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아이의 하루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20180724

by 도대영

#1 아이의 취향


아이들은 같은 책을 수 십 번, 수 백 번 읽는다. 읽어주는 어른들은 되레 ‘지겹지 않을까'라고 여기지만 아이들은 매 번 즐겁다. 같은 이야기인데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그 이유는 읽는 아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은 어제 그 책을 읽던, 듣던 그 아이가 아니다. 또 다른 경험과 생각과 가능성이 더해진 완전히 새로운 아이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어도 전과 다른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강박적인 새로움보다는 우직한 반복이 더 깊은 맛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딸내미에게 아쿠아리움이 그러하다. 어릴 때부터 해양 생물을 좋아하는 딸내미는 아쿠아리움을 제법 다녔다. 여러 곳을 다녔지만 한계가 있기에 같은 장소를 몇 번씩 가고 있다. 하지만 갈 때마다 즐겁다. 그리고 반응이 다르다. 오늘도 친한 서연이네와 일산 아쿠아플라넷을 또 갔다. 그리고 예전과 달랐다. 입장과 동시에 작은 물고기, 해파리들이 등장했다. 하나하나에 관심을 표하고 감탄하는 서연이와 달리 딸내미는 연신 유모차에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가자, 가자~”

“알았어. 너 어디 가자고 하는지 알아.”


나는 유모차를 끌고 직진했다. 입장료를 2만 원이라고 하면 한 만 원어치 정도는 그냥 지나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머지 만 원에서 십 만원어치의 효과를 뽑아내면 된다.

곧 수조에 커다란 타이거 샌드 샤크 두 마리가 나타났다. 딸내미는 번개 같이 유모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상어 얼굴이 닿을 만큼 수조에 달라붙었다.


“우와~ 아빠, 이것 봐요! 상어 이빨이 뾰족뾰족해.”

“그러게, 엄청 날카롭네.”

“치카치카 열심히 해야겠다.”


수조에 들어갈 기세였다. 유유히 수영하는 상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함께 있는 다른 수많은 물고기들은 그림자 취급이었다. 곧 친구가 도착했고 둘은 화면에서 나오는 핑크퐁 아기 상어에 빠졌다. 열심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참을 그렇게 빠져 있던 지연이는 다시 시크하게 말했다.


“아빠, 가자~”

“알았으~”


그렇게 유모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 뒤 딸내미가 오랜 시간 머문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엄청 좋아하는 바다코끼리 수조, 펭귄 미끄럼틀, 카약, 새들이 가득한 새장, 그리고 처음 가서 먹이를 줘 본 양, 염소 우리뿐이었다. 나머지는 눈길도 안 주거나 잠시 머물 뿐이었다. 그런 딸내미를 보며 나의 파리 여행이 떠올랐다. 누구나 본다는 루브르 미술관은 쳐다보지도 않고 좋아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6시간을 죽 치고 있었더랬다. 빵 하나 입에 물고 그림 앞에 털썩 주저앉아 감탄하고 글 쓰고 상상하던 나, 그리고 벌써부터 자신의 주장과 취향이 분명한 우리 딸내미,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또 이 아쿠아플라넷을 오면 새로운 성장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2 아이의 성장


저녁을 먹고 가게를 나섰다.

“아빠가 먼저 가야지.”


진영이형이 서연이와 엘리베이터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딸내미가 끼어들어 같이 달렸다. 딸내미와 진영이형이 먼저 도착했고 서연이가 거의 같이 도착했다. 그때 서연이의 울음이 터졌다.


“으앙~”


일등을 하지 못해 속상한 것이었다. 기분을 달래고자 다른 곳으로 또 뛰는 걸 제안했다. 하지만 우리 딸내미는 이번에도 끼어서 뛰었고 앞서 갔다. 서연이는 더 속상해했다. 우리는 얼른 내려가서 주의를 돌리려 했다.


“아빠, 서연이 왜 울어?”

“응, 일등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속상한가 봐. 지연이도 하고 싶은 거 있는데 못하면 속상할 때 있잖아.”

“그래?”


그러더니 얼마 후 딸내미가 서연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툴지만 세상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서연아, 같이 일등해도, 괜찮아!”


그 뒤 넓은 공원을 걷고 뛰며 기분전환을 했다. 서연이도 이내 환하게 웃었다.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놀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럼 이번에는 둘이 같이 손 잡고 뛰어 볼까?”


진영이형이 말했다. 그 말에 둘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딸내미가 다시 말했다.


“우리 같이 일등 하자~”

“응!”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은 채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속도가 맞지 않아 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둘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고 도착한 뒤 펄쩍펄쩍 뛰었다.


“와~ 도착했다!”

“우와~ 도착했네. 만세~”


두 아가씨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만세를 했다. 내가 덧붙였다.


