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Querencia)(2022.01.01.토)

by clavecin

* 퀘렌시아(Querencia) (2022.01.01.토) *


올해의 공식적인 최종 담임 협의록 47차분을 작성하면서 매달의 마지막 회차에 적는 짧은 소회 중에 이런 멘트를 넣었다.


- 2달의 방학 동안, 건강 잘 챙기시고요...

좋은 것들로 마음껏 충전하시기를요..


-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도 꼭 넣으시기를요...

저희는 그럴 자격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2달 간의 방학을 맞이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 하루 동안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쉬는 시간을 꼭 주어야 해..

- (월 ~ 금)까지는 열심히 보내고, 주말에는 조금 쉬는 시간을 주어야 해..

- 학기 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방학 때는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해....반드시...


요약하자면, ‘집중과 쉼’이 될 수 있겠다. 평상시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습관이다.


- 50분 수업하고 10분의 휴식시간을 반드시 줄 것

- 줄을 팽팽하게 해서 연주했다면, 줄을 느슨하게 하는 시간을 반드시 줄 것

- 열심히 일했다면,

아무것도 안하는, 농땡이 치는 시간을 반드시 자신에게 선사할 것......




직장에서의 하루는 무척 바쁘다. 여유있게 인터넷 기사를 읽거나 수다떠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고, 우선순위에 맞춰서 진행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고 갑작스럽게 어떤 일을 해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일들은 놓치지 않기 위해 나에게 예약 메시지를 걸어놓아서 체크하기도 한다.


어떤 프로젝트가 있을 때, ‘벼락치기’로 끝내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좀 크나큰 일들은 시간을 두고 ‘자주자주’ ‘오래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특징이다. 그런 경우 수정하고 추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이 많고 점점 더 좋아진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마감 시간보다 ‘훨씬 일찍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나의 일하는 방식이다. 물론 어떤 분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말이다..*^_^*... 그런데도, 끝내고 나면 허술하고 아쉽고 허점과 오류 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 집중하면 돼... 집중해 보자..


하는 일의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무슨 일이든지 ‘집중’을 할 수 밖에 없고, 집중을 하면 나도 모르는새 어느 순간에 일이 끝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반드시 ‘놀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노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집중을 한다’고 하면 맞을 듯....


하루 중 내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머리가 노는 시간은, 오후 7시나 8시 이후 인 경우가 많다... 그 시간까지 일하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그렇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생활이었고 나름 그 생활을 즐겨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시간이 되는 누군가와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던 것 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도 떠올랐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나에게는 ‘휴식과 쉼’이 되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과 저녁 퇴근 시간도 나에게는 ‘멍 때리기’에 좋은 시간이다. 하루 일과를 ‘예습’하며 출근을 하고, 그 날 있었던 일을 ‘복습’하며 퇴근하기에 딱 좋은 시간들이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출근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퇴근을 하기도 한다. 물론 누군가를 미워하며 출근하기도, 누군가를 또다시 그리워하며 퇴근을 하기도 했고... 출퇴근 시간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무언가를 해결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있기에, 직장에서의 바쁜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그리고 아늑한 자동차 안...


그러니 감히 말해 본다.


- 가능하면 집과 직장이 서로 거리가 있도록 하기

- 장거리 출퇴근 시간은 정신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것...


일주일 중 쉴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바로 지금 글을 쓰며 일주일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내 책상 앞....모든 글쓰기는 일주일을 돌아보며 글소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나에게 ‘쉼’을 주는 가장 중요한 시간과 공간이다.



‘퀘렌시아(케렌시아 – Querencia(스페인어))’라는 단어가 있다.


-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

- 피난처, 안식처, 회복의 장소



투우의 나라 스페인의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는데, 투우사와 싸우다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곳에서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 숨을 고르고 힘을 모은다. 그 곳에 있는 동안 소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소만 아는 그 장소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고 한다.


투우사는 퀘렌시아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된다.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퀘렌시아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시간에 의미를 두어도 되겠고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올해, 나의 퀘렌시아는 어디였고 언제였고 누구였을까....되짚어보고 돌아보고 기억해 본다...놓친 것은 없었을까...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이며 언제이고 누구인지.......


어디에서 언제 누구와 함께 할 때, 안식처, 피난처, 회복이 되는지 생각해 보기를....


오늘부터 나는, 나의 퀘렌시아에 오랜 시간 있을 예정이기에, 어제까지보다도 아마도 건강하게 회복되고 강해지고 한껏 더 좋아지고 멋져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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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시간에 드립톡을 만들었다며 H가 나를 찾아왔다.


내 아이디인 ‘꽃이 좋아’가 들어가 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정말 이쁜 컬러와 글씨체...

감격스러워 하며 사진을 찍어 놓았다.


조금 있다가 다른 반의 I가 나를 찾아왔다.


미술 시간에 만들었다며 이번엔 컵을 내민다.

박스에 담긴 컵을 꺼내보고는 역시나 깜.짝. 놀랐다.


내 아이디인 ‘꽃이 좋아’가 그려져 있었던 것...


- 저도 선생님 생각나서 만들었어요...


담임도 아니고, 한명 한명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정성어린 선물을 받아도 될지......


고맙고 고마울 뿐......


바쁜 일상 중에 나의 퀘렌시아가 되었었던 27기 아이들과의 한 에피소드...


꽃이좋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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