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비글 한 마리 키우실래요?

20180727

by 도대영

(다음의 일들은 오늘 하루,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비글 파워 Lv.1


아침에 어김없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뽀로로다. 나는 딸내미가 선택한 옷을 서둘러 입히고 머리 묶기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은 더 기대된다. 왜냐하면 어제 강의에서 만난 분이 분무기로 물을 뿌리면서 하면 머리가 짱짱하게 잘 묶인다는 꿀팁을 주셨기 때문이다. 물이 가득한 분무기와 빗, 고무 머리끈과 굵은 머리끈, 준비는 완벽하다.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은 업그레이드된 춘리 머리에 도전한다. 가르마를 잊지 않는다. 섬세한 작업이 시작된다. 순조롭다. 이제 필살 아이템인 분무를 더한다.


“아, 차가워!”


헉, 딸내미가 눈치챘다.(하긴, 눈치를 못 채면 더 이상하다.) 나는 긴장하고 얼음이 되었다. 잠시 뒤 딸내미가 덧붙인다.


“한 번 더 해줘.”


오잉? 더운데 물을 뿌려서 시원한 걸까? 딸내미는 좋아하는 눈치다. 나는 안도하며 머리 작업을 이어 간다. 딸내미는 뽀로로에게서 관심을 거두며 나에게 딜을 한다.


“내가 한 번 해봐도 돼?”

“그래, 그럼 나중에 나가서 해보자.”

“지금 해보고 싶어요.”

“집 안에서는 안 돼.”


그러자 딸내미가 묻는다.


“아버지는 했잖아.”


헉;;;;;; 말문이 막혔다. 내가 더듬거리는 사이 딸내미는 웃으며 분무기를 손에 쥐었다.


“지연아, 그럼 들고만 있어. 아버지 저 방에 가서 니 모자 가져올게.”

“그래~”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딸내미의 대답이 너무 경쾌하다는 걸. 모자를 가져오고 나니 이미 늦은 뒤였다. 딸내미는 양손으로 방아쇠를 쥔 채 여기저기 정조준 사격을 하고 있었다. 총신도 흔들리지 않는 명사수였다. 노트북 액정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공유기도 뜻밖의 샤워를 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새로운 연못들이 생성되고 있었으며 다음 타깃인 공기청정기가 공포에 떨던 참이었다.


“딸내미!”

“으하하하~”


딸내미는 웃으며 도망쳤다. 미끄러운 바닥을 잘도 피해 다녔다.


“지연아, 이러면 노트북 고장 나. 그럼 뽀로로 못 볼 수도 있단 말이야.”

“내가 고치면 되지.”

“너는 못 고쳐.”

“그럼 아빠가 고치면 되지~”


기가 막혔다.


“아버지도 못 고쳐, 이건.”

“그래? 괜찮아. 엄마 핸드폰에 뽀로로 나와.”


혈압이 10%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비글 파워 Lv.2


“지연아, 아버지 이제부터 저녁 만들 거니까 재미있게 놀고 있어~ 같이 못 놀 수도 있어.”

“응.”


대답은 시원했다. 나는 얼른 요리에 착수했다. 요리라고 해봤자 미역국, 두부 부침, 계란말이가 전부였다. 요섹남 따위 관심 없는 나는 내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요리만 잘하고픈 흔남이었다. 그래도 그것도 요리라고 제법 바빴다. 무엇보다 동시에 해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 딸내미는 요리의 난이도를 높이고 있었다.


“아빠, 이것 봐요.”

“응?”


돌아본 곳에는 지퍼백에 담겨 있던 안 해의 영양제와 유산균이 쏟아져 있었다.


“똥강아지야!”

“아냐, 공주님이지~ 캬캬캬~”


그렇게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빠.”

“왜?”

“그거 나도 하고 싶어요.”

“뭐? 이거? 그래 알았어.”


나는 양푼에 계란물을 풀고 있었다. 휘휘 젓는 걸 보니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나는 딸내미에게 숟가락을 건넸다.


“캬캬캬캬!”


딸내미는 숟가락을 청룡언월도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방에 계란물이 튀었다.


“지연아, 물 튀잖아. 살살 부탁해요.”

“알았어. 살~~~ 살~~~”


딸내미는 살살이라고 말하며 숟가락을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눈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똥강아지!”

