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된 대퇴부

compassion

by 클라우디아


학생 한 명이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에게 문명의 ‘가장 초기 신호’는 무엇인지 물었다. 학생은 대답으로 '토기', '낚시 갈고리' 또는 '숫돌'을 예상했다. 그러나 마가렛 미드는 “치유된 대퇴부”라고 대답했다. 오로지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사람의) 치유된 대퇴부 뼈가 발견되지 않는다. 몸이 약한 자들, 부상당한 자들, 장애를 가진 자들을 무시해버리거나 잊는 곳에서도 또한 그 뼈는 발견되지 않는다라고 미드는 설명했다. 부상당한 대퇴부가 다 나을 때까지 그 부상자를 누군가가 돌보아 주었다. 부서진 대퇴부가 다 나을 때까지 누군가가 그 부상자를 위해 사냥을 해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연민이야 말로 문명의 최초의 증거라고 미드는 설명했다. [가독성을 위해 아래 원문을 약간 의역했습니다.]




[원문 : One day a student asked anthropologist Margaret Mead for the earliest sign of civilization in a given culture. He expected the answer to be a clay pot or perhaps a fish hook or grinding stone. Her answer, however, was “a healed femur.” Mead explained that healed femurs are not found where only the fittest survive and not where the weak or injured or disabled are ignored and forgotten. A healed femur shows that someone cared for that person with the broken leg while it healed. Someone did the hunting and brought food to the injured person until the broken femur healed. The evidence of compassion is the first sign of civilization.]




인류라고 부르는 종족이 동물의 세계를 뒤로 한 채 문명을 향해 첫발을 뗀 시기였다. 동이 트자마자 동굴을 나서 해가 질 때까지 사냥을 해도 과연 그날에 필요한 식량을 구할지, 텅 빈 두 손으로 돌아와야 할지 모를 시기였다. 동물과의 싸움이나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의 위세에 눌려 사냥에 나선 바로 그 날, 그의 목숨이 다할 수도 있었던 시기였다.




억수 같은 비가 지속적으로 줄기차게 내리거나, 허리까지 차오른 눈 더미에 동굴 밖을 못 나가면 얼마 안 되는 저장 음식으로 버티거나 굶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던 때였다. 손가락 하나, 한쪽 발을 다친 것도 아니다. 대퇴부를 다쳤다 함은 한 두 달 만에 일어서서 식량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대퇴부를 다쳐 꼼짝없이 누워 있는 이에게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얻었을지도 모를 음식을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서너 주도 아니고 몇 달 동안 누워 있는 이를 누군가가 먹이고 돌보고 치유시켰다.



사회복지기관이나 교육 또는 종교기관에 의해 ‘네 이웃을 섬겨라.’라는 구호를 보고 배우고 익혀 실천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두발로 서서 걷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짐승의 모습으로, 급하면 이전의 습관대로 기어 다니기도 했으리라.




인류가 동물의 세계를 떠나 비로소 인간의 길을 걷게 된 계기로 많은 이들이 직립보행을 꼽는다. 두발로 서서 걷게 됨으로써 더 먼 거리를 볼 수 있게 되어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가능성, 먹이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오직 인간의 엄지손가락만이 접힌다는 사실을 문명의 불씨로 보는 이들도 있다. 엄지손가락이 접힌다는 것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을 가능케 했고 수렵과 채집 또한 더 많이, 더 쉽게 이루어졌다.



불의 발견 또한 문명의 결정적인 단초이다. 추위의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인간의 생존율이 높아졌다. 불로 익힌 고기를 양껏 먹고 두뇌의 용량과 능력치가 커졌다. 힘, 의지, 두뇌를 합친 ‘협력’이란 그물이 인간에게 문명의 문을 열어주었다고도 한다. 협력을 통해 순간의 수요보다 더 많은 음식물을 사냥하거나 채집하여 저장하면서 분업, 사회구조가 시작되었고 종교와 문명의 출발이 가능해졌다고도 한다. 이 모두는 학자들의 연구결과이며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론들이다.




그러나 나는, 인류가 문명으로의 첫 발자국을 떼게 만든 것이 'compassion, 연민'이라는 미드의 말에 심정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한다. 약하거나 병들거나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추방하고 죽게 놔두는 것은 집단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들 수는 있다. 아직도 회자되는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예를 굳이 들지 않아도 강한 자들만으로 구성된 집단의 말로는 명확하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마가렛 미드가 문명의 최초의 증거라고 말했던 ‘compassion’이 갖는 ‘연민, 동감, 공명, 찬성’과 같은 사전적인 풀이는 이 단어의 포괄적인 의미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같은 어근을 한 ‘community, 공동체’ ‘company, 동반자’를 반추해보면 ‘compassion’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넓어진다. 난간 끝에 위태롭게 앉아 온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작고 가냘픈 새를 볼 때, 우리 맘속에 저절로 솟아오르는 정서가 ‘compassion’이라고 하면 이 단어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빨라진다.





최초의 인류가 노력이나 학습으로 ‘연민, 공명’이란 정서를 배우거나 습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너에게 베풀었으니 후일 나는 그 보답을 받게 되리라’라는 계산만도 결코 아니다. 멀고 먼 조상들이 행했던 'compassion, 연민'은 오늘날 정치 또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생로병사, 실업 등 개인적, 사회적인 리스크의 쉐어링 'risk-sharing’이다. 동물의 세계를 겨우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부터 연민이라는 ‘보험’의 유전자는 ‘우리, 인류’에게 내재해있었다. ‘compassion’이라는 열쇠로 문명의 새벽을 열고 걸어 나간 인류의 조상들은 그 고귀하고 강력한 유전자를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전해주었다. ‘연민’은 우리 인류를 하나의 ‘팀’으로 만든 강력한 요인중 하나이다. 우리를 함께 걷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내가 어두운 골목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 때, 판단과 질책은 잠시 미루어 두고 우선 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같이 울어준 그대여, May God bless you! 나는 그대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