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Doctor,

by 클라우디아


LA 유학시절, 대학 측이 학생들 중 기혼자와 그 가족을 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지진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고 땅덩어리가 큰 곳이라 그러한지 2층으로만 올린 건물들이 길고 넓게 늘어선 동네였다. 한국, 중국이나 대만, 인도 등 아시아권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고 루마니아와 지금은 사라진 유고슬라비아 연방 등 동구권에서 온 유학생들도 많았다.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집 저 집 아이들은 틈만 나면, 길 맞은편 공원으로 우르르 몰려가 놀기도 하고 단지 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서 복닥대며 어울려 놀았다.




여러 가지로 다양했던 아이들의 놀이가 그즈음 열리고 있었던 월드컵의 영향인지, 축구 강국들이 제법 포진한 동구권 유학생 가족이 많아서인지 한동안 축구로 집중되었다. 축구경기라기보단 그저 놀이였다. 제대로 된 골대도 없었고 선수 정족수를 채우기는커녕 시합에서 붙는 양쪽 선수의 숫자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편저편을 나누어 꽤 열을 올렸고 축구시합에서 지고 오면 분해서 씩씩거렸고, 상대방 골의 그물이 더 자주 출렁거린 날은 승리의 기쁨이 넘쳤고 식욕이 폭발하여 아이들은 볼이 미어터지게 밥을 먹곤 했다.




아이들이란 놀면서 다치고 다치면서 크기 마련이란 세상 이야기는 틀리는 법이 없는지, 축구시합에서 공중볼을 경합하던 와중에 큰아들의 머리가 들이 받혔다. 두피가 찢어져 순식간에 얼굴과 목, 그리고 상의까지 비범벅이 된 아들을 데리고 가까운 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들의 머리 상처를 꿰맨 의사는 모든 치료를 마치고 마스크와 장갑을 벗고 그동안 줄곧 대기실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남편과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당신의 아들을 치료한 누구입니다..’라며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진료, 치료 결과를 설명했다.



미국 의사는 우리를 똑바로 보고 정중하고 찬찬히 말했다. 그들의 문화가 원래 그러하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눈길을 회피하거나 내리 깔면 뭔가 숨기거나 진실하지 못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시선을 불편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태어나 자랐다. 상대방을, 특히 윗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건방지고도 매너가 아니라고 여기는 문화에서 자랐다. '눈 내리 깔아, 어디를 똑바로 쳐다봐'라는 말이 종종 싸움의 단초가 되는 문화를 보고 배웠다. 똑바로 상대방을 쳐다보는 군더더기를 묻히지 않은 시선이 상대방의 가슴으로 다가가는 가장 빠른 길임을 그날 미국 의사에게 제대로 배웠다.




미국인 의사는 아들의 머리 상처가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치료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치료가 끝나면 남게 될 흉터의 정도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들의 머리에서 철철 흐르던 피를 보고 놀라 뛰었던 내 가슴은 진정되었고 뒤이어 아들의 활발한 목소리를 듣고 더욱 안심이 되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응급'실에서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인 접수비가 생각났다. 응급실 간호사가 가리키는 데로 한참을 걸어가 '접수'하는 곳으로 갔다. 미국에서 원무과는 이렇게 응급치료 후에 방문하는 곳이었다.



응급상황이라 우선 이런저런 치료를 했고, 치료비가 얼마가 나왔다는 설명에 덧붙여 향후 치료에 대해 예상되는 치료비도 알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당장 치료비 전액을 내도 되며 혹시, 만약에 혹시라도, 치료비를 한꺼번에 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캘리포니아 주와 연방법이 정한 이런저런 혜택이 있는데 너의 가족이 이에 해당하는지 한번 들어 보겠느냐고 물었다. 우린 그 ’혹시’의 카테고리 안에 있었고 여러 가지 보조금에 관한 전문 상담 직원의 설명과 안내를 받았다. 그날의 치료비중 극히 일부분을 내고 나머진 우리 가족의 소득과 학생 가족이라는 신분에 해당되는 캘리포니아 주와 연방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을 신청했다. 어떤 서류를 언제까지 보내달라는 상담직원의 말을 끝으로 무척 많이 나올 것이라 예상되었던 치료비 걱정이 마무리되었다. 아들의 머리 상처는 꽤 크고 깊었고 앞으로 남은 치료과정도 길었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개인 의료보험이 없었다. 미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공적 의료보험이 없는 나라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이를 도입하려 시도했으나 부분적 보험제도에 머물렀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부터 '오바마케어'를 무효화시키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우린 미국 시민도 아니었으니 그런 보험의 수혜자가 될 수도 없었다.



