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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Nov 18. 2023

*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면 좋겠어요 *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면 좋겠어요 (2023.11.18.) *     


 -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면 좋겠어요….     


   나보다 1살 더 많은 A 선생님이 작년에 수능 감독을 하지 않았기에 나도 올해부터는 수능 감독을 쉬지 않을까 하며 다른 계획을 세워 놓았었다. 무려 1년 동안 이날의 ‘특혜’를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고대하고 있었는데, B 선생님에게 수능 감독을 가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몇 초 동안 내 눈을 의심했었다.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본 뒤, 정신을 차리고 B 선생님에게 되물었다.    

 

 - 선생님, 그럴 리가요???     


   A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선생님! 올해 감독을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가게 되었어요!     


   A 선생님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 이야기하지 마! 나도 올해 가게 되었으니까!

   사탕을 줬다가 뺏긴 기분이야!     


   한해 쉬었다가 다시 가게 되었다는 A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이야!*^_^*….     


   수능 전날 처음 가본 C 학교의 교문 입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 흠…. 아침에 엄청 일찍 와야겠는데….     


   좁은 골목길인 교문 앞 도로를 보고 막히면 끝장일 것 같다는 생각에 수능 날 아침 오전 5시에 출발, 6시에 도착했다. 도장을 찍으려고 보니, 그 학교 선생님 딱 1명이 도장을 찍었고 그다음이 나였다. 얼마나 일찍 도착한 것인지….     


   매년 하는 수능 감독이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속 3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감독했다. 문과 여학생들이었는데 수학도 열심히 푸는 학생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 무슨 과를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수능 감독을 함께 온 D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했다. D가 말한다.     


  - 의사인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너희는 평균 이하의 사람들을 평균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하지만, 나는 평균의 사람들을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고요….

 - 멋진 말이네요!

 - 전에는 제 직업에 대해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이야기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하게 되네요.

 - 저는 사실 의사가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가치로나 교사가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의미 있는 귀한 일이에요!     


   의사의 소득이 일반 근로자의 7배가 넘는다는 기사를 보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 여러분이 하는 일을 돈과 결부시키지 말기를요. 

 - 돈을 벌기 위해서 의대에 간다는 말처럼 불쌍한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 여러분이 좋아서 1시간도 넘게 수업할 수는 있지만, 내가 하는 만큼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에게 수업하는 일이 즐겁지 않을 거예요….

 - 돈과 연결한다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어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직은 순수하다는 뜻일 듯하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 아마 여러분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에는 직업을 1개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요즘에도 직업을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 선생님만 하더라도, 주5일은 음악 선생님이지만, 토요일에는 글을 쓰고, 일요일에는 피아노 반주를 합니다. 

 - Major 전공을 하나 두고, 그 밖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해요.

 -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니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직업을 1개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저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 우리의 삶이 예측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예측할 수도 없고 그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데….     


   봄이 오면 그다음에는 여름이 온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데, 요즘에는 계절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 여어어어어름 – 겨어어어어어어어울~~~     


   2024 수능이 끝났다.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까지의 감독까지 긴 하루였지만, 그 하루 동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수험생들에 비할 바 아닌, 어찌 보면 아주 짧은 하루였다.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수능을 보았으니 모두 대학으로 직행하면 좋겠지만, 수시합격이 발표되는 요즘, 함께 공부하던 수험생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인생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잘 받아들여!’라며 쉽게 말할 수 없는, 당사자들에게는 무척 힘든, 피하고 싶기도 한 시기가 되었다.      


   수능 날 오전부터 퇴근할 때까지 라디오 방송에서 DJ들은 주로 이런 내용의 멘트를 했다.     


 - 수능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생은 길거든요. 수험생 여러분, 실망하지 마세요!     


   나 또한 이 말을 해 줄 수밖에 없다.     


 - 지금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이 허락될 거야~ 정말 수고했어~~~ 언젠가는 결국 빛나게 될 너의 삶을 믿음으로 예측해 보기를~~~     


***************     


*** 지난 2023년 5월 15일 스승의날, 학교에 찾아왔던, 26기 E의 패션.      


   1학년 때부터 우리 반의 1등이었던 E는 누구나 원하는 의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공대에 진학하고 싶어 했으며,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밑에는 고등학교 체육복 바지를, 위에는 S대 잠바를 입고 온 E를 보며 한참 웃었다.   

  

   S대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순진한 고등학생 모습이었던 E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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