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여러 모임 중에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두 모임이 있다. 그중 하나는 만나는 날짜를 적어 놓고 기다리는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이유를 들어 그만두었으면 하는 모임이다.
후자의 경우, 두 달에 한번 만나는 날짜가 다가오면 어떤 핑계로 빠지면 모양새가 좋을까 궁리를 하게 된다. 이런 모임에 억지로 나가야 하는가 생각도 한다. 조직이란 쉬이 들어가도 나오기란 예사 어려운 게 아니다. 실제로 뒷담으로 살며시 빠져나오려다 이 조직의 수장에 의해 발길을 돌이킨 적도 있다. 애초 이 모임의 목적은 봉사였고, 2년이라는 봉사기간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른 지금은 비장했던 목적은 증발되고 두 달에 한번 모여 밥만 먹고 헤어진다.
초기에는 화합과 오락의 목적으로 모임원들과 단체여행도 곧잘 갔으나 이마저 어느덧 시들해졌다. 예를 들어 ‘이번에 홍콩과 마카오 3박 4일 어때요?’라고 누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카오’의 ‘마’라는 부분쯤에 ‘아 나 거기 갔다 왔는데 볼 것 하~~~~ 나도 없고 거기 별로예요. 다들 잘 다녀오세요 나는 빠질게요.’라고 초장에 초를 치는 분이 이 모임에 있다. ["저, 저, 저기요, 저도 홍콩과 마카오 다녀왔거든요." "저기요 정말 우리끼리 자알 다녀와도 삐치지 않을 거지요?" 이 두문장은 내 속마음이다.]
‘그럼 요즘 뜬다는 블라디보스토크는...’이라고 다른 분이 제안하면 아까 그분은 또 얼른 ‘블라디보스토크? 거기 볼 것 하~~~~~나도 없다든데요.’라고 제안의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공중에서 잡아챈다. 역시나 자기는 안 가도 되니 다른 분들끼리 맘 편하게 잘 다녀오시라고 말한다, 홍콩과 마카오를 베어낸 바로 그분은. 더욱더 그이를 좋게 봐줄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내내 초만 치는 분이 정작 자신은 아이디어를 내는 대신 시종일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를 가리켜 ‘그래도 악의는 없는 사람이야.’라고 옹호하는 사람이 더 얄밉다. 그이를 두둔하지 않는 나는 쫄보에다가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만약 그이 흉을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나는 졸지에 나쁘거나 성정이 격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내내 좋기만 하거나 내내 나쁘기만 한 인간관계는 없다. 한두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만나서 부대끼면 필연적으로 스파크가 발생한다. 화려하거나 따뜻한 감정의 교류도 있지만 갈등 속에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나도 작거나 큰 상처들을 상대방에게 준 적도 있고 상대방도 나에게 그러하다. 어느 모임에서나 다소 억울한 상황에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 기억이 있고 반면 이빨이 쏟아지도록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 다수의 인간관계를 거치며 체득한 ‘관계에서의 생존 전술’은 처세에 있어 나에게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그 생존 전술 중 하나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로 시작되는 칼릴 지브란의 시 구절이다.
위대한 시인 칼릴 지브란에 설파한 ‘신전의 저 두 기둥도 서로 떨어져 있지 않느냐’라는 가르침에 따라, 사회관계망 안에서 구성원과 붙어있다 떨어졌다 다시 붙어 있다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을 반복하는 전술이 나에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금 억울하거나 섭섭함을 느낄 때 그 상대방과 약간의 거리를 두면 시간이 흘러 섭섭함이 사라지고 그리움이 슬며시 배어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덩달아 조절이 되었고 널뛰는 감정이 불러온 파고가 가라앉았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 (Good girl complex)도 일찌감치 멀리 차 버렸다. 나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남들이 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슬프지 않았다. 나는 아주아주 보통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척할 필요도 없었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착하지도 않은 내가 구태여 '착하게' 보이고자하는 욕망을 버리니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용기가 쌓였다.
