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8
"오늘 어린이집 방학이다!"
딸내미와 오롯이 하루를 보내는 첫날,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 어린이집 방학까지 하루 종일 붙어 있는다. 이것저것 더 하고픈 게 많았지만 기록적인 폭염 때문에 선택지는 줄어든 상태였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야 있나, 딸내미와 소소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계획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역할극을 하고 놀았다. 머리를 예쁘게 묶고 송도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딸내미와 꿈꾸던 데이트 장면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서관 데이트였다. 나는 혼자였던 시절 도서관 마니아였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게 아니다. 성적과 관련 없는 책들을 탐닉하고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낮잠을 잤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DVD로 영화를 보고 산책을 했다. 매점에서 먹는 간단한 점심은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수다를 떨고 컴퓨터로 글도 쓰는, 도서관은 나에게 놀이터였다. 부모가 아닌 ‘나’라는 사람만의 숨겨진 놀이터를 공유하고 싶었다. 시원한 에어컨까지 나오는 도서관은 딸내미에게도 놀이터였다. 한 참을 논 뒤 맛있는 밀탑 빙수를 함께 먹었다. 딸내미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내 품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빙수를 다 먹지 못한 걸 보니 어지간히 졸렸나 보다. 나는 폭 안긴 딸내미를 차에 태우고 포근한 마음으로 집을 향했다. 딸내미는 침대에서 계속 자고 나는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글대는 바깥 열기와 선선하고 조용한 실내가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풍경이었다. 행복했다.
“으앙!”
딸내미가 깼다. 나는 얼른 달려가 딸내미 옆에 누웠다.
“공주~ 잘 잤어?”
딸내미는 빙그레 웃으며 뒹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칭얼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
처음이었다. 나와 지내는 이 기간 동안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걱정했던 그 모습이었다.
‘그래, 일주일이나 됐으니 보고 싶기도 하겠지.’
나는 딸내미를 달래려 했다.
“지연아, 엄마랑 영상 통화해서 얼굴 보여달라고 할까?”
“으앙, 싫어~”
“왜?”
“내가 가고 싶어요!”
엄마를 보러 가고 싶다고 우는 딸내미를 보내 마음이 짠했다. 나는 여러 방법으로 딸내미를 달래 보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딸내미는 그저 싫다, 엄마가 보고 싶다, 울음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지연아, 혹시 뭘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까?”
“음… 하양.”
딸내미가 처음으로 대답 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얼른 몸을 다가갔다.
“하양? 무슨 하양?”
“하얀 아크림이요. 죠스.”
어제 나랑 함께 처음 먹어 본 하얀색 죠스바(오렌지맛)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신이 났다.
“그게 맛있었구나. 그럼 얼른 사 먹으러 갈까?”
“싫어.”
“지금 사러 가야 맛있는 하얀 죠스바 먹지. 누가 다 사가버릴지도 모르잖아.”
“싫어, 더워.”
기록적인 더위는 어린아이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특히 우리 딸처럼 열이 많은 아이는 더위가 쥐약이리라.
“음, 그럼 지연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볼게. 첫 번째, 차를 타고 에어컨을 튼 채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 두 번째, 유모차를 타고 간다. 세 번째, 아버지가 안고 간다. 지연이는 어떤 게 좋아?”
눈물이 고인 채로 고민하던 딸내미는 작게 대답했다.
“유모차.”
“그래, 가자. 얼른 가서 맛~ 있는 아이스크림 먹자! 그리고 우리 다이소 가서 쇼핑도 할까?”
“응.”
“좋아. 고고고~”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띄우며 딸내미를 유모차에 태웠다. 다시 마음이 바뀌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
유모차에서도 딸내미는 엄마를 찾으며 칭얼댔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다행히 딸내미는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그 후 조금 떨어진 다이소까지 쇼핑을 하러 갔다. 가면서 딸내미에게 물었다.
“지연아, 저녁 뭐 먹을까? 고기 먹을래?”
“싫어.”
“그럼 밥에 햄 구워줄까?”
“아니.”
“그럼 닭고기 먹을래?”
“응.”
오, 찾았다.
“닭고기 먹고 싶구나. 국물 닭고기 먹을래, 아니면 치킨 먹을래?”
“치킨.”
“좋아, 집에 가서 얼른 시켜 먹자!”
“싫어, 싫어.”
“그럼?”
“밖에서 먹고 가.”
“먹고 가자고?”
“응.”
집에서 먹는 게 여러모로 나았지만 딸내미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한 뒤 한 치킨집으로 유모차를 끌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딸내미는 이 가게가 아니라며 울기 시작했다. 다음 가게로 갔다. 딸내미는 여기도 싫다고 했다. 그렇게 동네에 있는 치킨집을 거의 다 돌았을 때는 아예 치킨이 싫다며 울었다.
“알았어, 그럼 집으로 가자.”
“싫어, 물 사줘, 물.”
“물? 그래.”
다시 방향을 돌려 마트를 향했다. 마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좋아하던 과자도, 요플레도 소용없었다. 물이랑 이것저것 담은 뒤 다시 집을 향했다. 물은 정작 마시지도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나도 탈진할 지경이었다. 아침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찜통 속을 한 시간 넘도록 헤맸으니 말이다.
‘혹시…?’
집에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딸내미 이마를 짚었다. 불덩이였다. 아까는 더워서 그런가 했는데 열이 분명했다.
‘그랬구나. 아파서 보챈 거였어.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미안했다. 안해와 떨어져 있는 특수 상황 때문에 나머지 가능성을 놓친 셈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도착한 뒤 열을 재니 39.4도였다. 얼른 몸을 씻기고 해열제를 먹였다. 딸내미의 칭얼댐은 절정에 달했다. 수건으로 몸을 닦기 시작했다. 딸내미는 좋아하는 에어컨 바람도 못 쐬고 누워서 끙끙댔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그렇게 밤을 새우다시피 몸을 닦고 열을 쟀다. 조금씩 졸아도 딸내미의 신음 소리에 눈이 떠졌다. 한 번 곯아떨어지면 못 일어나는 나인데…… 신기했다. 그동안 밤을 꼴딱 새우며 고생한 안해가 새삼스레 존경스러웠다.
부모란 그런 것 같다. 좋을 때, 행복할 때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아프고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순간에도 상황을 책임지는 건 부모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 아프면 아빠 100명도 소용없다. 엄마를 찾는다. 그렇게 엄마는 위대하다. 정말 아쉽고 조금은 속상하지만 아빠는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