한국 병원에서는 미국에서와는 정반대로 응급치료보다 원무과 일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2017년 후반부터 작년인 2018년 내내 남편은 여러 차례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운명의 여신이 갑자기 등짝을 후려갈기면 마음이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그 균열 끝에 몸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마치 충격을 받은 자동차 유리창이 쩍쩍 갈라지듯이. 남편이 어느 날 늦은 오후 한쪽 눈이 전혀 안 보인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 응급실 순례였다. 한쪽 눈 실명 치료과정 중 극심한 머리 통증이 왔다. 집 근처 병원 응급실을 다녀와도, 그다음엔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하고 처방된 약을 먹어도 머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몇 년 전 대상포진을 앓았던 남편의 표현으로는 그 통증과는 비교 불가한,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정으로 쪼는 듯한 머리 통증이었다. 두 응급실에서 처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틍증 약도 소용이 없었다.




다급한 상황에 대한민국에서 여러모로 1,2위를 다투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통증에 시달리던 남편은 응급실에 들어서자 그동안 지탱했던 의지도 다리의 힘도 풀렸는지 응급실 바닥에 쓰러져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과연 전국에서 1,2위를 다투는 병원이라 그러한지 간호사가 이전 두 병원보다 더 잽싸게 뛰어오더니, 이전 두 병원의 간호사보다 더 빨리 더 큰 목소리로, 그러나 똑같은 명령를 내게 내렸다. "보호자분 빨리 접수 먼저!"


[출처 : 구글 이미지]



한국의 의사는 1분짜리 의사이다. 얼마 전 남편의 양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안과에서 처방된 약을 사용하면 나았다. 이전에는 아프고 충혈된 눈이 한쪽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며 양쪽 눈 다 똑같은 증세에 상태는 더욱 심해졌다. 우선 급한 데로 동네 안과를 다시 찾았다. 속눈썹이 눈동자를 찌르는 게 원인이라며 눈썹 여러 개를 뽑더니 눈썹이 자라면 또 충혈될 테니 그때쯤 다시 오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안과에 다녀오고 3~4일이 지나도 통증과 충혈은 여전했다. 며칠 사이에 어떻게 속눈썹이 자라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지 의혹이 들었다. 아무래도 속눈썹 때문이 아닌 듯했다. 동네 다른 안과를 찾았다. 남편의 눈을 들여다본 의사는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를 획 돌려 컴퓨터에 처방전을 쓰며, '나흘 뒤에 오세요.'라고 말했다. '선생님, 이이 눈이 왜..'라고 내가 미쳐 한 문장을 마치기도 전에 '결막염인데 원인이야 어떻게 알겠어요? 뭐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라고 의사는 여전히 무뚝뚝하고 사나운 말투로 우리를 진찰실에서 내몰았다. 진찰실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게 잡아도 1분이 안되었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확인할 수 없는 모든 병의 공통된 원인은 스트레스이니까. 나는 "의사 선생님! 칼로 도막 내듯 하시는 그 말씀이 바로 스트레스거든욧!"라는 말을 애써 삼켰다. 병의 원인을 물어보면 의사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이라도 받은 듯 환자와 가족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스트레스라는 '정답'을 퉁명스레 던진다. 모든 진료는 1분이면 족하다.



