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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상위 1% *

by clavecin

* 우린 상위 1% (2025.01.25.(토)) *


- 우린 상위 1%(프로)


태국에서 우리나라에 온 형제가 40억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일을 그만두고 태국으로 돌아가서 편하게 지내겠다고 하니, 부럽기도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이 좀 더 크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질 텐데 평온하게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황금 같은 설 연휴 3일이 일주일의 중간 지점에 있다 보니 정부에서 월요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주어서 최소 6일부터 최장 9일까지의 휴일이 생겼다. 방학 중인 나도 이렇게 좋은데, 일반 직장인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생겼다. 임시 공휴일인 월요일에 은행 업무를 보아야 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휴일이 되다 보니, 계약을 해지하고 연휴 전 금요일에 일을 처리해야 할지, 일주일을 기다려서 연휴 바로 다음 금요일에 일을 처리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고작 이틀 먼저 계약을 해지하는 것인데도 5만 원 이상 손해가 나는 것도 있었는데, 결국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가 연휴가 끝난 뒤 금요일에 은행에 다시 가기로 했다. 사실 또다시 발걸음하는 것이 귀찮아서 무척 아깝기는 하나 그냥 처리하려고 했지만, 번복한 이유는 내 일을 맡았던 은행원 A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강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 5만 원이나 차이가 나는데, 이걸 버리시게요??


돈을 버는 것도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어디서 땅을 판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열심히 일한다고 돈이 모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돈을 모으려면 많이 버는 것보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데, 숨 쉴 때마다 돈을 쓸 곳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아니, 쓸데없는 곳이 있던가?

서울의 133㎡(40평대) 면적의 B 아파트가 106억 원에 거래되었다면서 3.3㎡(한 평) 당 가격이 2억 원이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보통 국민평형이라고 불리는 30평대 아파트를 사려면 적어도 60억 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 강남 한복판의 이야기이다. 또 연봉 2억 원은 되어야 서울 강남에 집을 살 수 있다고 하니, 5만 원이 아까워서 일주일을 기다리는, 나를 포함한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이런 기사는 너무도 결이 다른 딴 나라 이야기여서 오히려 아무런 충격도, 놀람도 주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연봉 2억 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걸까??

연말의 음악 시간에는 오페라와 뮤지컬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거론하기 전에 유럽 지도를 펼쳐 놓고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내려고 한다. 자유롭게 여행 주제를 정한 뒤 최소 일주일부터 최장 한 달까지의 기간과 구체적인 일정을 계획하고 경비까지 정해 보라고 하는데 올해는 좀 특별한 것을 하나 더 주문했다. 즉 여행 경비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본인이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게 했는데, 아이들은 아직 돈의 규모를 잘 모른 듯이 백만 원부터 최대 2천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고, 준비 방법은 예전보다 좀 더 다양했다.


- 과외하려고요.

- 기념품을 팔면서 다니려고요.

- 주식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 배달을 해서 돈을 모으려고요.

-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될 것 같아요.


그중에 이런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 C와 D 녀석도 있었다.


- D 나라에서 잘생긴 남자 친구를 만나서 모델 일을 시켜서 돈을 벌게 하고 그 돈으로 같이 여행하다가 돌아오기 전 헤어지려고요.

-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서 당첨될 때까지 복권을 사려고요.


2025년 1월 현재 시급은 10,030원으로, 하루 8시간, 주 5일 48시간을 일한다고 했을 때, 주급은 총 481,440원, 한 달로 하면 주휴시간 등을 포함해서 209시간으로 총 2,096,270원을 월급으로 받을 수 있다. 연봉으로 한다면,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25,155,240원이 된다. 물론 시급으로 계산한 것이니, 정식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래도 대략 3~4천만 원 정도가 아닐까. 생각보다 많지 않고, 이 돈을 모아서 원하는 목돈으로 만들기는 더욱더 어렵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서 자유롭게 쓰는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성인이 된 이후 본인이 직접 돈을 벌어보고 (힘들게) 번 돈으로 생활을 해 본다면, 만 원짜리 한 장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질문을 해 본다. 도대체 연봉 2억 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돈은 어떻게 쓸 수 있는 걸까?? 어디에 쓰는 걸까?? 진짜 궁금하다. 하하.


