 설거지와 쓰레기는 그냥 두라고 했다. 사실 아들이 있어서 둘이 그럭저럭 하면 될 것을 짧은 출장 때 외에는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는 남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남편은 월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금요일 저녁 7시 30분쯤이면 어김없이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없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만 잘 견디면 되었다. 그러나 잘 견딘다는 게 그리 녹록지 만은 않았다. 오른손의 깁스가 돈을 받고 하는 일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라서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녹초가 되었다. 게다가 짝꿍 잃은 왼손은 오른손이 하던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니 멀쩡한 왼손마저도 자리보전 할 지경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하는 일은 나를 씻겨주는 거였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했겠냐며 시원하게 씻겨주었다. 그랬다.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먹는 것도, 집안일도, 돈 버는 일도 아닌 씻기였다. 오른손에 물이 닿지 않게끔 높이 올리고 왼손으로만 샤워기를 잡고는 도저히 씻을 수는 없었다. 그건 몸에 물을 바르고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는 것이지 씻는 행위는 아니었다. 남편은 나의 가장 힘든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집에 오자마자 해결해 주었다. 20년을 한 이불 덮고 잔 부부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남편을 또는 아내를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 또는 교체를 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과 가장 힘든 것을 정확하게 간파하려면 십 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과 적응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반복하느니 조금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 있다 해도 함께 살아온 내공으로 은근슬쩍 넘어가주는 이해와 배려를 발휘하는 편이 더 낫다. 남편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에, 뭔가가 봄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깜빡 졸았는가? 눈을 뜨니 너였다. 처음엔 하얀 감옥으로 둘러싸였던 네가 지금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서 누리튀튀해지고 고약한 냄새까지 풍긴다. 그런 네가 나를 쓰다듬고 있다. ‘그동안 혼자 수고 많았어.’

이틀 후면 너를 만난다. 너를 만나면 제일 먼저 깨끗이 씻겨 줄 거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커피를 사 줄 것이다. 너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다소 어색한 동작이겠지만 예전처럼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마시겠지. 그리고 너와 나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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