“일등 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저요~”


둘은 하늘에 닿을 만큼 손을 번쩍 들었다. 천사 같이 아름다운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이다.


“같이 일등 하니까 더 재미있다, 그치?”

“응!”


그렇게 아이는 친구와 함께 성장해간다.


#3 아이의 첫 경험


집에 돌아왔다. 목욕을 하고 인형 놀이를 했다.


“딸내미, 이제 잘 시간이야.”

“아크림 먹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그제야 오기 전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주기로 한 게 생각났다. 나는 내 생일 때 썼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어떤 거 먹을래? 지연이가 하나 골라.”


딸내미는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입이 춤을 추었다.


“지연아, 맛있어?”

“추르르릅~ 응, 맛있…”


갑자기 딸내미 인상이 굳어졌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기면서 오열을 시작했다.


“으앙!!!!!!!”

“딸내미, 왜 그래?”

“으앙!!!! 이쁘 우어드지나져!!!”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딸내미는 웬만해선 이리 오열하지 않는다.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지연아, 잠깐만 숨 좀 쉬어 볼까? 후우~”


딸내미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숨을 크게 쉬도록 했다. 하지만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면 딸내미가 더 놀랄 것이기에 침착하고 평온한 척했다. 하지만 가슴은 두근대고 있었다.


‘왜 그러지? 플라스틱 막대가 이에 부딪혔나? 혀를 깨물었나? 무슨 일이지?’


딸내미는 여전히 울었다. 하지만 조금 진정이 되면서 말이 정확하게 들렸다.


“이빨이 흔들려!!! 이빨이 흔들려!!!”


이가 흔들린다니. 덜컥 겁이 났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몸은 약하다. 혹시 이가 진짜 잘못되었나? 나는 다시 지연이를 달랬다. 다행히 조금 더 진정되었다.


“지연아, 이제 아버지 말 들려?”

“훌쩍… 응.”

“저거 무슨 인형이지?”

“팬더곰.”

“오잉? 그러네~ 그런 지연아, 아버지가 이 한 번 살펴볼게. 지연이 이를 제일 깨끗하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지?”

“아빠.”

“그렇지? 아버지가 큰 크롱 병균도 다 잡아주잖아? 이번에도 아버지 믿어~ 아~ 해봐.”


딸내미는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세심하게 이 하나하나를 만져 보았다. 혹시나 문제가 있을까 봐 조금의 이질감이라도 있는지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지연아, 아버지가 방금 다 만져 봤거든. 지연이 이 아픈 거 없어. 흔들리는 것도 없고.”

“아니야, 흔들렸어. 왜 그래?”

“음……”


나도 의아했다. 없는 걸 착각하거나 무언가를 잘못 느꼈다고 하기에 우리 딸내미는 너무 분명하고 센서티브 한 아이였다. 분명히 느낌이 있었고 원인도 있다. 뭘까…… 고민하며 문득 남은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그때 파란 알갱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 아이스크림은!!!’


순간 머릿속에 환해졌다. 흐렸던 화면이 뚜렷해진 느낌이었다.


“아~ 지연아, 아버지 알았다!”

“뭔데?”

“지연이 저 아이스크림 먹었잖아? 저기 아이스크림에 파란색 동그라미들 보여?”

“응…..”

“저 동그라미가 장난꾸러기 아이스크림이거든. 저 장난꾸러기는 입 안에 들어가면 장난을 쳐.”


장난이라는 말에 딸내미는 몸을 돌리며 물었다.


“무슨 장난?”

“응~ 입 안을 이렇게 다다다다~ 하고 뛰어다녀. 그러면서 이에 부딪히기도 하고.”


나는 딸내미를 안고 거실을 뛰면서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까 지연이가 이가 흔들린다고 느낀 건 진짜로 이가 흔들린 게 아니라 저 장난꾸러기 아이스크림이 장난치다 부딪힌 거야~”

“그럼 크롱 병균처럼 지연이 아프게 해?”

“아니~ 하나도 아프게 안 해. 쟤는 병균은 아니고 그냥 장난꾸러기거든. 지금 지연이 이 흔들려요?”


딸내미는 자기 이를 만져보며 대답했다.


“음….. 아니.”

“거봐. 장난이 끝나서 그래.”


그제야 딸내미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뭐야~ 개구쟁이잖아~”

“맞아, 으이구~ 슈팅스타 개구쟁이!”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못 말려~”


딸내미의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 후에 문제의 아이스크림은 싱크대에 버려졌다. 물이 닿자 여전히 튀는 소리가 났지만 딸내미는 아예 나한테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 사실 배스킨라빈스 31의 슈팅스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중 하나다. 그러나 딸내미에게는 충격적인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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