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친척은 가족이다.

20180803

by 도대영

“아빠, 우리 뭐 보러 가요?”

“응, 피노키오 보러 가는 거야.”

“피. 노. 키. 오?”

“맞아, 피노키오.”

“와, 재미있겠다!”


딸내미 생애 첫 아동극 관람을 하기로 했다. 처제와 안해가 동시에 찾은 어린이 공연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하고 러닝 타임도 짧았다. 안해는 혹시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감기라도 옮을까 봐 걱정했지만 내가 철저히 관리하겠노라고 했다. 처제와 조카를 태우고 스퀘어원으로 향했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


시작을 알리는 멘트에 딸내미는 홀린 듯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극장 안은 또래의 아이들과 부모들로 가득했다. 문득 웬만한 대학로 연극보다 수익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은 피노키오 원작의 포맷을 차용한 마술쇼에 가까웠다. 딸내미와 조카는 배우들의 연기에 넋을 잃고 봤다가 맛있는 간식도 먹었다가 뒹굴기도 했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역시 그 정도였다. 그래도 딸내미가 일관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배우들이 관객에게 말을 건넬 때였다. 진지하게 대답하고 목이 터져라 피노키오를 부르기도 했다. 순수한 모습이 참 귀여웠다. 나는 몸에 밴 습관대로 조명부터 대도구까지 무대를 살피고 배우들의 새김질과 대사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딸내미는 그저 그 순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진짜 관객의 모습이리라.


“지연아, 피노키오 재미있었어요?”

“네!”

“앞으로 모르는 아저씨가 따라가자고 하면 갈 거예요?”

“아니오. 가면 안 돼요!”

“그럼요?”

“응~ 호루라기를 휙! 불어야 해요.”


연신 경찰인 이모부에게서 받은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다람쥐처럼 부푼 볼이 귀여웠다.


그 후에는 처가댁으로 이동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제나 지연이 최고의 친구다. 사촌 동생과 함께 옥상에서 물을 받고 개인 워터 파크를 개장했다. 연신 물을 뿌려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최고의 물놀이를 즐겼다. 그리고 사촌 동생과 계속 놀았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같이 뛰고 구르고 장난쳤다.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사촌 동생인데 둘 끼리는 나름 진지한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다. 그렇게 한 참을 놀다 갑자기 딸내미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으앙! 아빠!”

“응, 딸내미 이리 와~”


딸내미가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는데 사촌 동생이 누나와 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밥을 먹이는 받침을 만지자 지연이가 ‘안 돼. 이거 동생 줘야 해.’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섭섭했는지 사촌 동생이 지연이 왕관을 벗기고 머리를 한 대 쿵 때린 것이다. 딸내미는 순간 서러워져서 나에게 울면서 안겼다.


“지연아, 도헌이가 누나랑 놀고 싶은데 안 놀아줘서 섭섭했나 봐.”

“아가 밥 줘야 해. 으앙~”


우는 딸내미를 달랬다. 그리고 얼마 뒤,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이 웃으며 뛰어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다툼은 잠깐이었다. 어른들의 다툼도 이렇게 단순하면 좋으련만. 둘은 장모님이 해주신 맛있는 닭고기와 죽까지 다 먹고 처갓집을 떠났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가족의 범위가 줄어드는 것을 넘어 가족의 해체라는 말까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 TV에서 보던 대가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3대가 같이 살고, 이모나 삼촌이 같이 있는 모습은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양육의 모습도 달라졌다.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핵가족화와 양육 과정에서 제한된 상호작용 경험이 아이의 인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할머니, 삼촌, 형제와 지내며 익혀야 하는 사회 정서적 기술을 못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지연이에게 좋은 이모와 사촌 동생, 외조부모가 가까이 있다는 건 큰 복이다. 특히 또래의 사촌 동생은 지연이에게 많은 역할 공부를 시켜주는 존재이다. 살갑게 지내다가 다투기도 한다. 그 모든 게 사회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외동이었던 나도 사촌 동생과 친남매처럼 자랐다. 그래서 흔히 이야기하는 외동의 안 좋은 면이 적지 않나 생각한다.(이렇게 쓰면 안해는 또 엄청 비웃겠지만) 부모보다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모, 외조부모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지연이가 마음을 기대고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이 아이의 인생에서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굳이 회복탄력성에 나오는 카우아이섬 연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 규원이가 태어났고, 처제네도 또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 그럼 모두 넷. 넷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은 둘일 때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폭발적이고 혼란스러운, 한 마디로 난장판이겠지. 그래도 괜찮다. 그 속에서 딸내미는 더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고 본인의 것을 만들어 갈 테니 말이다.

이전 12화Day #12 동생 이름은 누나가 지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