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그렇게 아빠는 딸등신이 되어 간다.

20180801

by 도대영

둘째가 아들이다. 딸 -> 아들이라고 하니 다들 축하하고 부러워한다.


“이야, 좋겠다. 200점이네~”

“아빠는 아들도 하나 있어야지. 목욕탕도 같이 가고.”

“누나가 동생 엄청 잘 챙기겠네. 오빠는 동생이 생겨도 관심도 없는데. 좋겠다.”


사실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난다. 둘째가 커갈수록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이 쌓일 듯하다. 어쩔 때는 ‘이게 요즘 문제시되는 성역할을 고착시키는 부모들의 사고인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많은 어른들이 이야기한다는 건 그만큼 수 천 년의 세월에 거친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요즘 딸내미에 대해 확신이 드는 건 있다. 역시 딸에 대한 선입견(?)이 일면 타당성이 있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1


강의를 마치고 조리원에 들렸다 돌아왔다. 딸내미를 반갑게 만났다.


“지연아,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응!”

“밥도 맛있게 먹었어?”

“응, 맛있게 먹었어~”

“잘했다.”


여기까지가 사실 아들인 내가 하던 대화였다. 하지만 딸내미는 이어진다.


“아빠, 밥 먹었어?”

“아버지? 아니, 아직 못 먹었어.”


조리원에서 안해와 먹고 왔지만 괜히 못 먹었다고 해봤다. 그러자 딸내미가 말했다.


“배고프겠다. 내가 까까 줄까?”

“아냐, 괜찮아. 아버지 배 안 고파.”

“그래도 먹어야지~”


#2


샤워를 했다. 딸내미에게 혹시나 급한 일이 있을까 봐 문은 열어뒀다. 머리를 감으면서도 눈은 문쪽을 수시로 살핀다. 얼핏 딸내미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연신 뭐라고 조잘조잘 말하는데 사실 물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는다. 표정으로 봐서 급한 볼일은 아닌 것 같아 대강 대응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문 앞에 장난감들이 잔뜩 놓여 있다.


“우와, 지연아, 이게 다 뭐야?”

“응, 밥 먹어야지.”

“우와~ 아버지 먹으라고?”

“응, 내가 다 만든 거야~”

“이건 뭔데?”

“이건 피자고, 이건~”


신나게 설명을 이어 간다. 내가 배고플까 봐 나름 밥상을 차려 준 것이다.


#3


딸내미랑 누워서 꽁냥꽁냥 놀았다. 간지럼 놀이도 하고 발을 벽에 올리고 털기 놀이도 한다. 그러다 딸내미가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아버지, 이거 뭐야?”

“이거? 아, 아버지 이마에 뭐가 났어.”

“뭔데?”

“음, 글쎄? 여드름인가?”


그러자 심각한 얼굴로 다시 묻는다.


“아파? 아야 해?”

“응, 조금 아파.”

“내가 밴드 붙여줄게.”


그러더니 제일 아끼는 키티 밴드를 가져왔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껍질을 떼고 내 이마에 붙여준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붙인다.


“이제 괜찮아. 아야 하지 마~”


#4


장모님께서 맛있는 고기를 주셨다. 딸내미는 엄청 맛있게 냠냠 먹었다. 장인어른이 옆에서 장난을 치셨다.


“지연아, 할아버지 고기 하나 먹어도 돼?”

“안 돼.”


딸내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장인어른이 고기를 가져가려는 시늉을 하자 양손으로 그릇을 둘러싸며 철벽 방어를 했다.


“알았어, 지연이 많이 먹어.”

“응.”


딸내미는 다시 오물오물 고기를 먹었다. 그러다 문득 말했다.


“아빠는?”


반대편에 앉아 있던 나는 대답했다.


“응? 아버지 여기 있지.”

“아빠는 고기 없어?”

“응, 할머니가 지연이 먹으라고 지연이만 맛있게 주신 거야.”


그러자 포크로 고기를 한 점 콱 찍어서 나에게 건넨다.


