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것은 맨홀에 빠지는 것과 같다. 덜컹, 훌러덩, 혹은 철렁, 순식간에 혹은 서서히, 우리는 사랑이라는 구멍 속으로 빠진다. 당신은 왜 그와 사랑에 빠졌는가?라는 질문에 '그냥.... 좋았어요.'라는 평범한 대답이 그래서 충분하다. 엄마를 닮은 그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갔어요.' '그의 믿음직한 모습에 반했던 것 같아요.'와 같은 대답은 코끼리 발가락 만지기와 같아서 사랑에 빠지는 그 오묘한 세계의 전부를 보여주기에 역부족이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 아이를 낳아 같이 기르고, 함께 나이가 들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병들고 늙어서 죽는 이 징글징글하고도 질긴 관계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 바로 '사랑에 빠지다'는 순간이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공들여 사랑을 이야기해왔다. 사랑의 여러 유형과 모습을 한 조각씩 떼어내어 신화로, 춤으로, 소설로, 드라마로 노래해왔다. 내가 요즘 손꼽아 기다리며 보는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의 사랑은 두 명의 울보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유백은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배우와 가수를 병행하며 대한민국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 간 후 한 번도 내려와 본 적이 없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톱스타이다. 유백의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엄마는 사기꾼 남자에게 빠져 아들은 돈을 뽑아 쓰는 은행 ATM으로 여긴다. 안티로 돌아선 극성팬이 준 독극물 테러로 죽다 살아난 적이 있었던 유백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보는 사람의 눈이 휘둥그래 해 질만큼 화려하게 치장된 집에 살지만 상처로 가득한 유백의 내면은 공허하다.
팬들을 향한 거칠고 매너 없는 소감과 리액션이 이슈가 되어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안 터지는 '여즉도'라는 섬으로 잠시 유배를 간 유백은 섬처녀 오강순의 집에 머물게 된다. 피지칼부터 연기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톱스타 씨'인 유백과 입만 열면 "거시기~ 거시기~"와 "오메~, 오메 으째야쓰까"를 입에 달고 사는 지극히 촌스런 그녀, 깡순은 로코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만나는 순간부터 투닥거린다.
깡다구가 세다고 '깡순'으로 불리는 오강순은 2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기잡이 나가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깡순은 천혜의 섬 여즉도에서 이웃집 마돌 오빠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과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부족할 것 없이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나 배려는 깡순에겐 갚아야 할 은혜였다. 오강순에겐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것보다 그들의 바람대로 사는 것이 우선이다. 깡순은 홀로 계실 할머니를 생각해서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대신하고 수능과 대학도 포기한다.
깡순은 자신만의 아지트에 엄마 아빠가 즐겨 듣던 카세트테이프를 고이 모아 놓고 아빠의 기타를 소중히 간직한다. 촌스럽게 옛날 가수인 전영록 오빠를 왜 좋아하냐고 유백이 묻자 엄마가 좋아하던 가수라고 깡순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안 계셔도 자신은 '암 시렁 치도 않다고, 할머니도 있고 마을 사람들도 있다'라고 깡순은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흘리지 않는 깡순의 눈물을 알아보며 깡순을 바라보는 유백의 눈길이 처음으로 따뜻해진다. 이 장면의 배경에 최호섭의 노래 '세월이 가면'이 흐른다.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 허탈한 표정 감출 순 없어, 힘없이 뒤돌아서는 그대의 모습을 흐린 눈으로 바라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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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백이 잠도 못 자며, 몸이 아파도 쉬지 않고 힘들게 번 돈으로 사준 빌딩과 집을 유백 엄마는 사기꾼 남자에게 속아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된다. 아들에게 더 이상 손 벌리지 않고 식당에서 허드레일을 하며 고달프게 사는 엄마를 유백은 미워할 수가 없다. 엄마로부터 그리고 팬이라고 생각했던 대중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꽁꽁 숨기며 유백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시 같은 말만 쏟아낼 뿐이다. 여린 속을 감추기 위해 가시를 세워야 하는 성게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깡순은 숨어 있는 유백의 상처를 알아본다.
