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 행복한 삶! (2026.03.20.(토)) *
(이번 글에 나오는 내용은, 관련된 학생들의 동의를 받고 작성되었습니다.)
- 행복한 삶!
아이들과의 1차 상담이 끝났다. 3월의 상담은, 학생에 대한 기본 자료 조사인데,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등교하며 몇 시에 자고 관심 있는 동아리는 어디인지, 또 자라온 환경은 어떤지 등 대략적이고 폭넓은 질문들을 한다. 공부에 대해서는 부족한 과목을 체크하는 정도로만 언급하고 스르륵 지나갔기에 아이들의 부담이 덜했을 것이다.
상담하기 위해서는 일과 시간 외에 따로 시간을 내야 하기에 교사나 학생이나 모두 바쁘고 피곤한 일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 1학년 선생님들은 이른 아침이나 점심시간에도 상담하시는 부지런한 분들이 많다. 또 입학식을 한 날부터 하루에 대여섯 명씩 상담을 해서 이미 첫 번째 주에 30명이 다 되는 아이들의 상담을 다 끝낸 대단한 분도 계신다.
다른 분들과 달리 나는 매일 저녁 3명씩 총 9일 동안 상담을 진행했다. 입학하기 전 2월 말에 미리 아이들의 상담 신청을 받았지만, 아이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일들이 생기기에 수시로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여하튼 9일 동안 3명씩 하는 상담을 이번 주에 끝낸 것이다. 할렐루야!
수년 전까지 담임 교사를 할 때 입학하기 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작성하게 했던 <My Life>라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의 인생에 대한 에세이인데, 4년 동안 학년 부장을 하던 시기에 1학년 전체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었었고, 지금도 그 과제가 신입생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수만큼 천차만별인 <My Life>를 읽으면 상담하기 전 아이들의 인생을 조금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무척 귀한 자료다. 글로 풀어낸 이야기인 <My Life>와 기본 정보를 담은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갖는다.
어느 동네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쓰는 아이도 있고, 우리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썼던 <지원서>에 들어간 듯한, ‘진로 계획서’ 내용을 쓴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내용이든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간혹, 힘들고 아픈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현재의 삶이 안타까운 예도 있는데 예전에 비하여서 무탈하게 살아온 아이들이 많았다. 참 다행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내 주변을 보면 20대 이전의 삶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펙터클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30분 정도의 상담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상담해 주는 것이 본인의 강점이라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그중 ‘항상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라는 A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또 ‘그동안 가장 즐거웠던 일, 혹은 가장 슬펐던 일’을 쓰라고 했더니, B는 이렇게 작성했다.
- 저는 인생의 모든 일이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슬플 때도 있지만 잘 이겨냈습니다.
덤벙대는 아이로 생각했던 B의 이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른 같은 아이들이 많은 건가? 물론 즐겨 하는 (컴퓨터) 게임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재미있는 대답을 한 녀석도 있었다.
- 아이엠 그라운드!
나는 놀라서 물었다.
- 아이엠 그라운드? 우리가 아는 그 ‘아이엠 그라운드’?
- 네! ‘아이엠 그라운드 동물 이름 대기’ 그런 거요!
- 내가 묻는 건, 컴퓨터 게임인데?
- 아??
무엇보다 솔직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C는 지금 가장 관심이 많은 것에 대해 이렇게 작성했다.
- 나를 꾸미는 것.
이 나이대에 너무도 이해되는, 솔직한, 꾸밈없는 관심사였다. 또 말을 재미있게 하거나 창의적으로 글을 쓰거나 다채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D는 <My Life>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 나와 내 삶은 음료와 빨대 같다고 생각한다. 컵 속 채워져 있는 음료는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삶을 나타내고, 빨대와 음료를 마시는 이는 나를 뜻한다. 음료는 물, 스무디, 생과일주스, 차 등 다양한 음료가 층층이 쌓여있고 나는 성장하며 한 층, 한 층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배워간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물 같이 쉽게 마실 수 있는 층도 존재하지만, 흑당 버블티처럼 깨끗이 마시기 어렵고 토핑까지 들어있는 층도 존재한다. 어렸을 적의 음료는 딸기 우유이다.
D는 콜라 슬러시, 홍차 맛 버블티, 흑설탕 알로에 주스, 그리고 초코라테와 애플망고 등으로 본인의 인생 시기를 표현하고 있었고,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정리했다.
- 앞으로 나에게 크나큰 방해 요소가 있어도 끝내 그 음료를 다 마시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다짐이다. 내가 마셔보지 못한 새로운 음료가 나타나더라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재미있는 비유에 D에게 질문했다.
- 글을 잘 쓰는군요! 이렇게 표현하는 글은 처음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나요?
- 조금 독특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또, E는 이런 내용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 남들이 ‘미라클 모닝’으로 새벽의 공기를 마실 때, 나는 ‘미라클 슬립’으로 꿈의 끝자락을 붙잡는다. 누군가는 시간을 버린다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내일을 버티기 위해 영혼을 충전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나에게 침대는 가구라기보다, 매일 밤 떠나는 가장 안락한 탐사선에 가깝다. 눈을 감는 순간, 나는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뒤로하고 오직 나만이 아는 고요한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렇듯 나는 잠이 많다.
역시나,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상담 일지에 이런 멘트를 적게 되는 아이들이 많았다.
- 글을 재미있게 씀. 창의적임. 이야기를 잘함.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뭉클한 감동을 하기도 했는데, F와 G는 조심스럽게 단백질 바를 내밀며 말했다.
- 선생님! 이거 드세요!
내가 말했다.
- 아유, 여러분이 먹고 살쪄야죠!
- 선생님이 드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생각이 나서 샀어요!
아이들의 손을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받았다. 그리고 말했다.
- 흠, 편의점에서 선생님을 기억해 주다니, 고마워요!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 12월에, 지원서에 썼던 ‘장래 희망’이 계속 바뀌고 있었고, ‘전문 서비스업’으로 알려진 직업들이 현재 가장 먼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하기에, 어제 있었던 학부모 모임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지금도 직업을 2~3개 가지고 있는 시대인데,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게 되는 2033년 이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부모님의 눈으로 아이들의 진로를 국한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아이들의 꿈으로 여전히 의사가 많았지만, 공학자나 신약 연구 개발자가 많은 것도 특징이었다. 또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장래 희망이 서로 다른 아이들도 많았는데, 부모님들은 지금 시대에 맞춰있었고, 아이들은 훨씬 더 진취적이었다. 그런데 그중 H의 장래 희망은 눈에 확 들어왔는데, 부모님의 장래 희망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 행복한 삶!
H는 이렇게 대답했다.
- 제가 원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으니, 행복한 삶을 살라고 하셨어요!
이런 현명한 분들이라니! 우리가 무엇을 하건, 결국,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니까!
아이들과 9일 동안 상담하면서 아이들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통해서 오히려 내가 상담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까. 다음 상담은 성적 상담인데, 그때도 즐거워야 할 텐데. 하하!
우리, 행복한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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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반에 재능 있는 아이들 3명이 힘을 합쳐서 만든, (2026) 주제별 체험학습 책자 표지 그림. 어떻게 이런 재능들이 있는 거지?
아마도, 그림을 그릴 때는 행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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