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 별거죠! (2025.10.25.(토)) *
- 인생이 별거죠!
1년에 들어야 하는 교사 연수가 많은데 그 학점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시간을 내어서 듣고 싶은 것들을 직접 가서 듣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듣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필수’라는 말로 ‘들어야만 하는’ 연수가 많기에, 추가로 ‘듣고 싶은 것’을 찾아서 연수받기까지는 대단한 힘이 필요하기에 매우 아쉽다. 연수가 끝나면 마지막에 테스트가 있는데 제대로 들었더라도 문제를 풀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대강 들었던 연수는 기억도 나지 않아서 여기저기 찾아보면서 문제를 풀게 된다.
그런데 요즘의 교사 연수 테스트에는 신기하게도 총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즉, 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3번까지 ‘재응시’가 가능하다. 100점을 맞아야 하는(?) 나로서는, 100점을 맞기까지 3회를 다 이용하는데, 풀었던 시험에서 정답과 오답을 확인해서 재응시를 한다. 정답은 그대로 쓰면 되지만, 오답인 경우는, 오답을 제외하고 다른 답 중에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데, 혹 그것을 또 잘못 고르면 2회의 시험에서도 틀린다. 3번이나 시험을 보았지만, 3번 모두 틀린 문제도 있었다. 얼마나 속상했던지!
지난 5월경에 우리 반에 들어와서 선배 이야기를 했던 A는 성적도 최상위이지만, 축구와 티볼스포츠클럽 대표 선수이기도 하고 춤도 열심히 추는 활동적인 학생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인 A가 3학년 몇 명과 함께 B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를 끝마치지 않고 즉, 3학년을 다니지 않고 ‘조기 수료’한 뒤 대학생이 된다는 말에 모두 놀랐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일 같이 기뻐했다. 조기 수료한 학생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할 뿐이다.
재수는 기본에 삼수와 사수, N수생이 널려 있는 요즘,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지 않고 대학생이 되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곧바로 대학생이 되는 A는 좋을까?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지 않게 되어서 좋을까? 나중에 아쉬워하지는 않을까? 고3만의 독특한 긴장과 문화가 있을 텐데 그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될까? 하지만 그토록 되고 싶었던 대학생이 되었으니, 그 힘든 시간을 건너뛴 것의 아쉬움이 대수일까 싶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퇴하는 경우가 많은데, 3년 동안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내신과 학교생활을 경험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따고 수능을 본 뒤, 곧바로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자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간혹 고등학교 1학년에 다시 입학하겠다며 자퇴하는 예도 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나오는 1학년 때의 성적을 새롭게 세팅하고 싶다는 것이다. 오래전 고등학교에 재입학하기 위해서 자퇴하겠다는 C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를 새로 사귀고 선생님을 익히고, 수행평가와 지필고사를 치렀던 이 생활을 다시 하겠다고? 이 생활을 다시 하고 싶어? 아, 그건 아닌 것 같아.
재입학해서 다시 한번 생활해 보면 한번 지내보았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C에게 이렇게 말했다.
- 설사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 생활하더라도 더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 교과서도 친구들도 다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는데 더 잘할 수 있을까?
‘이생망’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뜻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딱 한 번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전혀 적당하지 않은 단어다. 하지만, 가끔 이 단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 이번 생은 망했지만, 다음 생은 좀 더 낫지 않을까?
- 이번 생은 이렇지만, 다음 생에는 기회가 있을 수 있어.
- 다음 생이 있다면, 이번 생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 어쩌면, 이번 생이 아직 끝난 게 아닐 수도 있어. 좀 힘을 내 볼까.
이번에 주어진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앞으로 또 새로운 삶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각지도 않게 힘이 나기도 한다.
학급에서 하는 <아침의 선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매일 아침 일찍, 번호 순대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좋은 글, 그리고 음악을 선정해서 친구들에게 보내는 활동이다. 아이마다 각자의 특징을 잘 나타내면서 학급 친구들에게 전송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늘 흥미롭고 기대가 된다. 아이들이 선택한 성경 말씀, 좋은 글, 그리고 음악이 늘 새롭다. 그런데 가끔 자기 순서를 까먹어서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 점심의 선물로.
- 저녁의 선물!
그러면 아이들은, <아침의 선물> 대신 <점심의 선물> <저녁의 선물>로 보내거나, 어떤 녀석은 <자정의 선물>로 보내기도 한다. 시험 때나 아이들이 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내가 보내는데, 내가 자주 쓰는 멘트가 있다.
