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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Dec 03. 2023

*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2023.12.02.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2023.12.02.) *     


 - 이해가 안 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요즘에는 잘 쓰지 않지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라는 말을 사용했던 때가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화이트칼라’와 실외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블루칼라’…. 여기서 ‘칼라’는 ‘color’가 아니라, ‘collar’를 말한다. 즉,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입는 하얀색 와이셔츠의 ‘깃’과 노동자들의 푸른색 작업복의 ‘깃’을 나타내는 말이다.     


   교사는 아무래도 블루칼라보다는 화이트칼라 쪽에 들어가겠지만 정확하게 짚어본다면 온전히 화이트칼라, 즉, 정신적인 일만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육체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직종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서 서류 관련 일도 많이 하지만, 대부분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일’을 한다. 그것도 온전히 서서! ‘서서 일하는 직종’이니,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중간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업이 몰려있으면 하루에 4~5시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날은 하루 내내 서 있어서 다리와 허리가 아픈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다리와 허리가 아프면 앉아서라도 수업을 할 수 있지만, 목소리가 쉬거나 나오지 않는 경우는 아예 수업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마이크의 상태가 무척 중요하고, 마이크가 없으면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중요하니까. 이런 (연약한) 나와 달리, 마이크도 없이 생목소리로 하루에 서너 시간의 수업을 거뜬히 해내는 선생님들이 계시기도 한다. 대단하신 분들이다.  

   

   언제나 ‘말’을 해야 하는 직종이니 말을 잘하는 분들이 많다. 어쩌면 그렇게 말씀들을 잘하실까! 신기하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수업도 재미있게 잘하고 농담도 잘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도 잘하는 분들이 수두룩하다. 나는 언제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말을 많이 해서, 교무실에서는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잘하지 않으며 집에 가서는 더더욱 말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유명한 개그맨인 A가 이런 말을 했었다.     


 - 사람들 앞에서는 재미있고 말이 많은 사람이지만, 사실 저는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A의 말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재미있고 시끄러운 사람은 사실 외롭고 고독한 사람일 수 있고, 우리에게 덤덤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고 알짜배기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늘 확인한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재미있고 알짜배기인 사람 쪽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_^*….     


   말을 무기로 삼은 교사이기에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힘들게 하기도 한다. 조심스러운 학기 초가 아니라 모든 것이 익숙하게 된 지금, 이 시점에 더 많은 감정표현이 쏟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번 주 목요일 담임선생님들과의 경건회 시간에 내가 이렇게 기도했다.     


 - 말을 직업으로 삼은 저희가, 말해야 할 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이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하게 짚어주게 해주시고,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아이들로 지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는 함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좋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지 않도록 해주세요. 

 - 말해야 할 때와 함구해야 할 때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대부분은 이렇게 후회한다.   

  

 - 그때 그 말을 해야 했는데!

 -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중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후회가 없는 선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일 텐데, 그게 또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오래전 그때, 참지 못하고 무언가를 투덜거렸던 나에게 B가 며칠 뒤에 이렇게 말했다.     


 - 이해가 안 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는 그 말이 그렇게도 좋았었다.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왜 그렇게도 고마웠을까! ‘지금은 네가 이해되지 않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라는 말로 들렸으니까! 물론 B는 며칠 내내 힘들어했지만…. 

    

   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온갖 거친 감정을 거르지 않고 풀어내는 요즘,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을 ‘솔직함’과 ‘쿨함’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날카롭게 뱉어내는 지금 이 시대에 동시대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말해야 할 때와 함구해야 할 때를 잘 구분만 해도 될 텐데! 아니, 함구하기만 해도 후회가 적을 텐데!     


   이 자리를 빌려 B에게 말해 본다.     


 - B~~, 그때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 그런 의도로 했던 말은 전혀 전혀 아니었어….

 - 네가 힘들어해서 나도 힘들었지만, 여전히 네가 정말 좋았어….     


   내가 힘들게 했던 그 옛날의 B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많이 보고 싶은데….


**********************     


 - 어르신, 열심히 부르시네요~     


   두 살 어린 새로운 대원 D가 노래 부르는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다며 C가 어이없어했다.   

   

 - 나를 어르신이라고 하다니!     


   이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음악’이란 것을 인간이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 대신에 노래로 서로 대화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좋아하는 것도 노래로, 화가 나는 것도 노래로, 음악으로 표현하면, 상처나 오해가 좀 더 덜하지 않을까….  

   

 * (2023.12.02.토)에 S 교회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음악회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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