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5
“그게 뭐야?”
집에 도착한 나는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 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안해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응? 이거? 펜치.”
“펜치? 펜치는 왜? 어디서 가져왔어?”
“학교에서. 주무관님께 빌려 왔지.”
“뭐하게?”
나는 거실 화장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숙원사업 해결하려고.”
그리고 화장실 변기를 마주했다.
딸내미가 커가면서 스스로 하는 것들이 같이 늘고 있다. 일상의 루틴 중에 용변을 보는 것도 큰 과업 중 하나다. 지금 딸내미는 이동식 아동용 변기에 일을 보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도 어린이용 변기를 사용하고 있고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야심 차게 겸용 변기 뚜껑을 구입했더랬다. 그러나 이내 난관에 부딪혔다. 기존의 변기 뚜껑을 빼기 위해 고정 볼트와 너트를 돌리는데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마 그 사이에 녹이나 진득진득한 이물질이 낀 것 같았다.
“안 돼? 그렇게 하는 것 맞아?”
“맞아. 내가 몇 번이나 갈아봤는데. 이게 빡빡해서 안 돌아가네.”
그렇게 변기 뚜껑은 방치되고 있었다. 고민하다 펜치를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펜치가 없었다.(공구 가방도 없는 집이다;;;) 그러다 보니 차일피일 미룬 게 몇 달이 다 되어 갔다. 사실 급하게 준비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다른 바쁜 것들 때문에 이내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화장실을 갈 때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학교에서 펜치를 빌려 온 것이었다.
펜치로 너트를 있는 힘 껏 돌렸다. 처음에는 빡빡하던 너트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볼트를 분리했다. 예상대로 홈에는 진득진득한 이물질이 끼어 있었다. 그리고 겸용 변기 뚜껑을 달았다.
“짜잔~”
“우와, 지연이가 진짜 좋아하겠다.”
귀여운 핑크 변기가 생겼다. 변기 뚜껑을 하나만 들면 유아용, 두 개를 들면 성인용이 되었다. 딸내미의 반응이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딸내미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다.
“우와~! 핑크 변기다!”
“지연이 쉬야할 때 쓰라고 아버지가 달아 주신 거야.”
“고마워요!”
별 거 아닌 변기 뚜껑 하나에 기분이 좋아졌다. 딸내미는 잠시 뒤 처음으로 변기를 사용해봤다.
“아빠! 이것 봐요!”
딸내미가 부르는 소리에 달려갔다. 딸내미는 발판을 딛고 스스로 올라가 변기에 앉아 있었다. 기쁨과 자신만만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흡사 고지를 점령한 지휘관 같았다. 그 표정은 계속 이어졌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쉬야! 나 쉬야할래요!”
“그래, 아버지가 도와줄게.”
“아냐 아냐. 나 혼자 할 거예요! 아빠 거기 있어요!”
책을 읽다가도 뛰어간다.
“지연아, 어디 가?”
“쉬야할 거예요! 오지 마요!”
일을 마치고 나오는 딸내미의 얼굴은 뿌듯함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달아 줄걸……’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리고 또 한 걸음 스스로 달아나는 것 같아 코 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양치질을 마친 뒤였다. 평소 같았으면 잠자리도 뛰어갔을 딸내미가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시작했다.
“지연아, 뭐해?”
“응, 신발 정리하는 거야.”
딸내미는 욕실 슬리퍼를 문 앞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아빠 것도 여기 옆에 둬. 이렇게.”
“응? 알았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큰 발판을 낑낑대며 변기 앞에 놓았다.
“됐다. 가자.”
딸내미는 과업을 마쳤다는 듯 손을 털며 방으로 걸어갔다. 나는 화장실 불을 끄고 따라가려 했다.
“안돼!”
“응? 뭐가?”
딸내미의 고함 소리에 놀라 쳐다보았다.
“불 끄면 안 돼!”
“화장실 불 끄지 말라고? 왜?”
“나 자다가 쉬야 마려우면 와야 하는데 깜깜하면 안 되잖아!”
자다가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싶을 때 변기를 못 쓸까 봐 걱정이 된 것이었다. 슬리퍼를 정리하고 발판을 가지런히 놓은 이유도 그걸 위한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 알았어. 여기 불은 밤에 안 끌게.”
“응!”
딸내미는 리듬을 타며 방으로 걸어갔다. 그 걸음 하나하나에 행복이라는 발자국이 묻어났다.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