한국병원 응급실에선 돈부터 지불해야 한다. 지불해야 응급인 병의 진료가 가능하다.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를 제대로 치료했는데 그 치료비를 못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태평양 이쪽은 그런 경우가 허다하고 저쪽은 그러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에선 환자가 응급실 바닥을 굴러도 '접수'를 먼저 해야 하고 미국은 치료를 우선 한 후 치료비 걱정을 해주었다는 낯간지런 이분법을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한국에도 환자에게 비교적 '친절한' 의사가 있고, 미국에도 비교적 '친절하지 못한' 의사가 있을 수 있다. 의료체계도 미국과 한국이 다르고 같은 서양이라도 미국과 영국도 다르다. 의사들의 위상이나 수입도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의료보험 수가를 따르는 한국에선 진료와 치료하는 환자의 수가 중요하니 빨리빨리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많이 볼수록 돈이 된다. 이 모든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겪은 내 고국의 의사들은 대체로 불친절했다. 한국의 의사는 '권위'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내 경험으로 확인했다.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을 듣고 싶다. 의사는 더 많은 돈을 위해 '하고 싶은 만큼'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만큼'의 설명을 환자에게 해주어야 한다.




나는 보지 않지만 'SKY 캐슬'이란 드라마가 요즘 화제인 모양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는 의사들과 자신의 자녀들도 의사로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강남의 스타강사 출신인 교육전문가라는 이가 'SKY 캐슬'에 관해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대대로 부와 명성을 물려받은 재벌들과 달리 의사들은 당대에 부자가 된 이들이다. 재벌가에 버금가는 웅장한 드라마 속 대 저택은 의사 당대에 이룬 부를 보여주고 그 부와 권위를 지키고 자식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 교육전문가의 드라마 분석 내용 중 일부분이다. 집 한 채와 맞먹는 비용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한다는 내용은 이 드라마의 '드라마틱'한 전개 중 극히 일부분이라고 한다.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십억을 치르고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한다는 '쎈' 설정은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과장되었을 수 있다. 그러한 과장과 거품을 걷어내도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건 사실이다. 돈과 미미하게나마 관련된 그들의 세계를 나도 슬쩍 본 적이 있다




시민의식도 놀랄 만큼 높아졌고 듣자 하니 적폐가 청산되고 있다고들 하니 설마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친구의 아들이 수술을 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는 수술 담당의에게 정성을 보이고 싶은데 봉투에 얼마를 넣으면 좋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의 다른 친구의 남편이 그 병원 외과의였다. 그러니 환자가족이 의사에게 '정성'을 보이는 관행쯤은 내가 익히 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실제로 남편이 외과의인 친구의 지갑 속엔 늘 백화점 상품권이 빵빵했다. 친구는 남편이 '갖다 주었다.'라고 말했다. 벌써 7~8년 전 일이며 지금은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겠지만 분명히 한국사회에서 존재했던 관행이다. 이러니 한 집안에 의사와 변호사는 하나씩 있어야 하는데...라는 탄식이 시중에 떠돌법하다.




대단한 수입뿐만 아니라 대단한 의사들의 위상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원시부족사회에서 주술사의 위상도, 전쟁 중 군대에서 군의 들의 중요성도 익히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겐 '몸뚱이'가 하나요 '목숨'도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권위적인 자세로 환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최대한 빨리 환자를 보고 재빨리 진찰실에서 내보내는 1분짜리 의사가 빵점이고 도태된 사회에 살고 싶다. 강산이 바뀌는데 10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 중에서 가장 영물이라는 인간이 그리 쉬이 바뀌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으니 의사가 진찰실에서 '권위'라는 명찰을 떼고 '의사'라는 명찰을 붙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한석규가 보여주었던 의사의 '낭만'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드라마 속의 사명감 넘치는 의사들은 드라마 '속'에 있었지 세속에서는 그 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 작년 가을부터 작년까지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며 많은 의사들을 보았다. 내가 다닌 병원의 의사들에 관해 토해낼 사연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혹시라도 멍석을 깔아 나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면.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올 말이란 고작 "즈기 슨상님, 그저 자알 부탁드려요잉."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에서 주인공 깡순이의 보드랍고 애교스러운 말투를 빌려)




PS : '톱스타 유백이'는 'SKY 캐슬'과 같은 시간대의 타 방송사 드라마이다. 골리앗 (= 'SKY캐슬')과 대적하는 다비드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이 작고 여린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를 애청하며 지인들에게 한창 영업 중이다. 아직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