1862년에 <레 미제라블>을 통해서 19세기의 프랑스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었던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는 1896년에 <웃는 남자>라는 소설을 통해서 신분 차별이 심했던 17세기의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빅토르 위고가 자기 작품 중 가장 걸작이라고 칭했다는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을 통해서도 나타났듯이 가난한 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귀족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2019년 초연되었던 뮤지컬 <웃는 남자>가 2025년 1월에 공연되고 있다. 영화도 아닌 뮤지컬임에도 마치 영화 속 CG를 보는 것 같은 놀라운 무대 배경과 세팅,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아름다운 음악까지 근래 본 작품 중 정말 최고였다.

귀족 집안의 상속자였지만, 어릴 때 납치되어 입이 찢긴 그윈플렌이 유랑극단에서 광대의 삶을 살다가 다시금 귀족의 신분을 찾게 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유랑극단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미 몇만 달러의 연금을 받는 귀족에게 3만 달러의 연금을 더 주자는 의견에 의원들이 동조하자 의원으로 참석한 그윈플렌이 격앙된 어조로 말한다.


- 경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 저 밑바닥에서 왔습니다.

- 누가 제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여러분들 같은 귀족들입니다.

- 하지만, 누가 절 구하고 살린 지 아십니까, 바로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윈플렌은 의원 가운을 벗어 던지며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인 <그 눈을 떠(Open Your Eyes)>라는 노래를 피를 토하듯이 노래한다.


- 경들, 부족함 없이 다 갖춘 분들. 경들, 나 여기 진실을 외칩니다.

- 간청드리고 연민에 호소하오. 늦기 전에 세상을 돌아봐.

- 그 눈을 떠, 지옥 같은 저 밑바닥 인생들. 그들이 견뎌야 할 또 치러야 할 잔혹한 대가.

- 그 눈을 떠, 맘을 열고 증오와 절망 속에 희망까지 죽어가. 눈을 떠봐.


중요한 것은 그윈플렌이 <그 눈을 떠> 노래를 하기 전, 의회에서 의원들이 부르는 노래인데 그 가사 내용이 놀라울 뿐이다. 제목은 <우린 상위 1%(Lords of the Land / We are the 1%))>! 대략 이런 내용이다.


- 전 세계 최고 귀족 선택받은 분, 우린 상위 1%

- 우리는 먹고 놀고 돈 쓰는 프로, 우린 상위 1%

- 이 몸은 1% 중 최상의 1%, 우리는 평생토록 영원한 1%

- 우린 상위 1%


내 귀에는 <그 눈을 떠> 노래보다 <우린 상위 1%> 노래가 더 윙윙거렸고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사가 지금 2025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프고 속상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마태복음 26:11)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마가복음 14:7)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요한복음 12:8)


시대가 바뀌어도 가난한 자들이나 상류층은 언제나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면, 우리는 어디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연봉 2억을 받아 강남에 아파트 장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을 고대하며 공부하면 될 것인가. 아마 연봉 2억도 상위 1%는 아닐 것이다. 아, 로또 40억은 어떤가. 아니, 그 이상을 바라보아야 할까. 시급으로 노동을 계산 받는 사람들은, 실패한 삶인가.

하루아침에 귀족 신분에서 고아로, 광대로, 다시 귀족으로, 결국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광대로 변모한 그윈플렌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돌고 돌아 귀족으로 종착하고자 할 터. 특히 요즘같이 ‘돈이 생명인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이 작품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윈플렌같이 초연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거의 불가능할 수 있고, 그윈플렌 같이 어떤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면 어떨까. 작고 나약하고 가난하고 불쌍하고 순수한 것에 대한 연민, 동정, 공감, 돕고 싶음, 마음의 떨림, 눈물, 긍휼함이 있는 사람이면 어떨까.

직접 살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으나, 연봉 2억 이상을 받고, 강남의 100억 이상 아파트에 사는 상위 1%의 삶이 생각보다 오래오래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문학작품 속의 허구 인물뿐만 아니라 실제 살고 있는 이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오래오래 행복한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질의 채움 그 이상을 바라는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분명 그 어딘가 비어있는 그 휑한 부분을 그 무언가로 채워야 할 텐데, 그 무언가가 무엇일까.

그걸 알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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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2.(수)) 뮤지컬 <웃는 남자>를 꿰뚫고 있는 빅토르 위고의 주제.


-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무척 씁쓸한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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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우린 상위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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