나는 '꼰대'가 싫다.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하는 다른 이들의 이런저런 방법이 도통 들어 먹히지 않는다. 그가 듣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뿐이기 때문이다. '꼰대'는 자기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무지막지로 지연시켜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건전한 합의과정을 애초에 싹부터 잘라버린다.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그이가 바로 꼰대이기 때문이다. 스파게티를 먹고 싶은 사람도 있고 꼬막 비빔밥을 먹고 싶은 사람도 있으나 꼰대는 이를 알던 모르던 자기 입맛이 시키는 대로 '순댓국 한 그릇 얼큰하게, 어때? 좋지?'를 외친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여기도 싫고 저기도 싫다고 재를 뿌린 사람 덕분에 합의라는 과정은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끝났다. 해외여행은 그럼 제쳐두고 국내여행을 가자고, 다음에 의논하자고 미루어지기는 했지만 국내야말로 모든 회원이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찾으려면..... 아마도 비무장지대? 그 모임원들과 홍콩이나 블라디보스토크를 꼭 가고 싶어 내가 애면글면 하는 것이 아니다. 밥만 먹고 헤어지는 이 모임이 꺼려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렇듯 빈약한 합의 과정과 희생정신의 부족이다.
같은 시기에 시작한 다른 모임도 계기도 위 모임과 같이 봉사였다. 이 모임에서 얼마 전 제주도에 다녀왔다. 처음 제주도 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못 간다고 초부터 치는 사람이 일단 없었다. 여행 계획에 들뜨기 시작한 사람들의 마음에 재를 뿌리게 될까 저어하며 조심히, 조용히, 가지 못하는 사정을 말한 사람이 있긴 했다. 그들도 같이 여행 가는 쪽으로 일정을 ‘최대한’ 맞추어보겠노라고 말했고 실제로 같이 가기 위해 노력도 했다.
또 다른, 이 팀의 뚜렷한 특징은 대체로 섬세한 희생과 묵직한 배려이다. 길거나 짧은 여행을 갈 때면 먹을 걸 등짐 가득히 챙겨 오고 식당에서는 서로 음식값을 내겠다고 계산대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기 예사이다. 식당에서 음식값을 낼 때 구두끈이 긴 사람이 없다. 구두끈을 매기는커녕 맨발로 계산대로 튀어나간다.
카드를 들고 음식값을 내겠다 말할 때 진심으로 낼 사람인지 아니면 말만 그러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낼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본심을 다른 이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팀은 진심으로 밥값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숙소에서 방을 정할 때도 늘 다툰다. 서로 불편하거나 작은 방에 자겠다고 먼저 말한다. 가평 풀빌라로 여행 갔을 때는 자신의 회원권으로 숙소를 예약해준 바로 그이가 방을 놓고 벌인 치열한 다툼에서 승리하여 거실 소파에서 잤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예약도 힘든 숙소를 기꺼이 제공한 이가 있었다. 2박 3일을 머무르고 체크아웃할 때 낸 돈은 추가로 마신 캡슐커피 값 몇천 원뿐이었다.
제주도 여행 첫날 마트에 들러 숙소에서 먹을 것들을 샀다. 한 분이 찐빵 봉지를 골라 들었다. 이미 카트에 빵 한 봉지가 담겨있었고 흰색 밀가루의, 흰색 빵을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나도 역시 그러하다. 서로의 취향을 조용히 존중한 우리는 그 찐빵도 맛있게 먹었다. 흰색이라 별로일 것으로 여겼던 그 찐빵 맛은 우리가 입을 모아 인생 찐빵이라고 부를만한 대단한 맛이었다. '빵 이미 한 봉지나 샀잖아욧. 먹을 것이 안 그래도 많은데 웬 찐빵이예욧!'라고 거두절미했다면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쫀득하고 담백하고 순한 맛이었다. 중문 우체국에서 서귀포 쪽으로 나가는 길목 끝 오른쪽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서 이 맛있는 찐빵을 살 수 있디.
나이가 제일 위인 분이 기꺼이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의 길안내 앱을 켜고 길목마다 섬세하게 운전 포인트를 집어 주었다. 스마트폰 앱을 켜놓아도 차량 안 여러 명의 두런 두런, 씨글법적 수다 속에 앱의 길안내는 쉽사리 침몰되고 차선을 제때 바꾸지 못하거나 출구를 놓치는 수가 있다. 뒷자리에 앉은 세분들은 차에 탈 때마다 제일 불편한 중간자리에 앉겠다고 다툰다. 탈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다툰다. 자신이 제일 불편한 자리에 앉겠다고.
