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이 줄었어요 *

by clavecin

* 한 명이 줄었어요 (2025.08.16.(토)) *


- 한 명이 줄었어요.


지난 2월, 20여 년 동안 내 머리를 만져왔던 A 디자이너가 내 머리를 손질하며 말했다.


- 고기를 드셔야 해요.


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질문했다.


-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 머릿결이 윤기도 없고 많이 빠졌네요. 작년에 많이 힘드셨어요?

- 아, 네, 뭐.

- 뭐가 아주 힘들었나 봐요. 머리를 만져보니 알겠는데요. 머릿결이 좋아지려면 고기만 한 것이 없어요. 건강을 챙기셔야 해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말해 보세요.


A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는 A의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했더니, 모두 깜짝 놀란다.


- 미용실 디자이너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나요?


6개월 만에 다시 내 머리를 만지던 A가 또 말한다.


- 지난번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까칠하네요. 무슨 힘든 일 있어요? 예전과 머릿결이 아주 다른데.


개인적인 교류는 전혀 없는 A 디자이너와는 1년에 몇 번 만나는 사이이지만, 매번 나의 건강과 안부를 물어준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워낙 잘 먹는 고기를 더 챙겨 먹으려고 하고 있다. 그의 관심이 얼마나 고마운지.

30년이 넘는 운전 경력 역사상 가장 많은 비가 오던 목요일 아침 출근길. 쏟아지는 비로 인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자동으로 설정된 와이퍼는 거의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차들은 1km도 넘는 간격을 두고 천천히 운행하고 있었다. 도로에는 미끄러져서 반대 방향으로 차가 뒤집힌 차량도 있었다. 과연 학교까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정말 얼마나 걱정하며 운전했는지 모른다. 그런 중에 걸어서 출근하는 B가 생각나서 걱정되었다.


- 폭우 속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오고 있을까.


내가 도착하니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외친다.


- 오늘 출근길, 아주 힘들었죠??


그 와중에 B가 말한다.


- 선생님 생각이 나서 걱정 많이 했는데, 어떻게 왔어요??


나는 B에게 말했다.


- 나는 B가 생각나던데, 걸어오기 힘들지 않았어요??


어제는 반짝이는 햇살이었다가 오늘은 오해의 구름 덩어리였다가 또다시 빛을 내뿜는 햇볕이기를 반복하는 혼란스러운(?) 생활 속에서, 30여 년 동안 꿋꿋하게 언제나 변함없이 따뜻한 햇볕을 내리쬐어 주었던 C가 이제 곧 학교를 떠난다. 사람을 가려서 사귀고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나는 꽤 오랜 시간 C와 교류가 없었다. 특히 그의 교육관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초반에 대들기(?)도 했다고 한다. C의 말에 의하면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C! 아이들을 그렇게 부르면 어떻게 해요!

- C! 아이들을 그렇게 대하면 어떻게 해요!


언제부터 C를 신뢰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C는 학교 일이나 사람으로 힘들 때마다 내 투덜거림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아낌없이 조언해 주는 사람이었다. 몇 달 전에 바꾼 내 차도 C가 강력하게 추천해 준 것이었고 특히 작년에 나를 잘 보살펴(?)주던 C였다. 특히나 내가 C를 찾았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떨지 않고 말을 전하지 않는 우직함과 성실함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C는 아이들에게 나를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얼마 전 C와 함께했던 식사 자리에서 감정이 복받쳐서 울고 말았다.


- 말하는 사람이 몇 명 없는데, 또 한 명이 줄었어요. 이제 어떻게 하죠?


C는 이렇게 말했다.


- 이렇게 좋은 곳에서 D(나)와 자주 밥 먹어야 했는데…. 손잡고 같이 걷기도 해야 했는데…. 나 없으면 이제 누구랑 이야기해….


아이들과 상담하고 있다. 첫 번째 상담을 할 때는 호구조사, 두 번째 상담할 때는 성적과 친구, 지금 세 번째 상담하면서는 역시 성적과 진로, 그리고 선택과목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상담을 마친 다음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 자, 마지막으로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보세요.


대부분 아이는 없다고 하거나, 몇 마디를 짧게 하거나 한다. 그런데 며칠 전 E와 상담을 마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 선생님, 어느 분과 친하세요?


학생에게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라 당황해서 웃었다.


- 하하하! 그게 무슨 질문일까요??

- 저번에 두 번째 상담할 때, 누구랑 친하냐고 물어보셨잖아요. 선생님에게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느 분과 친하세요?

- 글쎄요. 일단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과 두루 친한데요. F 선생님은 내가 맨날 괴롭히는 사람이고, G 선생님은 내가 맨날 장난을 치는 사람이고, H는 어쩌고저쩌고….

- 진. 짜. 요??

- 하하하! 그럼요. 내가 누구랑 친한지 궁금했어요?

- 네!


물론, E에게 모든 것을 정직하게 말한 것은 아니다. 두루 친하지만, 그냥 친한 사람이 있고 조금 더 친한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고 나와 잘 맞는 스타일은 내가 뭐라고 해도(?) 별 반응 없이 잘 받아주는 사람들인 것 같다. 무엇보다 입이 무겁고 조용한 스타일인 경우가 많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나를 걱정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기에 더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안 되기에 더 소중하기도 하고.

내 머릿결을 보며 나의 생활을 걱정해 주던 A도, 폭우 속 내 출근길을 걱정해 주던 B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까 봐 나를 걱정해 주던 C도, 모두 내 인생의 시간 속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 곧 떠나는 C처럼, A와 B와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겠지.


- 말하는 사람이 몇 명 없는데, 또 한 명이 줄었어요. 이제 어떻게 하죠?


아직은 내 곁에 남아있는 I에게 물어본다.


- I!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너는 아직 내 옆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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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04.(월))에 전입생 J가 왔다. 한 학기 동안 함께 하던 K가 방학식을 하면서 우리 곁을 떠난 이후 새로운 친구가 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K가 떠난다는 것에 속상해하며 슬퍼하던 아이들이, 며칠 새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학생이 온다는 것에 들떠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월요일 아침에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모두 뽀송뽀송하게 화장하고 왔던 것. 눈썰미가 있는 나는 아침에 아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그야말로 깜. 짝. 놀랐다.


- 아이들 얼굴이 왜 이렇지??


전입생 J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나머지 29명이 한 명씩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했다.


- 나는 **번이고 이름은 ***야. ***을 좋아하고 어쩌고저쩌고.


J를 맞이하기 전, J를 위해 명렬표와 아침 출발(등교부)을 새로 만들고, J의 자리를 배정해서 자리표를 새로 만들었다. 며칠 전에는 K가 떠나서 명렬표와 아침 출발에서 이름을 지우고, K의 자리도 지웠었는데….

우리의 삶에서 내 곁을 떠나는 사람이 있듯이, 나의 삶에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일까…. 아이들에게 말해 본다.


- 우리의 삶에 들어온 J를 잘 챙겨주자! 한 명이 줄었었는데, 다시 한 명이 늘어났어!


* 새로 배정한 J의 자리표에 적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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