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4
오늘도 더웠다. 아침부터 거실 에어컨을 틀었다. 지연이가 일어나기 전에 틀어서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창 밖은 새파란 하늘에 유독 낮고 하얀 구름들이 가득했다. 작열하는 태양과 매미 울음소리와 어울리는 풍경, 아다치의 만화 [H2]에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그런 풍광을 마주한 채 나는 생각에 빠졌다.
무척 바쁜 날이다. 안해가 조리원에서 나오기 전날, 거기다 제자들과 만나는 스케줄도 있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딸내미와는 하루 종일 함께 해야 한다. 장모님이나 처제에게 잠깐 부탁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동선과 방법, 난관 등을 계산하며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많은 할 일 중 가장 난감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전거'.
꽤나 오래전에 딸내미가 자전거를 하나 주워서 타고 왔다. 딱 봐도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걸 타고 온 것이었다. 뽀로로가 달려 있는 낡은 자전거를 보며 나는 웃었고 안해는 기겁했다. 그 뒤 갖은 방법으로 딸내미를 꾀어도 딸내미는 자전거를 버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새 자전거를 사주기로 했다. 그때는 킥보드도 능숙하게 타기 전이라 자전거는 먼 미래의 계산이었는데 앞당기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자전거를 사줄 수는 없었다. 그때 안해는 동생이 오면서 상실감을 느낄 수 있으니 동생을 반가운 존재로 만드는 장치 중 하나로 자전거를 활용하자고 했다. 동생이 집에 오면서 누나를 위해 자전거를 선물로 사 온다는 시나리오였다. 나는 안해의 비상함에 감탄하며 동의했다. 밑밥 깔기는 몇 달 전부터 진행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자전거 = 동생이 집에 올 때 들고 오는 선물'로 공식화되었다. 취향까지 파악한 후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구입을 했다. 일단 박스 채로 차에 싣고 다녔다.
“아빠, 저거 뭐야?”
“뭐?”
“저거, 뒤에~ 박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 저거? 저건 아버지가 공부할 때 쓰는 탁자라는 거야.”
“탁자?”
“응, 언니 오빠들이 공부하면서 뭘 만들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는 판이지.”
“그래?”
선의의 거짓말까지 하며 싣고 다닌 지 2주가 넘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날! 시나리오의 완성을 위해 오늘 조립을 해야 한다. 조립은 자전거 가게에 부탁할 예정이다. 문제는 딸내미가 오늘 내내 붙어 있을 예정이라는 것! 깊은 고민을 하다 결론을 내렸다.
‘딸내미가 낮잠을 자면 시도해보자.’
사실 요즘 딸내미는 낮잠을 건너뛰기도 한다. 대신 그때는 조금 이른 시간에 잠이 든다. 자전거 가게에 끝나는 시각은 밤 9시, 시간을 다투는 작전이 될 듯하다. 한 참 고민을 할 때 딸내미가 일어났고 아침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나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심때 제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지연아, 이제 집에 가서 한 숨 잘까?”
“싫어.”
“그럼 뭐하고 싶어?”
“원투 빵!”
오늘도 체육관 타령이었다.
“지연아, 원투 빵이 그렇게 재미있어?”
“응, 원투 빵!”
“알았어, 가자.”
나는 체념한 채 차를 몰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핸드랩과 트렁크가 있어 든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잘대던 뒷좌석이 잠잠해졌다.
‘설마?’
나는 거울로 뒤를 보았다. 딸내미는 고개를 80도 정도로 젖힌 채 자고 있었다.
‘오, 지금이다!’
차를 집 근처 자전거 가게로 몰기 시작했다. 딸내미가 깨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했다. 갓길에 주차한 뒤 자전거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께 급박한 상황을 설명드리며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사장님께선 직접 나와서 박스를 가져가셨다. 조립에는 약 2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나는 행여나 딸내미가 깰까 봐 에어컨을 높이고 음악 소리를 줄였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자 차 문은 완전히 닫았다. 가끔 밖에서 큰 소음이 들리면 흠칫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우리 딸내미는 이 정도에 흔들리는 얄팍한 잠을 자지 않아.’
시간은 무척 더디게 갔다. 일요일 낮은 무료했다. 하지만 차 안은 긴박했다. 그때였다.
“나도!”
깜짝 놀랐다. 아직 자전거를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큰일이었다. 비밀유지가 핵심인 이 미션을 실패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거울을 보았다. 딸내미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꺾어 보이지 않았다.
“아크림!”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딸내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잠꼬대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계를 보았다. 20분이 훨씬 넘어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수석 창 너머의 자전거 가게를 살폈다. 그때였다. 사장님께서 핑크로 가득한 자전거 한 대를 손수 들고 오셨다. 나는 얼른, 하지만 은밀히 내려 트렁크 문을 열었다.
“저번에 말씀하신 보조 좌석 다느라 조금 늦었네요. 여기 있습니다.”
“우와, 고맙습니다. 번거로우셨을 텐데 진짜 고맙습니다.”
“뭘요, 재미있게 타세요.”
사장님의 인자한 미소를 뒤로한 채 출발을 했다. 괜히 든든했다. 좋아할 딸내미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느새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원래의 작전은 자전거를 지연이가 없는 사이 계단 난간에 묶어두고 퇴원 날 풀어서 가져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전을 그대로 수행하기에는 자전거가 예상보다 너무 무거웠다. 지연이가 잠든 상황에서 지연이를 안으려면 자전거는 한 손으로 들거나 컨트롤해야 했다. 그리고 혹시나 그 사이 지연이가 깨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나는 고민을 거듭한 뒤 과감하게 작전을 바꾸었다. 트렁크에 실려 있던 돗자리를 꺼냈다. 그리고 자전거에 덮었다. 지연이 자리에서, 혹은 차 밖에서 봤을 때 노출된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일명 돗자리 위장막이었다. 위장막의 은폐 상태를 체크한 뒤 지연이를 안고 내렸다. 다행히 작업 도중에 지연이는 깨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만 들키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미션 임파서블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