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도 아는 것

-투이-

by 윤인선

당진에 들어서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해연은 투이의 메시지를 받고 바로 길을 나섰다. 투이는 시댁을 벗어나 당진으로 이사를 한 후에도 종종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잘 있어요? 선생님 저 서울 가면 만나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 선생님하고 말하고 싶어요. 해연은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그녀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한국어 문장이 단정하고 차분해졌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만남을 미룬 지 일 년이 다 되었다. 그동안 남편이었던 그는 전남편이 되었고 해연은 안정을 되찾았다. 해연이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건 생일에 투이와 먹은 쌀국수의 맛 때문이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뜨거워서 시원했던 국물 맛과 힘을 주지 않아도 툭툭 끊어지던 면발의 촉감 덕분이었다.


해연은 투이를 삼 년 전에 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센터에 한국어 수업을 신청하러 시어머니를 따라왔다. 투이는 지후를 임신 중이었다. 검은 눈동자가 깊고 부드러워서 무엇이든 흡수할 것 같았다. 눈동자만큼이나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출렁거렸다. 두 번째 만남부터는 투이의 일터이면서 거주지인 비닐하우스 농막에서였다. 투이는 고춧가루 몇 개가 묻은 밥상에 한국어교재와 공책과 연필을 가지런히 놓고 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연은 투이가 커피를 타는 동안 두루마리 휴지 몇 칸을 떼어서 슬며시 고춧가루를 닦아냈다. 방문 첫날이라 선생을 맞이한다고 농사일을 하다 들어온 시어머니는 투이의 흠을 잔뜩 늘어놓고 나갔다. 투이의 흠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며느리 흠을 늘어놓는 시어머니의 흠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었다.

투이 씨, 안녕하세요?

해연이 웃으며 인사했다.

안 녕 하 세 요 선 생 님.

투이는 한 음절씩 또박또박 말했다.

한 음절씩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연습을 많이 한 티가 역력했다. 센터에서 처음 만났을 때 투이에게 하는 양으로 보아 아마도 시어머니가 연습시켰을 거라고 해연은 짐작했다. 자, 해 봐. 안 녕 하 세 요 선 생 님. 투이의 발음이 성에 차지 않자 시어머니는 해연을 곁눈질하며 투이에게 다시 시켰다. 이걸 못하냐? 어? 자, 다시 해 봐. 해연은 시어머니가 고약하다고 생각했다.

투이의 농막에 다니면서 계절이 네 번 바뀌어 다시 가을이 되었다. 그동안 투이는 지후를 낳았다. 지후는 수업 중에 잠이 들거나 투이가 수업 전에 지후를 재웠다. 누군가를 매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이는 거였다. 해연은 무엇이든 빨아들일 것 같은 투이의 눈을 보면 마음속에 가득 쌓아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투이 씨, 어제 남편이 안 들어왔어요.

네? 남편? 안 와?

투이는 해연의 말 중에서 알아듣는 단어를 되물었다.

투이 씨, 남편이 나한테 질렸다고 하네요.

선생님 남편?

투이는 물끄러미 해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투이 씨, 질렸다……는 한 가지를 질리도록 먹었을 때나 했을 때 하는 말이잖아요. 사람한테 하는 말은 아니잖아요.

그는 이삼 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새벽에 들어오거나 외박을 일삼았다. 새벽에 들어오는 그의 머리카락은 방금 감은 듯 날아갈 듯했다. 해연은 시각으로 후각으로 알게 된 것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의 뻔뻔함이 더해질수록 마음에 쌓이는 조각들은 날카로워져서 해연을 여기저기 찔러댔다. 분명 함께이고 싶어서 한 결혼인데 해연은 결혼생활의 절반 동안 혼자였다. 그는 해연이 정말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해연은 그 점이 더 견디기 힘들고 슬펐다. 낮에는 마음에 쌓인 날카로운 조각들을 숨겼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평범’이라고 정한 범주 안에 사는 척했다. 그런데 투이를 만나고부터는 한 조각씩 꺼내게 되었다. 그녀를 가르치는 문장 사이사이에 조각을 끼워 넣었다. 서울 끝자락에 있는 비닐하우스 농막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길은 해연이 ‘평범’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

투이도 해연이 오는 날은 농사일과 집안일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었다. 저만치 오는 해연을 보면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웃음 속에서 그녀의 눈은 더욱 검고 깊고 부드러웠다.

선생님 생일 언제요?

투이가 물었다.

투이는 시댁 식구들과 해연 외에는 한국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어서 한국말이 더디게 늘었다.

선생님 생일은 왜요?

투이는 대답을 안 하고 웃기만 했다. 해연도 대답을 안 하고 웃기만 하다 온 날 저녁에 투이에게서 서투른 한국어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생일 언재요? 저 알고 시퍼요. 10월 31일이에요. 해연은 메시지 끝에 언재 아니고 언제, 시퍼요 아니고 싶어요,라고 덧붙이다가 말았다.

그는 해연의 생일 전날 출근해서 생일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제는 일이 많아서 철야를 하다 보니 이제야 연락을 해. 해연은 막차를 놓친 기분으로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았다. 그때 투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선생님 생일이에요 저 선생님하고 밥 먹어요. 해연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혼자인데도 눈물을 쏟지 않으려고 힘을 주어서 눈이 빨개졌다.

점심시간이라 식당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해연과 투이도 빈자리에 마주 앉아 쌀국수를 주문했다. 푸짐한 쌀국수 두 그릇이 금방 나왔다. 가끔 쌀국수가 먹고 싶다던 투이는 쌀국수를 크게 집어 먹었다. 해연은 베트남 식당으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 마음은 선생님 마음 알아요.

투이가 쌀국수를 다 삼키고 말했다.

투이의 말에 해연은 말없이 쌀국수 국물을 먹고 또 먹었다. 뜨거워서 시원한 국물을 따라 뭔가가 흘러내려갔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에 다다르니 투이가 나와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해연을 보자 투이는 두 손을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선생님, 여기예요.

서투른 발음으로 한국말을 할 때면 떨리던 투이의 목소리는 이제 떨리지 않았다.

투이 씨, 잘 있었어요?

해연도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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