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머씨와 리어왕 (2021.11.13.토) *

by clavecin

* 좀머씨와 리어왕 (2021.11.13.토) *


- 좀머 아저씨가 없어졌다는 것이 알려지기까지에는 2주일이 걸렸다..


..... 그렇지만 아무도 좀머 아저씨를 봤다거나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2주일이 더 지난 다음 리들 아줌마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기로 했고, 그 후 몇 주일이 지난 다음 신문에 아저씨를 찾는 작은 광고가 아무도 그 사람이 좀머 아저씨 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아저씨의 여권용 사진과 함께 나왔다.......



매주 금요일마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주말 편지>라는 것을 작성해서 보내고 있는데 한 달 전부터 <좀머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올리고 있다. 아마도 이번 주 금요일이 마지막 글이 될 듯 싶다.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 ~ , 독일)의 작품으로, <향수> <콘트라베이스> 등을 쓴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주목을 피하여 은둔의 삶을 살고 있는데, 마치 그 자신의 모습을 담은 듯한 <좀머씨 이야기>는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좀머씨’의 이야기를 담은 듯해서 마음이 간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라든가 텔레비전에서 본 것이라든가 히르트 아줌마가 새로 문을 연 셀프 서비스 가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좀머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좀머 아저씨는 가끔씩 사람들 눈에 띄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좀머씨였고, 이 좀머씨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이 세상에서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머씨도 한때는 파릇파릇한 젊은이였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 (여권) 사진에 좀머 아저씨는 검은색 머리에 숱이 많았고, 집요한 눈빛과 입술에는 확신에 차고 거의 뻔뻔스럽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처음으로 좀머 아저씨의 온전한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


여기서의 좀머씨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흡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네 인생의 쓸쓸함을 생각하게 한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머리숱도 없는) 우리도 한때는 검은색 머리에 숱이 많았고, (지금의 흐리멍텅 눈도 한때는) 집요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의 쳐진) 입술도 한때는 확신에 차고 거의 뻔뻔스럽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는 사실........



음악을 거쳐 결국은 도달하게 되는 장르가 ‘오페라’라고 한다. 오페라는, ‘음악+극+무용+미술+...’ 온갖 예술 장르를 담은 종합장르이기에 매우 매력적인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페라를 넘어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장르들이 너무도 많아졌으니까...


대학교에서는 오페라에 대해서 접해 본 적이 거의 없었고, 대학원 때에야 원서로 ‘오페라 이론’을 접해 보았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음악교사를 하면서 ‘오페라’에 빠져들게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인지, 극을 좋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찾고 찾아서 공부하면서 오페라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공부하고 정리한 내용을 수업 시간에 가르쳤었다. 아이들은 힘겨워했지만(!) 내가 알게 된 기쁨을 아이들도 알게 되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가르쳤다고나 할까...


간간이 대학교에서 교양수업으로 음악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대학교에서 듣는 수업보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 들었던 수업내용이 더 기억에 남고 좋았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줄 때마다 얼마나 기뻤던지! 아마도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오페라’ 수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페라를 넘어서서 ‘뮤지컬’까지 이르게 되었을 즈음, 우리나라에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를 비롯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뮤지컬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직접 보고 온 뒤로는 <오페라와 뮤지컬> 수업을 함께 했었으며 아이들도 훨씬 흥미로워했었다(고 생각한다).


비슷비슷한 뮤지컬들에 약간 식상해진 지금의 나에게 ‘화악’ 다가온 장르는 바로 ‘연극’이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연극’...


내가 처음 본 연극은, 신촌 산울림 극장에서 보았던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작>로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총 2명이었고 배경은 의자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발성으로 발음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했지만, 아마도 그 때부터 연극의 매력을 알아보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 연극관람은 다른 매체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생생한 현장감이었는데, 주로 방학 때 연극을 찾아보던 내가 작년 코로나 시대에 오랜만에 문을 열었던 예술의 전당에서 8월 초에 공연했던 연극 <레 미제라블>을 찾아보았던 이유는, 순전히 ‘오현경(1936 ~ )’이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으로,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연극이라니??? 사실 그래서 미심쩍었지만, 오현경이라는 배우가 85세의 나이로 무대에서 공연한다는 것으로 유명했기에 직접 가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 역) 무엇보다도 발음이 똑똑했고 자세도 정정했다. 연극이 끝난 뒤, 모든 사람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때마다 연극에 굶주려하며 작품을 검색하던 나의 눈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들어왔고 드디어 오늘은 연극 <리어왕>을 보고 왔다. 오후 1시에 시작하여 4시40분경에 끝난, 15분간의 휴식만 있었던 200여분의 대단한 작품이었는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들어간다는 것 뿐만 아니라, 87세인 이순재씨가 공연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선택한 공연이었다. 다른 역할들은 더블 캐스팅이었지만, 20여일 내내 이순재씨 혼자서 리어왕을 맡아서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토픽감이었다.


87세의 어른으로서 그는 자신의 무엇을 실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희곡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길고 긴 대사들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3시간이 넘는 공연에서 보여준 이순재씨의 열정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인간승리였다. 87세에 라이브로 연극을 하겠다는 것,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원 캐스팅의 위험을 도맡았다는 것, 까먹을 수도 있는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것, 때때로 유머러스함으로 관객을 웃기는 여유도 있었다는 것...



음악 발표시간에 어떤 학생이 이런 멘트를 했다.


- 가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남의 인생의 엑스트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떄가 있어요...


나는 이 멘트를 듣고 깜짝 놀랐고 질문을 했다.


- 언제 이런 생각이 들었니...

- 중학교 3학년 때요....지금은 안그래요..


우리의 인생에는, 존재하지만 존재했었던 기억조차 주지 못했던 엑스트라와 같은 수많은 좀머씨들도 있고, 온세상을 휘어잡은 듯한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결국은 세 딸의 죽음과 함께 쓸쓸히 죽어간 수많은 리어왕들도 있다.



좀머씨나 리어왕이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어느 누구 하나 예외없이 그 시절이 지나 늙음을 거쳐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집요한 눈빛과 확신에 찬 입술과 뻔뻔스러운 미소까지 있었던 좀머씨가 회피하는 삶을 살다가 소리없이 스러졌다면, 이 세상이 마치 내 것인양 호령하던 리어왕은 화려하고 거짓된 아부들에 눈과 귀가 어두워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섣부른 결정을 거듭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리어왕에게 진실만을 ‘똑부러지게’ 이야기하던 광대의 말을 하나 적어본다.


- 지혜로워질 때까지는 늙지 말았어야지!!!


내가 느낀 점 몇 가지..



- 좀머씨이건 리어왕이건,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 어떤 삶이건 회피하지 말고 용감하게 부딪혀 나아가기..

- 다른 사람도 또다른 주인공임을 인정하기..

- 항상 지금과 같이 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알기..

- 혹 엑스트라 같은 삶이라고 느껴지더라도 열심히 살아보기..

- 그러다보면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멋진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기..

- 하지만...항상 주인공인 것이 행복한 것만은 아님을 알아놓기.....

- 때로는 엑스트라의 삶이 더 나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기..

- 87세가 되어서도 안주하지 않은 어떤 사람을 생각해 보기...

- 대사를 까먹었어도, 실수했어도, 그가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놓기...........

- 우리는 오늘이 가장 젊은 때라는 것을, 꼭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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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리어왕> 플랭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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