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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Nov 26. 2023

* 내 자리는 추운데 (2023.11.25.토) *

내 자리는 추운데 (2023.11.25.) *     


 - 내 자리는 추운데….     


   생각해 보면, 내가 경험한 세상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곳’은 ‘학교’였다. 뭐라고 할까…. ‘학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차디찬 회색 콘크리트 건물과 회색 바닥이 떠올라서 몸이 움츠러든다. ‘3월’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따뜻해’보다는 ‘추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낯섦, 생소함, 익숙하지 않음과 어색함이라는 단어도 함께 연상된다.     


   잘 모르는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매년 3월의 두 번째 날은 아직 매서운 겨울 날씨였기에 온기가 없이 썰렁한 회색 교실을 들어가기가 그렇게도 싫었었다. 왜 3월 2일에 개학을 했었던 걸까…. 3월 2일은 왜 그렇게도 추웠을까….     


   평생 전학이나 결석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딱 네 군데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와 대학원…. 4개 학교에 다니면서 보건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것까지, 18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해보지 않은 것투성이라는 것도 신기하다. 그 거대한 건물들에 쪼그만 아이 혼자 들어가서 어떻게 지내고 견디며 학교생활을 했었을까….     


   초중고 담임선생님 열 두분과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과 대학교 때 지도교수님 두 분이 나의 학교생활에서 그나마 나에 대해 조금은 알고 계신 분들이겠다. 그분들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의 말씀을 빌려) 감히 추측해 보면, 의젓하고 환하고 똘망똘망한 눈을 지니고 조용하고 생각이 깊어 보이는 (성실한) 아이로 알고 계시지 않을까…. 크크….*^_^*….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A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면서 2학년이 되는 학급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 너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선생님밖에 없지만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너희의 2학년 담임선생님들께 너희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드려 놓을게.

 - 선생님이 자주 학교에 찾아올게.

 - 학교에 아는 선생님이 없다고 슬퍼하지 마.

 - 새로운 담임선생님도 곧 익숙하게 될 거야.     


   나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이 났었다. 인생에서 처음 들어오게 된 거대한 학교라는 곳에서 알고 있는 선생님이 딱 1명이었지만, 이제는 아는 선생님이 아무도 없게 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담임선생님의 저 애틋한 마음이라니….     


   학생의 관점에서,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아니 좀 더 나아가서 긍정적으로 지지까지 해주는 선생님이 계신다면 학교생활이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쁠까….     


   C 선생님의 출장으로 D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갔다가 앉아있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요??

 - 5년 뒤에 찾아와도 선생님들이 계셔서 좋은 것 같아요….

 - 5년 뒤에 찾아오면 계시지 않는 선생님이 있을 수 있어요….

 - 아, 진짜요??

 - 어느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것 같은지 말해 봐요….

 - E 선생님??

 - 아니요~~*^_^*….

 - F 선생님??

 - 맞아요! 또??     


   졸업한 뒤에 학교에 찾아와도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께서 여전히 학교에 계셔서 좋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졸업하고서도 학교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것과 찾아와서 만나고 싶은 선생님들이 있다는 마음이 얼마나 귀하던지!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얼굴만 아는 사람이 있어도 직장생활이 달라질 것이다. 하물며 나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해 주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랄 수는 없지만 행여 나를 (특별히)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도 메마른 사막 같은 직장에서의 하루하루가 따뜻한 봄기운을 품은 낙원과 같지 않을까!     


   하지만, 광야 같은 세상에서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군가의 특별한 도움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적당하지 않다. 인생은 결국 혼자 가는 길이며, 우리 모두다 그래 왔듯이 누군가의 (특별한) 도움 없이, 약간은 쓸쓸하고 고독하고 외롭지만, 그 모습을 꿋꿋이 견디고 때로는 즐기기도 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특별한 도움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건 불법이겠지….     


   교무실에 히터가 2개 있는데 선생님들과 떨어져서 배치된 내 자리에는 히터 바람이 잘 오지 않아서 춥게 느껴진다. 그런데 어떤 자리에는 히터 바람이 곧바로 들어가는지 히터를 끄시는 분들도 계신다. 내가 말했다.  

  

 - 내 자리는 추운데….     


   G 선생님이 말한다.     


 - 선생님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더 추운 것 아닐까요….

 -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학교에 아는 선생님이 없어도, 직장에 특별한 누군가가 없어도, 혼자 앉아있어서 조금 춥더라도, 우리 모두 다 각각의 형편에 맞게 건강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나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없을 때, 그 어떤 도움을 바라지 않을 때, 오롯이 내가 더 건강하게 성장하고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 나는, 알고 있으니까….     


 -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고 비틀거리고 넘어질 것 같더라도, 그냥 부족한 그 모습대로, 어설픈 그 모습대로,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말기!

 - 일어나기 싫으면 일어나지 말기!

 - 그 누군가의 도움을 찾으려고 하지 말기!

 - 찾았다고 생각한 그에게 쉽게 마음 주지 말기!

 - 다시 넘어지더라도 다른 사람 핑계 대지 않기!

 - 그러니, 조금 춥더라도 잘 견디는 연습하기!

 - 그러면, 그 추위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니!     


********************     


   ***29기를 위한 <할렐루야> 악보를 28기가 만들었듯이, 30기를 위한 <할렐루야> 악보를 29기가 만들도록 준비했다.     


  후배들을 위한 악보를 1개씩만 묶어도 되지 않을까 해서 360여 명 분량을 준비했건만, 월요일에 수업을 한 2개 학급에서 다 만들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수요일에 360명 분량을 다시 준비했는데, 또 수요일 2개 학급이 다 만들어 버렸다.     


   적어도 후배 1명 것은 챙겼으면 해서, 다시 목요일에 360명 분량을 준비해서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만들게 했고, 겨우 십여 장을 남겼다.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 아! 선배들이 이렇게 만들었군요!

  - 와! 씐난다!!!


   얼굴도 모르는 28기의 도움을 받았던 아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30기 후배들을 위해 선배의 흔적을 살짝 남겼다. 30기가 좋아했으면!     


   악보를 만들고 있는 여학생 학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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