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령

산에서 만난 헤르메스

by 클라우디아

고른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바위 덩어리 길이었다. 자갈이나 자그마한 돌멩이가 아니라,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들의 하산 길은 잘 생긴 나무나 기가 막힌 봉우리를 감탄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입을 앙다물었다.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했다.




순간, 시야를 온통 가리는 시커먼 덩어리가 오른쪽 숲에서 내달려와 바로 내 눈 앞에 쿵하는 굉음으로 착지하더니 몸을 획 날려 왼쪽 숲으로 사라졌다. 그 큰 덩치로, 그 가파른 길을, 그렇게 빽빽한 숲을,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가 멧돼지였다는 걸 내가 미쳐 깨닫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얼이 빠진 체로 서있었다. 그때 오른쪽 숲길에서 다른 두 마리의 멧돼지가 나타났다. 우리 쪽을 힐끗 본 그들은 순식간에 산 비탈길을 거스르며 내달렸다. ‘집채만 한' 멧돼지란 말이 과장이 아니었구나. 놀랄 틈도 없었다. 그저 숨을 쉴 수가 없었을 뿐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어쩌다 만나는 청설모를 보고 귀엽다느니 만지면 안 된다느니 하며 가볍게 한두 시간 산책을 즐기던 대모산을 옆에 끼고 살았었다. 쉬엄쉬엄 걸어가서 찬거리를 보던 가락시장을 앞에 두고 살았었다. 그렇게 꽉 채운 23년의 강남 살이를 끊어내고 강북, 북한산 턱밑 동네 정릉으로 이사온지 2개월째 되던 날의 산행길이었다, 세 마리의 집채만 한 멧돼지를 만난 날은.




전원생활이니 귀촌이니 하는 단어에 미혹되기도 했었다. '한국인의 밥상'이나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탈서울’을 꿈꾸게 하는 TV 프로그램을 즐겨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제주도에서 불어오던 이주 열풍에 몸살을 앓던 때, 마침 남편의 안식년이기도 해서 1년 동안 살아 보겠노라며 보따리를 꾸려 제주도에 내려갔었다. 털이 듬성듬성 붙어있는 흑돼지를 물리도록 먹고 올레길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다. 제주의 비바람이 결정타였다. 살다 살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비바람은 처음이었다. 샅샅이 철저하게 후려치며 빈틈없이 온몸을 적시던 비바람에 호되게 쫓기어 6개월 만에 미련 없이 제주도에서 철수했었다.




좀 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밀려가던 어느 날, 운명의 여신이 휘두른 등짝 스매싱으로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낫과 호미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도시 생활자인 우리 부부는 좀처럼 서울을 떠날 마음에는 이르지 못했다. 남편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북으로 자연스레 의견을 맞추었다. 남편이 출퇴근 하기에는 대중교통편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평창동과 구기동은 한 달여 고민 끝에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가회동과 삼청동은 해가 떠서, 해진 후 한참까지 뭉텅이로 몰려다니는 인파 때문에 일찌감치 고려 대상에서 탈락시켰다. 재동 중앙고등학교 앞 골목길 끝에 자그마하게 누워 있던 한옥 집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보여주고 계약하겠다는 내 맘이 먼저 이틀 만에 시들해졌다. 그 집에서 사는 내 모습이 영 그려지지 않았다. 빈약하지 않은 나의 상상력으로도.




우리 부부의 유일한 오락이며 취미이자 시간 때우기가 등산이라는 생각에 북한산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우이 경전철에 몸을 실었다. 종점인 북한산 우이 역부터, 솥밭공원역, 4.19 민주묘지 역, 가오리역, 화계 역, 삼양 역, 삼양사거리역, 솔샘 역을 하나씩 차례로 벽돌 격파하듯 훑어 내렸다. 그 모든 동네의 집들을 샅샅이 제대로 살펴보겠다며 맘을 다잡고 신발 끈을 수시로 고쳐 매었다. 두 주 동안 우이 경전철에 굴비 꿰듯 조롱조롱 매달린 동네들의 집을 보러 다녔다. 동네 분식집에 들어가 김밥이나 어묵도 먹고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도 사 마시며 그곳의 분위기를 훔쳐보았다. 동네 시장 자판에 놓인 자반고등어 값도 물어보았고 어슬렁거리며 골목길의 냄새도 하릴없이 큼큼거렸다. 그 사이사이에 며칠씩 몸살로 몸져눕기도 했다.




