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 부녀는 용감했다.

20180805

by 도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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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에서 나왔다.

하루 종일 난리 부르스였다.

초짜 엄마, 아빠는 마음만 앞섰고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래서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다들 웃으며 이야기했구나.

문득 부모님께 문자를 날리고 싶었다. 아내의 부모님은 하루 종일

같이 애써주셨으니 감사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뭐하시나 싶기도

했다. 아내가 평소에도 연락을 잘하고 오늘도 연락하고자

했는데 우리 코가 석자였으니 ㅎ

오마니의 답장이 왔다.

'빨리 적응해야 할 텐데... 니가 애기 때 벽지 보고 울던 생각이 나네. 왕할머니 방 벽지 보고 밤새 울어서 결국 집에 왔던 적이 있었지.'

그냥 잠시 코 끝이 찡했다. 내가 이러니 이제야 지쳐 잠깐 잠든 와이프는

오죽 힘들고 서러울까. 행복해야겠다. 잘하고.

역시 부모가 애를 키우지만 애도 부모를 키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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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딸내미가 조리원에서 나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내가 쓴 글이다. 나는 일상적인 걸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이론과 조리원에서의 경험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던 딸내미의 보챔, 이리저리 동동거리고 바쁘기만 할 뿐 해결은 못하던 초짜 부모. 그날은 참으로 길고도 길었다. 지쳐서 잠든 안해와 그걸 보며 속상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오늘은 달랐다. 그때의 초짜 부모는 어느덧 부모 4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가물가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이 기억했다. 그렇게 아프게 넣었으니 몸속 어디선가 봉인되어 있었나 보다. 나는 안해가 돌아오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직감하고 있었고 그걸 했다.(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돌아온 안해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우리 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딸내미가 있었다. 딸내미는 동생을 보자마자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 어제 나랑 정성스럽게 준비한 카드와 선물을 건넸다. 그리고 동생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동생의 표정, 반응 하나하나를 살폈고 미소를 머금은 채 엔도르핀을 만들어냈다. 둘, 아니 넷이라서 3년 전보다 훨씬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무언가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튼튼한 지반 위에 주춧돌을 놓는 느낌이랄까? 정말 ‘가족'이라는 그림이 완성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힘들었다. 딸내미는 동생을 무척 사랑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딸내미와 혹시 모를 충돌까지 동시에 커버해야 했다. 안해는 못 본 동안 부쩍 커버린 딸내미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새로운 일들이 더해져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예상은 항상 현실보다 차갑다. 그래서 걱정과 고민을 만든다. 하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따뜻함이 더 컸다. 딸내미도 편안하게 잠들었고, 규원이도 새 집에서 곤히 잠들었다. 안해도 비교적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한 방에 누운 셋을 보니 괜히 코 끝이 찡하고 뭉클했다.


앞으로가 더 힘들 것이다. 안다. 그래도 좋다. 해보고 하는 후회는 경험이지만 안 하고 하는 후회는 실패라고 했다. 나는 경험이 더 좋다. 그리고 내 곁에는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이 순간 가장 고마운 건 우리 딸내미다. 물론 안해가 가장 사랑스럽고 고맙지만 이 순간만큼은 딸내미에게 1순위를 주고 싶다. 정말 15일 동안 나 이상으로 노력하고 지낸 딸내미, 잘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속으로는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을지 알기 때문에 안쓰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지금 다시 만났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갈까 한다.


부녀는 용감했다. 아니, 앞으로도 용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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