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모 루덴스(Homo Ludens) (2022.06.04.토) *
* 호모 루덴스(Homo Ludens) (2022.06.04.토) *
학생 A에게 물었다.
- 취미가 무언가요??
- 수학문제 풀기요..
-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수학문제 풀기..???????
- 네~~
학생 B에게 물었다.
- 취미가 뭐예요??
- 상담해 주기요..
- (놀란 표정으로) 상담해 주기요..????
- 네~~
C에게 물었다.
- 특별하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어요?
- 글쎄요...
-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 아마도... 낚시??
- 아..???
D가 나에게 물었다.
- 바둑 할 줄 아세요??
- 아뇨...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어렵지 않아요..
- 어려워 보이던데요..
- 오목은 할 줄 아나요??
- 그럼요!
- 야구 규칙은 알아요??
- 아...당연하죠!
- 그럼, 어렵지 않을걸요...
D의 말에 힘입어 바둑의 기초에 관한 동영상을 하나 찾아서 보고서는, 각각 19줄씩, 361칸 그리고 ‘활로’라는 단어만 이해했다. 이렇게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신기하다. 조만간 바둑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가능할지....
2011년에 처음 남학생 담임을 할 때, 여학생 담임 때와는 종류가 다른 것들을 고민했었다.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요즘과 달리 그 당시에는 야간자기주도학습에 모두 참석해야 했었는데, 몇몇 장난꾸러기들은 공부하다가 몰래 교실을 빠져나가거나, 거짓말로 이리저리 둘러대고 하교를 해버리곤 했다.
과외나 학원을 가더라도 확인증이 있어야 했고 선생님들이 자주 순회지도를 하시기에 몰래 나가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용감한 녀석들이 출몰했었는데, 그 아이들이 저녁에 ‘잡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PC방...
PC방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PC방에 대한 오해가 있었는데, 왠지 어둡고 음침하고 담배 연기 가득하고 등등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야간자기주도학습 시간에 ‘게임’을 하기 위해서 PC방에 간다고 하니, 선생님들이 단속에 나선 것이다.
어디에 어떤 PC방이 있는지를 몰라서 우리 반에서 제일 말썽꾸러기였던 E에게 학교 주변의 PC방 지도를 그리게 했고 그것을 1학년 담임선생님들과 공유해서 아이들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그 때 E가 그려준 PC방 지도는 엄청 유명했었다.
시험이 끝나는 날 버스를 대절해서 근처 영화관으로 영화를 보러가는 것이 내가 맡은 학급의 연례행사였는데, 2학기 2차 지필고사 후, 영화를 보고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곳에 나도 같이 따라가면서 물었다.
- 지금 어디들 가는거야??
- PC방이요..
- 앗...진짜??? 선생님도 갈래..
- 네??
- 선생님 한번도 가본적이 없거든..
- 진짜요?????
내심 어둡고 냄새나는 곳을 상상하며 갔건만, 아이들과 함께 도착한 PC방은 환한 불빛 아래에 세련되게 셋팅되어 있는, 크고 화려하며 고급스러운 PC방이었다. 도착한 아이들은 빨간 레드 벨벳 의자에 하나씩 자리잡아 헤드폰을 쓰고 앉아서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게임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해 했는데 그 중에서 우리 반의 1등 F를 보며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야간자기주도학습을 몰래 빠져서 PC방에 갈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아이들 틈에서, 저녁 7시에 시작하면 되는 야간자기주도학습을 무려 20분이나 먼저 앉아서 일찍 공부를 시작하는 전혀 흔들림 없는 F였기에, 이 녀석이 게임을 할 수는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F는 앉자마자 게임에 몰두했고, 내가 뭐라고 질문을 했는데도 듣지 못하고 클릭하느라 바빴다. 나중에 F에게 물었다.
- F ~ 게임을 할 줄 알았어??
- 그럼요! 선생님!
- 그럼 평상시에도 하는거야?
- 아뇨...저 원래는 중학교 때 게임에 완전 빠져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안하려고 끊었어요. 그런데 시험 끝나는 날에는, 다시 집중해서 해 봤네요..
