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 여기가 네 자리야. (2026.03.28.(토)) *
- 여기가 네 자리야.
연초 겨울방학에 석면 공사로 인하여 일부 교무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 1학년 선생님들이 다른 학년의 교무실을 잠깐 사용하게 되었다. 하루 동안 다른 선생님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내 자리가 아니니 책상 위에 있었던 종이 서류와 필기도구와 휴지까지, 원래 있던 모습 그대로 두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고, 의자에 앉았다가 사뿐히 일어나기만 했다. 내 옆과 앞에 앉은 선생님도 원래 교무실과는 다른 분들이 앉게 되어서 색달랐다. 같은 교무실에 있다는 것과 바로 옆과 앞에 앉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앉는다는 것이 그토록 불편할 수가 없었다.
- 여기가 네 자리야.
이 짧은 문장이 얼마나 다정하고도 친절한 말인가!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썰렁한 교실에 들어섰을 때 어디에 앉아야 할지 난감해할 것이 분명하기에 좌석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최우선 일이었다. 일단 3월은 번호순대로 앉게 했는데, 이름과 함께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를 쓰게 했더니 다양한 말들이 나왔다. ‘알뜰살뜰’, ‘상큼한’, ‘소심한’이라는 형용사도 있었고 ‘왕자 같은’이라는 단어와 ‘공주 같은’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 단어들을 적은 좌석표를 교탁에 붙여놓았고,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앉을 자리를 미리 알려주었기에 방황하거나 난감해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앉았을 것이다. 내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이토록 마음 편한 것이다.
교실에서 학부모 모임이 있을 때가 있는데 보통은 좌석을 따로 지정하지 않고 앉고 싶은 자리에 자유롭게 앉는다. 그런데 저번 주에 있었던 학부모 모임 때 우리 반 학부모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 저희 아이 자리는 어디인가요?
교탁의 좌석표를 보고 본인의 아이들이 앉는 자리를 확인한 후 그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면서 당연하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앞에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자녀의 입장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조금은 뭉클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주에 있는 체험학습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아이들은 학급 찬양 발표회를 위해 의자와 책상을 옆으로 밀고 단체로 춤 연습을 하고 있고, 선생님들은 프로그램들을 위한 각종 연수를 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전달할 공지 사항을 챙기고 제반 사항을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다. 봄 내음이 조금씩 나기는 하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 겨울 날씨인 것이 걱정이다. 다음 주초에 비까지 온다는데 추우면 어떻게 하지?
체험학습 이동은 보통 버스를 이용하는데, 사고나 다양한 이유 등으로 버스 좌석표를 만든다. 어느 자리에 어느 학생이 앉는지 작성해 놓는 것이다. 좌석 배치는 선생님마다 차이가 있는데, 번호순대로 쭉 앉히는 분도 있고, 앉고 싶은 사람끼리 앉히는 분도 있으며, 오히려 서로 친하지 않은 학생끼리 붙여놓아서 친해지기를 바라는 분도 계신다. 우리 반은 임원들이 아이들과 의논해서 배치하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가져온 좌석표를 보니 서로 잘 섞인 것 같았다. 이 버스 좌석표를 보면서 A와 이야기했다.
- A는 아이들을 어떻게 앉힐 건가요?
- 알아서 앉게 하면 되죠?
- 안 돼요. 정해줘야 해요.
- 이런 것까지 정해줘야 하나요?
- 그럼요! 정해주지 않으면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
- 내가 앉을 자리가 확실하게 있다면 마음이 편하기는 하겠네요.
내가 앉을 자리, 내 자리가 ‘확실하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곳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 있게 걸어가서 당당하게 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편하게 쭈욱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자주 이렇게 기도한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이곳에 당연한 듯이 출근하여, 주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아늑하고 따뜻한 제 자리에, 매일매일 익숙하게 앉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연한 듯 앉아있는 이 자리가 언젠가 그리워질 테니, 앉아 있는 이 자리를 귀하게 생각하자! 소중하게 생각하자!
- 여기가 네 자리야.
옆에 앉은 친구에게 따뜻하게 말해주자!
- 여기가 네 자리야.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있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앉을 자기 자리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지….
- 여기가 ‘내’ 자리야.
모두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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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반 아이들이 앉을 버스 좌석표.
자리를 정해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 중에 어디에 앉을 것인가! 버스에 올라오자마자 머리가 아플 것이다. 너희들의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버스에 타기를. 정해진 자리는 곧 '환영받고 있다'라는 신호니까. 행여 비바람이 불어도 자기가 앉을 확실한 자리가 있다면 아이들은 덜 춥지 않을 듯!
일단, 내 자리를 찐하게 표시해 놓았다. 내 주위로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하려던 것은 아닌데, 여하튼 마음이 편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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