부모님 제삿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다는 바닷물에 들어간 깡순을 보며 유백은 남편의 제삿날도 기억 못 하고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이날 밤 바닷가에서 유백은 부모님을 그리는 깡순을 품에 안아준다. 미워해야 하는 데 미워할 수 없는 엄마를 생각하며 우는 유백을 깡순은 품에 안아준다. 유백과 깡순의 눈물이 만나는 순간이다. 서로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순간이다. 오강 순을 향한 사랑을 깨달은 유백은 빽을 써서 오강순이 오매불망 좋아하는 가수 전영록을 만나게 해 준다. 전영록이 부르는 노래 '내 사랑 울보'를 들으며 나란히 앉은 유백과 강순은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내 사랑 울보'를 서로에게서 찾은 순간이다.
‘그 고운 두 눈에 눈물이 고여요, 그 무슨 슬픔이 있었길래 울고 있나요. 내 앞에서만은 눈물은 싫어요,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내 맘이 아파요. 내 사랑으로 당신의 아픔 감싸 줄게요, 이 두 손으로 당신의 눈물 닦아줄게요. 내 당신만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의 슬픔 나의 슬픔이니 우리 함께 나눠요. 이제는 웃어요 그리고 날 봐요.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내 맘이 흐뭇해. 지나간 괴로움 모두 다 잊고서 당신과 나의 영원한 꿈을 이제는 꾸어요.'
배우 김지석의 유백, 배우 전소민의 오강순, 둘의 매력은 정말이지 출구가 없다. 로코의 알파요 오메가이자, 승부수이고 결정타인 남녀 주인공의 매력과 '캐미'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려져 사랑스러움이 넘실대며 화면 밖으로 흘러넘친다. 유백의 친구 '만찟남' 남조는 사랑의 큐피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깡순의 이웃집 오빠인 '신사 씨' 최마돌은 유백, 오강순과 이루는 삼각관계의 한쪽이 되어 사랑의 불꽃에 확실한 불쏘시개가 되었다가 '신사 씨'답게 깔끔하게 물러난다.
다른 조연들의 통통 튀는 캐릭터와 다소 튀는듯한 연기들이 모여 희한하게도 상큼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퀼트를 하다보면 바느질보다 우선되는 것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 천들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하모니이다. 출연진 각각의 독특한 인생들이 모여 하나의 어여쁜 퀼트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백미는 이야기 곳곳에 제대로 녹아드는 노래들이다. 드라마의 각 에피소드에 찰떡처럼 완벽히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낸 제작진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다. 극본과 연출은 촘촘하고도 섬세하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나 염소까지도 적재적소에서 특급 연기를 펼친다.
팬으로서는 맘이 아주 아프게도 이 어여쁜 드라마의 시청률은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우직하게 애초의 작품의도를 풀어나가는 제작진의 뚝심이 놀랍다. 장날에 전을 펼친 장사꾼 중에 돈이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은 이를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듯이, 시청률이란 숫자에 흔들리지 않을 제작진을 찾기란 짚더미 속에서 실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이 정도로 잘 만들었는데 왜? 라며 억울한 시청률에 맘이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제작진으로부터 한두 개의 잡음이 밖으로 새어 나올 법도 하건만 사브작 사브작 공을 들여 한 회, 한 회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내력이 감탄스럽다.
톱스타 유백은 일주일에 한 번 불금, 금요일 밤 11시에 방영한다. 같은 시간에 '나 혼자 산다'와 'SKY 캐슬'이 방영된다. '나 혼자 산다'는 작년 MBC 예능대상에서 '올해의 예능프로그램상'을 받았고 전현무와 박나래라는 예능대상 후보가 두 명이나 있다. ‘SKY 캐슬'은 종편 최고의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는 화제작 중의 화제작이다.
'톱스타 유백'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 중에는 여러 명의 골리앗과 싸우는 다비드와 같은 이 작고 여린 드라마를 나만이라도 보아야겠다는 의무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유백과 오강순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이제는 그만 울고 지금부터는 웃기만을 애타게 바라게 되며, 그들이 웃으면 내 맘도 흐뭇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 '톱스타 유백'을 보는 시간은, 방송과 입소문을 탄 후 몰려든 사람들이 주욱 늘어선 맛집이 아니라, 저 골목길 끝에 식탁이 두어 개만 놓인 음식점을 찾아가는 길과 같다. 나만이 혹은 두어 명만이 알고 있는 그 음식점에는 웃음을 함부로 흘리지 않는 단정한 입매의 주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정갈히 차려내는 진하고 깊고 따뜻한 음식을 먹을 시간이 이제 한 번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릿하다.
극 중 대사를 빌어 드라마 ‘톱스타 유백’ 팀에게 인사의 말을 전한다, “그 짝 참 괜찮은 사람이예요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