북한산 보국문 역, 그 ‘지하'철역에서 '올라'온 나를 마중한 것은 비현실적일 만큼 노골적으로 솟아있는 북한산 봉우리였다. 느닷없이 눈앞까지 바짝 다가온 산세에 놀라 허둥대며 더듬는 눈길에 산허리와 수줍은 능선 위에 옹기종기 올라앉은 집들이 보였다. 긴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내려앉았거나 혹은 내려앉고 있는 중인 집들과,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관절이 삐꺽거리는 나는 사이좋은 한 팀이 될 듯했다.


북한산 보국문에서 대성문 길


보국문 역에서 버스로 갈아탄 후 오르막길을 구불구불 올라 산 앞에 바싹 다가서면 닿은 동네의 집을 계약했다. 신속하게 이사 준비를 했다. 행장은 간편하게 꾸렸다. 천여 권 남짓한 책을 관악구 소재 성당 부속 도서관에 기증했다. 차고 넘치던 그릇의 반을 버렸다. 흘러넘치던 의류의 70프로 이상을 헌 옷 함으로 날랐다. 천년만년 살겠다며 시간과 돈과 취향을 한껏 쏟아부어 내부 수리를 한 지 8개월도 체 안 된 '내' 집이었다. 깔끔한 외양의 부부에게 전세를 놓았다. 한 치 앞도 못 본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옛 이웃들과 과하다 싶을 정도의 아쉬움과 이별의 정을 주고받으며 한강 이남을 떠났다.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 이건만, 이제껏 살던 곳과는 전혀 색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강을 건너니 풍광이 바뀌었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면 가벼운 산책길이 대단한 산행으로, 그 길에서 만나는 동물이 청설모에서 멧돼지로. 적응하자 잘 살아내자, 주문을 외웠다.




이사 온 집에서 몇 발자국 거리가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이다. 국립공원 주차장과 붙어 있는 낡고 작은 건물 하나를 지나 북한산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국립공원으로 매일 산책하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가?"라는 말을 덕담처럼 주고받으며 우리 부부는 익숙하던 세상에서 튕겨 나온 추위를 서로 달랬다. 보국문길, 대성문 길, 대동문길, 구기동길, 평창동길, 수유동길 등등 북한산 등반길을 하나씩 헤집으며 이렇게 좋은 곳을 왜 이제야 왔는지, 이제라도 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하며 암울한 시간을 포장했다. 다음엔 불광동 쪽으로 가보자고, 그다음엔 우이동 쪽으로도 가보자고, 상대적으로 등산객이 많은 그쪽엔 아마도 맛집도 많을 거라고 입맛을 다시며 우리 부부는 ‘행복’을 주문해 보았다.


북한산 정릉 탐방소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보이는 보국문과 대성문을 가리키는 이정표



태생적으로 엉덩이가 무르는 것조차 모르고 한 곳에 머물러 있기만 했던 나는 서서히 낯선 곳에 적응하는 중이다. 이사 오기 전에 집 앞 대형마트에서 일용품과 식료품을 배달시키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경동시장을 다닌다. 배달앱을 익혀 생수 주문도 척척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동네 도서관의 대여와 반납 규칙도 숙지했다. 정릉천을 따라 내려가 두부며 계란, 우유 등을 사 오는 것이 이제는 여러 산책길 중 하나이다. 난생처음 용달차를 이용해 양껏 재료를 사들여 작년 못지않은 양과 종류의 김장도 너끈히 해치웠다.


김장을 마친 후 배추 시래기를 삶아 빨랫줄에 널어 말리다


이제 정릉으로 이사 온 지 4개월째이다. 멧돼지를 만난 후에도 여전히 북한산으로 산책 또는 산행길을 나선다. 북한산 탐방로를 타고 올랐다가 국민대 쪽으로 내려가 대학 캠퍼스를 찔끔찔끔 둘러보기도 하고, 정릉골 쪽으로 내려가 정릉시장에 들러 소소한 찬거리를 사 오기도 하는 등 산책길이 점점 다양해졌다. 운명이란 이름의 바람이 자기 멋대로 불어도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는 일을 쉼 없이 하고 있다.




북한산이 보낸 전령 - '집채만 한'멧돼지를 만난 일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바뀐 환경에 대한 강력한 시그널이었다. 그 호된 ‘멧돼지’ 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나는 ‘이 나이에 이사라니, 낯선 곳에서 어떻게 적응한단 말인가? oldies but goodies! 그리워라 옛 친구들, 내가 살던 동네여!’와 같은 말랑말랑한 멜랑꼴리를 집어던졌다. 나는 북한산이 전령을 통해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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