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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Nov 11. 2023

*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요 (2023.11.11.토)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요 (2023.11.11.) * 

    

  -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요….     


   대학 시절 현대음악의 대가인 A 교수님과의 에피소드. 선생님의 학교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생님께 말했다.     


 - 앗…. 선생님…. 클래식 음악이네요??

 - 평생 현대음악을 작곡해 왔는데, 지금은 그냥 클래식 음악이 편하고 좋으네….

 - 아…. 네…. 전자음악 듣고 계실 줄 알았어요….

 - 그렇게 안 되던데…??*^_^*….     


    보통 작곡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작곡과에 진학하지만, 정작 대학교에 와서는 클래식 음악보다 일명 전위음악(前衛音樂) 또는 현대음악으로 불리는 (진취적인) 음악을 작곡해야‘만’하는 작곡과의 흐름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화음감이 뚜렷하고 정형화되어있고 듣기 편해서 ‘옛날 음악’으로 치부되는 클래식 음악보다, 기계적인 소리, 전자음악, 컴퓨터 음악, 아름답지 않은 불협화음과 기존의 음악 형식 파괴를 지향하는 음악 세계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게 되는데, 잠시 그 문제를 떠나고자 입대하거나 휴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 이건, 내가 생각하는 음악이 아닌데…??

 - 앞으로 어떤 음악을 작곡해야 하지??     


   신기한 것은, 어색하고 낯설고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그 고민의 시기를 잘 넘어가면, 언젠가부터는 그런 식의 음악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쓰디써서 귀에서 밀쳐버리고 싶던 음악이, 달콤하고 매력적인 음악으로 확 당겨지는 때가 온다고나 할까…. 그리고 현대음악 작곡가로서의 마인드를 갖추게 된다.     


   누가 보아도 앞서 나가는 미래지향적 작곡가였던 A 교수님이 혼자 있을 때는 안정감을 주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큰 위로가 되었다. 전자음과 컴퓨터 음과 온갖 전위적인 것으로 음악을 만들기는 하여도, 정작 내가 (남몰래) 선호하는 음악은 예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거니까….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각 분야의 전문가가 나와서 자기 전공 분야를 강의하는 B 프로그램은 우리 가족이 환호하는 프로그램이다. 비록 가정예배 전까지의 짧은 시간만 볼 수 있지만, 화려한 강의 스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만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 강의는 말로 완성이 되어야 해.     


   한때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으로 프레지(Prezi)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파워포인트의 기능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현란한 기능에 혹하여서 열심히 연수도 받고 수업에 적용하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 본질을 위한 껍데기가 너무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실제로 프레지로 발표하는 강의를 듣다가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많다.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쇼를 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누구나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TV 화면에 강의 내용을 띄워놓고 수업하는 시대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C 선생님은 그걸 거부하는 선생님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수업은 오직 책과 말로 하는 것이야….     


   다른 학교를 방문하고 온 D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AI와 융합한 음악 수업을 하던데요….

 - 아…. 진짜요???     


    내 입에서는 저렇게 말이 나왔지만, 사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요….     


   S 커피숍 카드가 10장도 넘게 있지만 전혀 가고 싶지 않은 느낌 같다고나 할까…. 구석에 있는 빈티지 느낌의 커피점에서 오래도록 있고 싶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에 들었던 연수 제목은, ‘신기술 기반 미래교육 입문하기(AI, AR/VR, 메타버스 활용 교육활동 중심)’이다. ‘AI를 수업에 어떻게 활용할까’를 생각하며 연수를 들었지만, 마치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 그 사람이 사는 동네와 옷과 타는 차를 소개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작 내가 알고 싶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건 하나도 없는 느낌이다. 아니, 알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졌다. 어떻게 하지….


   요즘도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다.      


 - 그 옛날 모차르트와 베토벤 시대에는 머릿속에 가득했던 음악을 어떻게 손으로 직접 다 그렸을까….

 - 그 음악들을 어떻게 다 확인했을까….

 - 파트보는 어떻게 했을까….

 - 정말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     


   90세의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는 지금까지 책을 122권 저술했는데, 모두다 손 글씨로 작성한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컴맹입니다. 타이프는 잘 치지만 글은 내 손으로 써야 내 혼이 담길 것 같았어요. 글이란 나를 떠나 독자와 대화하는 것인데 혼이 발산되려면 내 손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내용이 말라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은 만년필로만 씁니다.     


   발전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서 미래지향적인 연수도 많이 들으러 다니고, 홈페이지와 카페도 만들고 아이패드의 다양한 앱을 이용하는 수업을 하는 등 많은 방법을 시도했었지만, 사실 지금은, A 교수님이나 이시형 박사와 비슷한 심정이다.     


 -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지금은 음악 자체만을 위한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싶어….     


   지금의 나에게는 피아노와 악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노래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 노래가, 그 음악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게 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을 까먹고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AI 융합 음악 수업을 하고서는 감동의 소감문을 쓰게 되는 때가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     


*** 이번 주에 음악 논술형 시험을 보았다.     


   크게 두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마지막 문제가 아이들의 창의성과 응용력을 보는 문제였다. 잘 작성하여서 만점을 받은 아이들도 있었고, 다 틀린 아이들도 많았다.     


   모르더라도 아무 음이라도 그려서 내야 한다고 했더니, 이렇게 작성한 녀석이 있었다.    

 

   나를 웃게 했던 E의 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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