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미스터 트롯'
24시간 내내 먹기만 하는 것도, 책만 읽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나에게 있어 음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또한 음악에 있어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서너 시간 온 집안을 구석구석 들쑤시며 대청소할 때 내가 흔히 노동요로 선택하는 것은 쇼스타코비치이고, 한두 시간 북한산 둘레길 산책 시에 동반자로 함께 걷는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설적인 콘서트 중 하나이지만, ‘뽕짝’이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질리지도 않고 먹는 나의 집밥이다. 신세영의 '전선야곡'은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들었다. 이 노래의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쓸어안고 싶었소.'라는 부분은 몇천만 번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두 구절은 노래를 만든 이의 조각조각난 심장이다. 트롯은 음악이란 세계에 대한 내 애정의 출발점이자 바탕이다. 지금 진행 중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 나온 경연곡 중에서 내가 몰랐던 노래는 몇 곡뿐이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시청할 생각은 정말이지 추호도 없었다. '덕질'중에 ‘최악’이 '서바 덕질'이 아니던가. '나는 가수다'처럼 쟁쟁한 현역 가수들이 등장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내 '원픽'이 생기면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만큼이나 괴로움이 불쑥거렸다. 서바이벌 경연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매회 탈락자가 생기는 것이다. 1등이니 5등이니 하며 숫자로 묵직하고도 아프게 다가오는 내 ‘픽’의 성적과 탈락 여부에 내 심장은 너덜거렸다. 쫄보 중에서도 상 쫄보인 나는 심장이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온 월남쌈처럼 얇은 사람이기에 애당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두 귀를 빈틈없이 막아 버리겠다고 다짐했었다. 더구나 ‘내일은 미스터 트롯’처럼 ‘무명’들의 경연에서의 ‘픽’은 가슴으로 품어서, 애를 태우며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정화수를 떠다 놓고 성공을 비는 ‘자식’ 같은 존재들이다. 그 ‘자식들’의 생사여부가 매회 갈린다. 바로 이것이 ‘서바덕질’에서 유독 ‘까’와 ‘빠’들의 ‘슬픈’ 칼춤이 난무하는 이유다. 서바'에서 '원픽'같은 것은 살아생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나는 오래전에 다짐했었다.
코로나에 관련된 뉴스를 찾아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던 중, 지극히도 우연히 임영웅의 노래를 들었다. 미스터 트롯 예선전이 재방송 중이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던 내 도가니를 순간 얼음땡! 시킨 것은 그가 부른 '바램’이란 노래의 '아픕니다'라는 부분이었다. 길쭉한 두 다리로 무대에 뿌리를 내리고, 인이어를 끼지 않고, 왼손으로 부드럽게 마이크를 잡고, 그가 한 음절, 한 음절 야무지게도 건네주는 노래를 하나도 흘리지 않고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의 노래는 가슴으로 직진했다. 숨을 죽였다. '사랑한다'라고 부를 때 임영웅의 온몸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터져 나오는 감정을 꾹꾹 눌러 가라앉혔다. '저 높은 곳'이라는 부분에서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바램'을 부르며 한 유일하고도 가장 큰 동작이었다. 순식간에 그의 노래가 끝났다. 멈추었던 내 숨이 되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있었다. 그토록 내가 거부했던 '서바 덕질',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원픽'이 생긴 순간이었다.
임영웅의 노래는 단단하다. 어느 정도의 담금질을 거쳐 나온 소리인지는 그의 노래 첫 소절만 들어도 단박에 느껴진다. 대배우들이 찰나의 눈빛만으로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순간과 같다. 그가 스스로를 단련시킨 수많은 기록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전국 방방곡곡, 장터에서, 모임에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크거나 작은 축제에서, 버스킹에서 노래를 불렀다. 수많은 커버곡을 듣고 임영웅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 지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음악적 풍광에 이르기까지 그가 ‘갈고닦고 가다듬고 고치고 쓸었던’ 기록들은 파도 파도 또 나온다. 열심히, 게다가 즐거이 노래 부르며 살아왔던 그의 시간들이 유튜브에 하나의 장려한 ‘아카이브’를 이루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찬탄해 마지않는 '정확한 딕션', '완급 조절 -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레치타티보’들이 이 시간들을 거치며 탄생했다. 그가 이번 경연에서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중에서, '어찌 혼자 가려하오.'라는 부분은 임영웅이 쥐락펴락하는 황홀한 완급 조절의 한 예이다. ‘미스터 트롯'심사위원 중 한 명인 조영수 마스터가 임영웅을 가리켜 '실수를 안 할 스타일'이라고 말한 것은 임영웅의 이처럼 단단하여 흔들림 없는 기본 바탕에 대한 타당한 평가이다.
