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불가능한 사람 (2022.07.02.토) *

by clavecin

* 대체 불가능한 사람 (2022.07.02.토) *


오래전 A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 시간과 마음과 온갖 것을 다 주고 싶은 사람, 없었나요??



비가 엄청 많이 오던 이번 주 목요일..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출근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길목마다 어찌나 어찌나 차가 많은지.. 비가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것보다 교사 전체 경건회 때 부르는 찬송가를 반주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그 반주를 하기 위해서는 지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엑셀을 계속 밟았다.


그런데 마음껏 엑셀을 밟고 싶어도 엉켜있는 차들을 뚫고 들어가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날같이 지각할 수도 있는 경우 나를 대신해서 반주하실 분을 부탁해 놓았어야 했는데 아뿔사! 또 다른 반주 선생님을 생각해 놓지 않았다는 것... 어느 분이 피아노를 치실 수 있는지 올해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전체 교사 모임에서 나 하나 때문에 피아노 반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에, 정말 신호를 무시하고 차선을 막 바꾸고 해서 1분 전에 겨우겨우 도착했다. 왜 나를 대신할 선생님을 모시지 않았는지 엄청 후회하면서 말이다.



한참 요리에 관심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레시피를 빼곡하게 적었고 주말에는 그대로 요리를 해서 가족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주로 이탈리아 요리가 많았는데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들이 아니어서 학원에서 나오면 주변 상가에서 그 재료들을 사 왔었다.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구매했었는데 어느 날은 가장 중요한 향신료가 없다는 것을 요리하는 중에 깨달았다. 아마도 바질이었던 것 같은데, 그 재료를 구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하고 있던 요리를 멈췄었다. 가족들은 깜짝 놀랐고 나는 내가 이토록 융통성이 없다는 것에 더 놀랐다.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독특한 향내를 가진 ‘바질’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인데... 물론 요리 전문가들은 이런 나의 무지함에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어서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선생님들이 대신 들어가서 수업을 하는 ‘보강수업’이 진행된다. 주로 같은 과목 선생님께서 들어가셔서 실제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같은 과목이라도 대부분은 ‘대신 들어가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이 주된 일이다. 특히 교사 수가 많지 않는 과목 즉, 음악 같이 교사가 1명인 과목은 ‘같은 과목군 - 예체능과’의 선생님들께서 대신 들어가시니, 실제 수업을 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체육 선생님께서 음악을 대신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음악교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학기 중에 B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걱정을 했다. B 선생님이 워낙 중요한 일들을 맡고 있었고 그가 없으면 그 부서의 모든 일이 멈춰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으며, 학교에서 정말 엄청 많은 일을 담당했던 선생님이었으니까... 하지만 B 선생님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었기에 떠나는 그를 막을 수는 없었고 대신 C 선생님이 오셨다.


오랜 시간 학교에서 늘 보아왔지만 우리 학교에는 아무 선생님이나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도 확인했다. 6월에 갑작스럽게 모셨던 C 선생님은 원래 있었던 사람 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B선생님의 일을 수행하셨고 그만의 팬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B를 점점 잊어갔다....아쉽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가 맡았던 학급에서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몇 가지 중의 하나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건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라는 것..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만한 것을 하지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 그것은 학급에서나 음악수업에서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일에 적용된다.


- OOO(내 이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굳이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내가 또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어서, 이곳 우리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고, 나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 물론 그래서 호불호가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내 모토이기도 하다.


특히 자주 말하는 것은, 모든 이들이 선호하는 것을 좇아가기보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궂은일을 찾아서,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하고 싶게 만들라는 것.... 멋지게 들리는 이 말을 실제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 나는 직장의 부속품인 것 같아.

- 내가 없어도 이 직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겠지..


내가 없어도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하게 돌아간다는 건 너무도 속상하고 슬픈 ‘사실’이다. 작고 작은 나 하나가 없다고 그 무엇이 흔들리고 까딱이나 하겠는가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그런 ‘소중하고 귀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내가 아니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고, 내가 아니면 조직이 흔들리고, 내가 아니면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그래서 허겁지겁 나를 찾아주고, 그렇게 비싸게 나의 가치가 매겨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보같이...


이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쉽게도 회피할 수 없는 ‘정확한 사실’ 하나는, 이 세상 어떤 일도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은 없다는 것. 내가 없으면 그 어느 누군가 대신하여 더 멋지게 그 일을 해낼 것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그랬고, 언제나 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천재가 등장했으며 언제나 사랑 넘치고 인성까지 대단한 자들이 넘쳐났었고,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또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있다. 누구에게나...


얼마 전에 읽었던 글 중의 일부..


- 나와 당신이 이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함께 시간을 쌓았다는 것, 그것이 서로를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든다. 인생 전체에서 그리 많지 않은 그 아까운 시간이라는 걸 쓰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무언가가 된다. 어떤 유용한 기능 때문이 아니라 마음, 시간, 기억을 써서 시절을 이루게 되면서, 떼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화살촉 같은 시간을 꽂아 넣는다. 그렇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삶의 시간을 머금거나 투여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대체 불가능하다. 사실, 그것이 더 우리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삶의 중심을 둘 수 있다면, 실제로 나의 시간을 받아먹고, 나에게 자신의 시간을 먹여주는 그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는 서로의 진짜 시간이랄 것, 혹은 진짜 시절이나 마음이랄 것을 서로에게 주는 존재들이 있다. 우리의 삶은 그들이 있는 그곳에서만 대체 불가능해진다.



내가 하는 일을 대신하고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있겠지만, 나와 함께 깊은 속마음을 나누고 귀한 시간을 보내고 쌓으며 같은 기억을 갖고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절을 함께 이루어 가는 존재는 대신하고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그러니 삶의 중심을 실제로 나의 시간을 받아먹고, 나에게 자신의 시간을 먹여주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에게 둔다면, 우리의 삶이 더 의미 있어진다는 것...


그때 A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를 똑바로 보면서...


- 내 앞에 있는데요...

-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예요.. A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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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이름조차 모른 채 사귀기 시작하는 커플이 있다.


그 사람의 어떠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한....


근래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 일부분..


***좋기만 한 사람 ***


생각해 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웠던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


그냥 좋아해 보려고요.


상대방의 이랬다 저랬다하는 거에 나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방향 없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을까

이제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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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그냥 쭉 좋아해 보기로 한, 대체 불가능한 서로가 된 커플의 이야기..


- https://youtu.be/fkdhxXO6t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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