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끼리 싸울래? (2025.02.15.(토)) *
- 쳇! 뭐야! 너희끼리 싸울래?
1월 하순부터 겨울방학 내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2024년도에 썼던 글들을 모아놓고 맞춤법 검사를 하면서 글을 다듬는 것이다. 총 2권을 끝내야 하는데, 1월에 한 권을 끝냈고 지금 2월 말까지 한 권을 더 정리해서 보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A 프로그램으로 1차 수정을 하고, 좀 더 전문적인 B 프로그램으로 2차 수정을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린 경우는 문법에 맞게 수정하면 되기에 어렵지 않은데, 문장의 조사가 이상하니 고치라는 체크가 나오면 앞뒤 문장을 이리저리 수정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몇 번을 고쳐도 계속 고치라는 메시지가 나올 때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이 없는데 계속 이상하다는 메시지가 나오면, 잠깐 쉬면서 눈과 머리를 비워준 뒤, 다시 새롭게 고쳐서 간신히 허락받은 예(?)도 있다. 또 내가 보기에는 고치는 것보다 원래 것이 더 나아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 문장도 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기는 한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프로그램이 있었다.
- 아! Chat GPT에 물어보자!
Chat GPT에 물었다.
- 이러저러한 문장을 문법에 맞게 바꿔 주세요.
Chat GPT가 몇 개의 조사를 수정하여 만든 문장을 B 프로그램에 올리니 다시 수정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함정이다.
- 쳇! 뭐야! 너희끼리 싸울래??
종업식을 하루 앞둔 교무실,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Chat GPT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 Chat GPT 이용해 보셨어요??
- 네! / 아뇨, 아직.
- 무슨 무슨 단어를 포함해서 어떤 내용의 글을 몇 글자 이내로 작성해 달라고 하면 그대로 작성해 주거든요.
- 어떻게 하는 건가요??
- 제가 해 볼게요.
C가 Chat GPT를 열고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입력했다.
- 수학과 음악 분야를 융합하여 사실에 근거한 예시 문장을 100자 이내로 만들어 주세요.
Chat GPT는 이렇게 답했다.
- 수학과 음악은 리듬과 박자, 음계의 패턴에서 수학적 원리를 공유하며, 음악 이론에서 비율과 대칭을 통해 수학적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C가 다시 입력했다.
- 좀 더 사실적인 예시를 넣어주세요.
Chat GPT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음악의 음계는 수학적 비율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8:9, 2:3 등의 비율은 음의 간격을 정의하며, 피타고라스의 이론을 통해 음악의 화음과 조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 아이들도 리포트 쓸 때, Chat GPT를 이용하는 것 같아요.
- PPT도 만들어 준다고 하던데요.
- 와우! 걱정이네요!
- 모두 비슷한 내용의 리포트가 나오겠어요.
- 그러니, 이런저런 서술보다, 성적이 가장 믿을만하지 않을까 해요.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Chat GPT를 능숙하게 다루는 D가 말했다.
- Chat GPT가 만든 문장은 다 비슷하고 매끈해서 오히려 걸러내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쓴 투박한 글이 더 나은 것 같아요.
Chat GPT의 매끈한 문장보다 사람이 쓰는 투박한 글이 더 마음에 든다는 D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그래서 Chat GPT와 B 프로그램이 부딪칠 때,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두었다. 글을 읽으며 문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쩝.
1월 초 31기 신입생 연수 때 E 강사는 Chat GPT를 포함하여 앞으로 변하게 되는 교육환경에 대해 아주 긴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했다. E는 이렇게 말했다.
- Chat GPT에 OOOO 고등학교를 넣은 시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나왔어요.
- Chat GPT에서 나에 대해 설명하고 이미지로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나왔어요.
- 앞으로 학교의 교육환경은 많이 달라질 겁니다. 그러니 학습도 교육 방법도 달라져야겠죠.
몇 년 전부터 계속 들어오던 ‘Chat GPT’ 단어가 요즘만큼 자주 언급된 적도 없는 것 같다. 또 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나 학생이 실제로 사용하는 때도 부쩍 늘어났다. 다음 주에 있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Chat GPT 활용이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진짜 제대로 배워야 하나 보다. 어느 것이나 장단점이 있을 텐데 사실 걱정스러운 점이 더 많다. 기술이 발전될수록 편리함이라는 장점이 때로는 아주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맞춤법 검사를 하고 있던 금요일 오후 늦게 OO기 F에게서 연락이 왔다.
- 선생님~~ 저 교사 합격해서 발령받았습니다! 조만간 선생님 한번 뵈러 가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또렷하게 기억나는 F의 얼굴과 목소리와 그에 대한 모든 것들. 유난히 외향적인 아이들이 많아서 활발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학급 아이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고 성실한 태도로 학교생활을 했기에 더 눈에 띄었던 F였다. 일찍부터 교사의 꿈을 가지고 관련 동아리에서도 활동하였는데 특히 선생님들의 어린 시절 사진 전시회를 주최해서 나의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이게 했던 F였다. 재수도 하지 않고 곧바로 현역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단번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발령까지 받았나 보다. 내가 알고 있던 F의 고등학교 모습을 기억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성공담이었기에 내 일 같이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약속 시간을 주고받는 중에 받은 F의 글은 나를 잠깐 생각에 잠기게 했다.
- 임용고시 2차 준비할 때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었나 많이 생각해 보면서 준비해서 잘 된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말이람! 임용고시 2차에는 ‘수업 시연, 심층 면접’ 등이 들어갈 텐데, 갑자기 나는 왜? 아마도 F의 이 말은,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나를 생각하며 준비했다는, 어찌 보면 나로서는 해괴망측(?)한, 숨고 싶은, 낯 뜨거워지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뭘 잘못했나?
컴퓨터교육과로서 Chat GPT를 포함한 온갖 프로그램에 능숙한 전문가인 F의 머릿속에 내가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세련되지 않은, 거친, 다듬어지지 않고 투박한, 나의 어떤 모습이었을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이런 따뜻한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어떤 모습…. 다음 주에 F를 만나면 물어보아야겠다.
- F! 이게 무슨 말이야?? 수많은 선생님 중에 왜 나를 기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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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인공지능화(AI)될 때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아마도, 인공지능화되지 않은 것들이 아닐까.
G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며 크리스마스 전날 들고 온 과자와 편지.
유명 제과점에서 만든 과자도, 세련된 모습도 아니었지만, 직접 만들었기에 아직도 내 책상 위에 있는, 기억할 만한 과자.
그리고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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