임영웅이 노래 부를 때의 에티튜드와 음색에는 ‘뽕필’과 품격이 나란히 존재한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 '보랏빛 엽서'에서 임영웅이란 브랜드의 품격이 완연히 드러난다. 그가 레전드 미션에서 '울면서 후회하네’를 부르면서 꺾기와 간드러짐,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로 연달아 트롯의 맛 폭죽을 화려하게 터트릴 때에도 그만의 서정적 품격이 바탕에 은은히 깔려있다. 임영웅이 가요무대에서 불렀던 ‘나는 몰랐네’는 그가 그려낸 많은 서정적 풍광중 하나이다. 우리 앞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오르페우스’가 지극히 아름답게 빚어낸 이 노래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이런 노래들 뒤에 분명히 존재하는 구도의 시간들이 이번 경연에서 ‘보랏빛 엽서’와 같은 풍광을 만들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임영웅은 서정적 품격이라는 열쇠로 트롯의 새시대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미스터 트롯'에 나온 출연자들 중에는 내가 좋아하게 된 이들이 여럿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이와 끼와 흥이 넘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하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횟수를 거듭할수록 감탄도 거듭된다. 몇몇 가수의 빼어난 가창력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이러한 감탄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감동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끗이 더 필요하다. 그 마지막 매직터치가 '감성'이라는 부분이다. 귀로 들어와 머리까지 이르면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오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흐르면, 그 순간 우리의 숨은 멎고 우리의 온몸은 귀가 된다. 내게 있어 ‘임영웅’이란 브랜드가 다다른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온라인 재생수 2천만 뷰 이상으로 이번 경연 출연자 중 1위, 미스터 트롯 온라인 대국민 투표 연속 1위 등 그가 이루어낸 지표가 가리키듯 ‘임영웅’이란 브랜드가 톡 하고 건드린 감성은 나뿐만이 아니다.
감탄을 넘어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임영웅의 감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김동인의 '광화사'가 떠오른다. 이 단편소설의 제목처럼 '미친 화가'인 주인공 솔거는 몇십 년 동안 완벽한 미인상을 그리는데 매달린다. 미인도의 모든 것을 완성하고 남은 한 부분, 눈동자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못 그리게 되자 ‘광화사’ 솔거는 더욱더 미쳐간다. 미인도의 눈동자를 그리기 위한 영감을 찾기 위해 솔거는 몸부림친다. 그는 아름다웠던 예전의 눈을 다시 보여달라며 소경인 아내를 흔들고 밀치다가 죽인다. 화가의 아내가 쓰러지며 벼루가 뒤집어지고 먹물이 튀어 그림 속 미인의 눈동자가 완성된다. 파이널 터치, 한 끗 더, 마지막 1프로는 이렇게 이루기에도, 분석하기에도 힘든 영역이다. 우연히 튄 먹물이 완성한 눈동자는 어쩌면, 온 생을 예술에 던지고는 미쳐버린 화가에게 내미는 신의 손길은 아닐까? 흔히 말하지 않는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범주는 신의 영역이라고. 이는 미스터 트롯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김준수 씨가 임영웅의 감성은 ‘타고난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임영웅은 노래 부르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뜻이며 나는 이에 동의한다.
트롯이란 음악이 내포하는 솔직하고 직선적인 가사, 독특한 리듬, 꺾기와 완급조절이라는 보편적인 재료에 임영웅만의 ‘감성’이 더해지니 어느 누구의 노래를 불러도 '임영웅의 노래'가 된다. 임영웅의 '바램', '일편단심 민들레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보랏빛 엽서', '울면서 후회하네'가 된다. 그가 부른 이 노래들 중 어디에서도 원곡자인 노사연, 조용필, 김광석, 설운도, 주현미의 그늘이 어른거리지 않는다.
결승전이 남았지만 결승전은 끝났다. 우리는 이미 ‘임영웅'을 가졌다. 브랜드 ‘임영웅'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