“아니야, 공주님이야! 캬캬캬캬~”


그렇게 또 사라졌다.


#비글 파워 Lv.3


밥을 먹기 위해 식탁을 정리하러 갔다. 바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뒹굴고 뛰고 던지던 딸내미의 흔적이었다.


“바닥이 이게 뭡니까~ 이거 누가 이랬어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빨래 건조대를 발로 흔들던 딸내미가 말했다.


“엄마가~ 그랬지요~”

“뭐!”


딸내미는 조리원에 누워 있는 엄마 핑계를 댔다. 나는 웃겨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엄마는 병원에 있는데 이걸 어떻게 어지릅니까?”

“엄마는~ 할 수 있지요~ 토리랑~”

“너어~”


나는 웃으며 딸내미를 째려봤다. 그러자 딸내미도 웃으며 덧붙였다.


“엄마는 참, 장난꾸러기야.”


#비글 파워 Lv.10


우여곡절 끝에 요리가 완성되었다. 미역국은 나름 내가 자신 있는 종목이다. 내심 딸내미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지연아, 어때? 맛있지?”

“응, 맛있어요!”

“오~ 진짜?”

“네!”


기쁨에 찬 나는 위험한 질문을 덧붙였다.


“엄마 미역국보다 맛있지?”


미역을 오물거리던 딸내미는 시크하게 대답했다.


“엄마.”

“뭐? 엄마 미역국이 더 맛있다고?”

“응.”

“아냐, 솔직히 미역국은 아버지께 더 맛있잖아~”

“아냐~ 엄마 꺼~”


괜히 물었다. 나는 머쓱해졌다.


“지연아, 두부도 먹어 볼까?”

“싫어. 안 먹고 싶어요.”

“두부도 맛있어. 아버지가 케첩도 뿌렸잖아.”

“싫어~ 안 먹을래~”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결코 음식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시도를 거부하는 건 싫었다.


“지연아, 먹고 맛없으면 안 먹어도 되지. 하지만 뭐는 해야 하지?”

“한 번 먹는 거.”

“기억하고 있구나. 고맙다. 그럼 한 입만 먹어 볼까?”


나는 두부 부침을 작게 잘라 내밀었다. 딸내미는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물오물 두부 부침을 씹기 시작했다.


“어때? 먹을 만 하지?”

“응!”

“오~ 좋아, 하나 더 줄까?”

“아니, 한 입 먹었어.”


아놔…… 할 수 없이 두부 부침은 내 몫이 되었다. 딸내미도 뻘쭘했는지 갑자기 경쾌하게 말했다.


“아버지.”

“응?”

“나 미역 잘 먹지요?”


긴 미역을 젓가락으로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내가 풀이 죽어 보였을까? 자기가 내 음식을 잘 먹는다는 제스처였다.


“우와, 지연이 대단하다. 미역 정말 맛있게 먹네.”

“응, 미역 먹으면 몸속에서 크롱 병균한테 얍 얍 얍! 싸우지요?”


저건 미역이 피를 맑게 해 준다는 걸 내가 비유적으로 알려준 것이었다. 미역이 몸속에 들어가서 나쁜 병균과 싸운다는 뜻이다. 순간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래! 그걸 이용하자!’


나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연아, 그거 알아?”

“뭐?”

“이 두부는 미역보다 더 세다. 두부를 먹으면, 음…… 지연이 달리기 좋아하지?”

“응!”

“두부다 몸속에서 달리기를 엄청 빠르게 해 줘.”

“진짜? 우와~”


딸내미는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됐다!


“신기하지? 그럼 두부도 한 입 먹어볼까?”

“음……”


딸내미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아빠, 그럼 우리 힘을 합칠까?”

“응? 힘을 합치자고?”

“응~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 아빠가 두부를 먹어서 달리기 빨라져~ 나는 미역 먹고 크롱 병균이랑 싸울게.”


헉, 예상 밖이었다. 당황한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지연이가 두부 먹고 빨라져. 달리기 빨라져야지~”

“아냐, 나 더 안 빨라져도 돼. 일등이야.”


딸내미는 시크하게 말한 뒤 본인 밥그릇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세 돌이 안 된 딸내미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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