할 줄 알지만, 그것도 엄청 잘하지만 공부하기 위해서 게임을 끊었다는 F의 말에 깜짝 놀랐고 F는 2년 뒤 결국 S대에 진학했다. 나는 이 PC방에서의 F와의 에피소드를 잊지 못하는데, ‘무서운 사람’이란 이런 녀석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려준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를, 놀 때는 잘 놀아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잘 놀 줄 모른다. 아마도, 제대로 놀아본 기억이나 경험이 없다고 보면 정확할 듯 하다. 그래서 잘 노는 아이들을 보면 무척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하는 ‘전국노래자랑’에 나와서 온갖 재주를 보이며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그 감정과 같다.
- 저 사람들의 저 (놀라운) 끼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다.
-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유희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
대학원 때 읽었던 오래된 책 제목인데, 최근에는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온 듯하다. ‘놀이’를 통한 인간의 문화 발전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로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 모든 것이 놀이다.
-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 진지함의 세계에서 놀이의 세계로!
-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으로 나누어진다고 했을 때, 일하는 시간은 진지함으로, 쉬는 시간은 좀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텐데, 일하는 시간도 ‘놀이’처럼 접근하면 훨씬 더 능률이 오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놀이가 문화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또 법률, 과학, 가난, 전쟁, 철학, 예술 등의 성취가 놀이의 본능으로부터 나왔으며, 인간은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세상은 왜 노는 것을 터부시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본질은 노는 인간이라는 서술이 재미있다.
-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당연히 천재는 아니며 노력은 쪼금 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무엇이든지 즐기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으로서, 즉 호모 루덴스로의 삶을 조금 흉내 내보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간만에 주어진 방학 전의 마지막 연휴에 무엇을 하고 놀까 고민을 해 본다.
낚시도, 바둑도 할 줄 모르고 컴퓨터 게임도 할 줄 모르는데,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까..???
수학문제 풀이가 놀이의 하나였던 (놀라웠던) A처럼, (약간은 어이없지만) 영어단어나 외울까 아님, 어제 도착한 책을 읽을까 아님, 그냥 드라마를 볼까....
잘 놀아야 다음 주부터의 생활도 ‘놀이처럼’ 즐겁게 잘 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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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말에 가던 수련회를 가지 못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올해, 개교 이래로 처음으로 5월 말에 현장체험학습을 가게 되었다. 1학년에게 현장체험학습은 올해가 처음이다.
‘수원 화성돌기’부터 시작되었던 현장체험학습 장소가 ‘롯데월드’와 ‘에버랜드’ 두 곳으로 좁혀졌고 각각 6개 학급씩 나눠져서 가게 되었다.
3월 말부터 준비되었던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2학년과 3학년 아이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작년과 재작년에 하지 못했던 활동을 올해 하게 되었고, 그것도 놀이공원이어서 더 많이 부러워했다.
휴일 전날이어서 그런지, 내가 가기로 한 에버랜드에는 70여개 학교에 만명이 넘는 학생이 온다는 이야기에 가기 전부터 내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늦지나 않을까, 사람들에 휩쓸려 가지 않을까, 안전하게 마칠 수 있을까,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등등...
오전 9시30분까지 오면 되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오전 7시40분에 도착해서는 빨리 시간이 지나서 활동이 끝나있었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2시간을 기다렸는데, 걱정했던 것만큼 엄청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까지 들었다.
- 우리들은 그동안 이런 것들을 원했었던거야....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교복 치마 중에 가장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들부터 무거운 유모차를 이끌고 아이를 엎고 안고 온 사람들과 화려한 빤짝이 옷을 입고 손에 손잡고 나들이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정말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았던 하루였다.
밤 10시까지 놀았던 28기 1학년 아이들과, 어렵게 함께 해 주셨던 선생님들과의 멋진 2022년 현장체험학습이 안전하게 무사히 끝나서 정말 감사하다.
- 오후 4시 퍼레이드의 일부분..
역시 호모 루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