제주공항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계획에 없었던 렌터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운전에 손을 놓은 지 몇 년 되었다. 몇 년 전 다친 손목 인대는 아직도 찌르르하는 날카로운 통증이 있어 손목 보호대를 챙겨가기는 했으나 캐리어안에 있었다. 막내에다 운전경력이 제일 많은 나는 운전대를 기꺼이 잡았다. 제주도는 외지인이 렌터카를 많이 이용해 전국에서 자동차 사고가 많기로 알려진 곳이다. 마지막 날 한라산을 가로질러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왔다. 김장을 한지 며칠 만에 간 여행이어서 손목이 더욱 아팠다. 늦가을이자 겨울 초입, 한라산 단풍들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사소한 불편 따윈 잠재울 정도였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작은 통증으로 엄살을 부리기에는 그동안 그들의 희생으로 이 모임에서 내가 누려온 혜택이 훨씬 더 컸다.
제주도 숙소는 예상보다 훨씬 더 쾌적했다. 털이 듬성듬성 붙어 있는 흑돼지구이, 고등어구이, 갈치조림 등 제주도라면 기대되는 음식을 골고루 먹었다. 가는 곳마다 풍광은 수려했다. 제주도를 여러 번 다녀왔고 몇 개월 산 적도 있었음에도 이번에 가본 ‘붉은오름’은 이름조차 나는 처음 듣는 곳이었다. 원시림 같은 숲 속의 무채색 나무들 사이에 장희빈이 마셨던 사약의 재료 중 하나였다는 천남성 열매가 요기 어린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붉은오름'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런 곳은 듣도 보도 못했다며 꼭 가야 해요?'라고 초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 맛보지 못했을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빨간색이었다.
머물렀던 숙소 내의 수풍석 박물관에서는 각각 물, 바람 그리고 돌이 유일한 주인공이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란 단어에서 떠오르는 기억이나 예상들을 완전히 비껴간, 낯설어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 지식과 상상을 크게 한 단계 끌어올린 경험이었다.
숙소 인근의 방주교회는 이제껏 본 인상 깊은 교회건물 중 하나였다. 물 위에 비치는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종교가 주는 선한 평화를 떠올리게 될 듯했다.
숙소 바로 옆의 본태박물관은 대단한 볼거리였다. 꽤 비싼 입장료에 망설이기도 했으나 막상 내부에 들어가니 입장료를 더 내더라도 기꺼이 들어와 볼만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마지막 날 제주시내 ‘순옥이네’에서 점심으로 전복물회, 성게 미역국, 전복죽을 먹었다. 흔히 짜고 달아 혹하게 되는 여행지의 음식과 달리 간은 순했고 해산물들은 터질듯한 생명력으로 몸과 마음을 묵직하게 채웠다. 점심을 먹고 식당 옆 바닷가에서 장난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여행 내내 평화롭게 흘러간 시간들에 대한 감사의 맘으로 구름 낀 날씨나, 제법 매서웠던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고서야 그날 하늘이 이렇게 흐렸구나라고 새삼 놀랐다.
제주도를 다녀와서 얼마 후 다시 뭉쳤다. 사정이 있어 제주여행을 같이 못 가신 분이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다며 잘 먹고 잘 보고 잘 쉬다 온 우리에게 오히려 점심을 사주었다. 삼겹살을 굽고 곤드레 돌솥밥과 갖가지 맛난 반찬을 볼이 미어터지게 먹으며 이를 당연히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또 때가 되면 어떤 희생을 할 테고, 무엇보다 그것을 희생이나 기여로 여기지도 않고 생색 낼 사람도 이 모임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하는 희생은 희생이 아니고 나눔이 된다는 것을 이 팀원으로부터 햇수로 7년째 배우고 있다.
이 모임의 시작이었던 2년의 봉사기간이 끝난 후에, 우리는 각자 다른 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모임 첫해에 점심도 먹고 그 외 소소한 경비로 쓰기 위해 한 달마다 소액의 회비를 걷었다. 서로 다투어 점심값을 내다보니 그해 말에 쌓인 돈이 제법 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을 돕는 곳에 기부했다. 그 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일 년에 한 번 기부금 모으기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에 동두천 쪽으로 기부금을 전달하러 간다. 뜨겁지는 않으나 따뜻한 우리 모임의 온기도 함께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PS 표지 사진 제주도 수풍석박물관 중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