“세상에, 또 지 애비라고 챙기는 것 보소.”


장모님이 귀여우셨는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일부러 크게 말했다.


“우와, 우리 딸이 아버지 하나 주는 거야? 고마워~”


그리고 포크로 받으려고 했다. 그러자 딸내미가 말했다.


“아냐 아냐, 흘려. 접시 줘.”


순간 동생을 챙기는 누나 같았다.


#5


차로 이동 중이다. 나는 열심히 운전하고 딸내미는 뭐가 신나는지 노래를 흥얼거린다.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딸내미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

“응? 왜?”

“아버지!”

“왜에~”

“아버지!!!!!!”

“왜 불러요, 똥강아지야~”


그러자 딸내미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멜로디까지 넣어서 말이다.


“왜 부르긴~ 좋아하니까 부르지~”


#6


잠자기 전에는 책을 읽는 시간이다. 딸내미는 오늘도 산더미 같은 책을 들고 잠자리로 왔다. 책이 많아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어주는 건 나에게 큰 즐거움이다.


“지연아, 눈이 나빠질 수 있으니까 우리 앉아서 읽자.”

“싫어.”

“누워서 읽으면 눈이 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자 딸내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못 앉아.”


순간 빵 터졌다. 다리가 아파서 앉지를 못한다니. 방금 나랑 뛰어다녔던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못 앉겠어?”

“응……”

“그럼 누워서 읽어야겠네?”

“응…….”

“어쩔 수 없지 뭐, 알았어~”


그러자 바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딸내미가 말한다.


“우리 뭐부터 읽을까?”


#7


책을 다 읽고 불을 끈다. 그리고 딸내미에게 뽀뽀하며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내미, 잘 자~ 사랑해~”


그럼 딸내미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노래한다.


“나는~ 엄마랑~ 토리가~ 더 좋은데요~”

“뭐?! 네 이놈~”

“아빠는 안 좋은데요~”

“똥강아지!”


나는 웃으며 딸내미 배에 푸르르르 공격을 한다. 딸내미는 캬캬 거리며 저 편으로 굴러간다.


“딸내미, 아버지 몸만 좀 씻고 올게. 아버지 어디서 씻는지 알지? 문 열어 두니까 무슨 일 있으면 아버지 불러.”

“응.”


평소에는 딸내미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씻는다.(나는 안해처럼 딸내미 옆에 누웠다가 혼자 일어나는 재주가 없다;;;;;;) 하지만 오늘따라 딸내미가 일찍 졸리대서 같이 책을 읽고 누웠더니 몸이 끈적끈적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샤워를 하러 향했다. 먼저 양치질을 시작한다. 그때 멀리서 딸내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왜 그래!”


나는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번개 같이 달려갔다. 딸내미는 누워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몽글몽글한 눈망울이 조금 젖어 있다.


“딸내미, 무슨 일이야?”

“아빠…….”

“자려는데 옆에 아버지가 없어서 무서웠어?”

“응.”


나는 입에 문 칫솔을 내려놓고 누웠다. 치약을 뱉지도 않은 채.


“알았어, 아버지가 지연이 잘 때까지 옆에 있을게. 놀랐겠네. 미안해~”


그러자 딸내미가 내 옆으로 굴러오더니 팔 한쪽과 다리 한쪽을 나에게 턱~ 얹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빠, 좋아.”


세상 가장 달콤한 말이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딸내미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지연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렇게 부녀는 잠자리에 들었다. 누우면 못 일어나는 나는 결국 허연 치약을 입에 묻힌 채 잠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치약 맛이었으니.


성별에 따라 성격을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딸내미는 애교와 욕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사내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모습, 가까운 사람을 챙기려는 게 분명히 있다. 옛 어른들은 딸들은 잔정이 많고 아들들은 듬직한 맛이 있다고 하셨다. 그건 아직 100%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많이 키워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아마 나는 평생 우리 딸의 애교와 잔정에 당하고 살 것 같다는 것이다. 이미 자발적 갑을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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