- 선물같이 주어진 좋은 아침입니다.
- 선물같이 주어진 귀한 하루입니다.
- 선물같이 주어진 멋진 하루!
- 매일 똑같은 날 같지만, 어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오늘입니다.
매일 똑같은 아침, 하루 같지만, 선물같이 주어진 좋은 날이니, 귀하고 소중하게 아끼면서 보내자는 뜻을 전하고 싶어서 쓰는 말이다.
- 인생이 뭐 별거 있어요. 다 그런 거죠.
이 말을 그렇게도 듣기 싫어했다. D가 이 말을 자주 했던 의도는 알고 있었다. ‘인생이 그렇게 무겁지 않으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가볍게 넘겨요.’라는 의미였는데, 나는 항상 이렇게 대꾸했다.
- 인생이 별거죠! 다 똑같지 않다고요! 누구의 삶도 가볍지 않다고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값진 거라고요!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고 있는 2025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어느새 10월의 마지막 주말인데 아쉬운 마음에 올해 초부터 다시 반복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지, 옛날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올해 부장을 했더라면 어떠했을지 등등…. 이렇게 답변해 볼까.
- 이 생활을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
- 아마 올해를 다시 살아간다고 해도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 시간이 빨리 흘러가서 겨울방학이 빨리 오면 좋겠다.
인생이 별거냐고 말했던 D에게 말해 본다.
- 인생이 별거죠. 한 번뿐인 인생이어서 신중하게 선택하고 걸어가야 하는데,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만남이 있기도 할 거예요. 1년을 뛰어넘어가는 A가 부럽기도 하고, 1년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C의 용기가 부럽기도 해요. ‘이생망’이라는 말이 가끔 떠오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삶을 꿈꿔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선물과 같이 주어진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내일 아침은 오늘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인생이 별거라고 생각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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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해서는 서울 시내에서 차로 이동하지 않는다. 주차장이 가장 큰 문제이고 무엇보다도 차가 너무 많이 막히기 때문에 보통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너무 복잡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데, 만약 한강을 넘어서 위쪽으로 가야 할 때에는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낮도 아닌 저녁 퇴근 시간에 한강을 넘어가는 것은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차에 있을 각오를 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다.
하물며 평일 저녁에 내가 있는 직장에서 서울을 관통해서 강북까지 차로 이동했던 때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그런데 몇 주 전 어느 평일 저녁에 2시간 30분이 넘게 운전해서 서울 강북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해서 하루 내내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아서 아마도 그날 나의 상태를 감지한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TV에서만 보던 퇴근길 정체를 몸소 경험하니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다. 직장에서 집까지 2시간 30분의 퇴근 시간이 걸린 적도 많이 있었지만, 거의 직선 도로이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퇴근길인데, 서울을 관통한 퇴근길은 신세계였다. 그날 내가 경험한 도로는, 우면산터널 – 양재 IC – 경부고속도로(상행) - 한남 IC – 올림픽대로 – 성수대교- 성수 IC – 왕십리로였다. 모든 도로와 다리에는 주차장처럼 차가 가득 차 있었고, 휘어져 돌아가는 IC 한가운데에 내 차가 서 있었다. 도로에 차가 가득한 상황을 처음 본 것이 아님에도, 그 수많은 차 중에 속해있는 나를 보면서 힐링이 되었다. 뭐랄까. 이런 느낌이었을까.
- 아, 저 조그만 곳(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이렇게 넓은 곳에 나오니까 뻥 뚫리는 것 같아.
도로 한가운데에서 그 수많은 차 속에 있어 보니, ‘내가 왜 그 작은 곳만 보았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큰 곳을 바라보아야 해’라는 생각이 마음이 무거웠던 나를 생각지도 않게 가뿐하게 만들었다. 평일 저녁, 성수대교 위를 꽉 채웠던 차 중에 내가 있었던 그 경험, 그 작은 곳에서의 오밀조밀함을 벗어버리고 좀 더 넓은 곳을 대범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 깨달음, 그 시원함을 잊지 못한다.
그때 내가 우리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까. 아마도 매일 이 수많은 차 중 하나로 이 거리를 다니지 않았을까. 흠. 좀 더 역동적이고 복잡하고 요란하지 않았을까. 하릴없이 생각해 본다.
* 학교 축제 때, 우리 반 녀석 몇 명이 나에게 쓴 편지.
생각지도 않았던 편지이기에 더 기뻤다.
이런 걸 받았냐고 놀라시는 선생님들도 계신 것을 보니, ‘이생망’은 아닌 듯. 하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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